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10일 풍수학자 김두규 교수가 전북 순창 동계면 추동마을 집 마루에 걸터앉아 풍수상 세종시가 수도로서는 땅 기운이 “부족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참된 도는 오로지 빈 곳에 깃든다’는 유도집허(唯道集虛)라고 쓴 현액이 눈에 띈다. 김동훈 기자
■ 풍수지리학자·우석대 교수 김두규
세종은 백두서 내려오는 기운이
서울·평양·개성에 미치지 못해
충남 금산·충북 옥천 등이 적당
서울은 권력기관 등 더 빼내고
상업·금융·예술 도시로 키워야
풍수, 민속학·전통문화로 봐야
도시계획 등 적용범위 넓어져
‘침대는 과학입니다’라는 광고 문구가 한때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는데, 최근 수도권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불거진 여권의 수도 이전 주장과 관련해 사주명리학이나 풍수지리학도 ‘과학’인가라는 의문이 생겼다. 지난 10일 전북 순창군 동계면 동심리 추동마을 자택에서 풍수학자 김두규(61) 우석대 교수를 만나러 가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이다.
김 교수는 “풍수를 민속학 또는 전통문화로 봐야 한다”고 답했다. 과학은 아니라는 얘기처럼 들렸다. 그렇다고 “조선 시대 흘러간 유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사람의 운명을 미리 알아보고 좋은 집터를 잡아 쾌적한 주거 공간을 만들어 보자는 인간의 욕망을 완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란다.
화장(火葬)문화로 매장(埋葬)풍습이 사라지고, 주거 공간도 한옥에서 아파트로 바뀌면서 양택과 음택의 땅 기운을 따지는 풍수지리가 사라진 것처럼 보이지만 건축, 토목, 조경뿐만 아니라 도시 계획과 함께 어우러져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고도 했다. ‘아파트 벽지를 어떤 색으로 도배하고 가구는 어떤 형태로 배치해야 할까’라는 문제를 두고 풍수에서 해법을 찾는 주부가 많아질 정도로 풍수의 적용 분야가 넓어졌단다. 약한 기운을 보강해주고 강한 기운을 눌러 안정감을 잡아 준다는 ‘비보(裨補) 풍수’ 분야다. 심지어 신도시 개발 과정에서 도시계획뿐만 아니라 관공서 청사 건물의 방향까지 훈수할 정도로 적용 범위가 넓어졌다고 한다.
조선 건국 과정에서 태조 이성계에게 한양을 도읍지로 추천했다는 무학대사의 풍수관은 왕조의 천년 운명을 내다보는 국운 풍수로 분류된다. 최근 여권에서 수도를 세종시로 이전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며 여야 간 입장 차와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일부 충청권 야당 의원도 찬성 뜻을 비치며 세종시 아파트 가격이 폭등하는 등 후폭풍도 거세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당시 풍수학자로 신행정수도 건설추진위원회 자문위원 역할을 했던 김 교수를 만난 이유다. 그는 “세종시가 행정수도로서 최적지였는가, 풍수지리상 도읍지가 들어설 만한 유용한 땅인가”라는 질문에 “차선책이었다”고 답했다. “세종시는 충남과 충북의 정치적 힘겨루기와 관료들이 가세한 타협의 산물로, 이미 답은 세종시로 정해져 있었으며 풍수학적 선택은 뒷전이었다”는 게 김 교수의 답이다.
그는 특히 “세종시는 백두에서 시작하는 용(능선)의 기운이 크게 내려오지 않는 곳이어서 청와대까지 이전하는 대규모 천도는 풍수학적으로 봐도 어렵다”며 “풍수 격언 중 ‘하늘이 주지도 아니하고 땅이 받지도 아니한다’는 말이 있는데, 세종시는 땅의 규모와 역량이 서울이나 개성, 평양만큼 도읍지로서 넉넉한 곳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가 생각하는 수도로 적당한 곳이 어딘지 물어보니 “충남 금산과 충북 옥천”이란다. 국토의 중심인 대전 남쪽인데, 영호남과 가깝고 무엇보다 풍수상 안정적일 뿐만 아니라 통일시대를 대비해 수도가 3곳인 삼경(三京·서울-평양 포함) 체제에 손색이 없는 곳이라고 했다. 그는 이를 부연 설명하면서 최근 이춘희 세종시장과 주고받은 대화 일부도 소개했다. 반듯한 도로, 즐비한 관공서 건물, 넓은 호수로 둘러싸인 세종시에 원수산(元帥山) 앞 야지(野地)가 공터로 남아 있는 점을 김 교수가 지적하며 “이 넓고 좋은 땅을 왜 아직 남겨 놨습니까”라고 묻자 이 시장이 “다 아시면서 왜 묻습니까”라고 답했다고 한다. 불가(佛家)의 선문답 같은 대화 내용이지만 청와대나 국회 이전을 염두에 두고 남겨 놓은 자리라는 의미다.
신행정수도 건설추진지원단장을 지내고 2012년 세종특별자치시가 출범한 이후 선출직 시장으로 두 번이나 당선된 이 시장은 말 그대로 세종시의 산 역사이며 증인이다.
김 교수와 이 시장이 지목한 세종시 원수산 인근 땅은 길지(吉地)인가.
김 교수에 따르면 좌우 대칭이 완벽한 원수산(해발 251.2m)이 주산으로 버텨주고 안산으로는 제실산(46.6m), 좌청룡 우백호로 좌측에 오산(184.5m)과 우측에 형제봉(105.8m)이 자리해 동서남북 사방의 땅 기운이 감싸 안은 아늑한 형태를 띠고 있다. 그 앞으로 금강이 흐르고 있어 배산임수의 전형임은 물론이다.
금강은 북동쪽에서 들어와 남서쪽으로 나가는 흐름이다. 금강물이 직접 원수산 쪽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노적산과 전월산이 버티고 있는 형상도 수난을 막아줄 풍수다. 풍수적으로 국회의사당 규모의 관공서가 들어설 수 있는 길지이며 적지라는 것이다. 다만 주산인 원수산이 토산(土山)으로 기세가 약하다는 평가 속에 20여㎞쯤 떨어진 계룡산이 그 기운을 보충해 줄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서울은 풍수학적으로 수도로서 아직 유용한 땅인가”라는 질문에 김 교수는 ‘다이어트’를 주문했다. “서울은 풍수지리상 우백호(여성·재물·예술)에 해당하는 인왕산의 기운이 좋아 상업·금융·문화·예술의 도시로 기능을 크게 키우면 될 것이고, 좌청룡(남성·명예·벼슬)에 해당하는 낙산 쪽의 기운이 짧아서 이에 해당하는 권력기관을 더 빼내는 ‘다이어트’가 유리하다. 그렇다고 청와대까지 옮겨야 할 이유는 없다”는 게 그의 답이다.
그는 “이성계가 조선 건국 후 한양 천도를 결정한 뒤 당시 사대부 기득권 세력들이 천도를 반대하며 내세운 이유로 3가지가 있었는데 바위산의 기세가 왕조를 누를 수 있을 정도로 강하고, 바람길이 터져서 왕권이 쉽게 바람에 흔들릴 가능성이 높으며, 물이 부족해 도읍지로서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고 부연했다. 김 교수는 이에 대해 “(요즘 풍수로 풀어보면) 상하수도시설 잘돼 있고, 근대화 과정에서 청와대 주변에 5만 그루 이상의 소나무를 심어 수풀이 우거졌으며, 높고 큰 빌딩 숲이 바람길을 막아 길흉을 따질 수 없을 정도로 좋아졌다”고 덧붙였다. 풍수에서 말하는 ‘지기쇠왕설’로 땅 기운이란 조건에 따라 흥하기도 하고 세월에 따라 쇠퇴하기도 하며 변화한다는 것이다. 현재 서울은 조선의 한양 천도 당시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도시의 기능이 비대화돼 사회문제가 심각하지만 국가 권력의 상징인 청와대는 주변 산과 경복궁 터를 잘만 활용하면 미국의 백악관도 부럽지 않을 정도로 손색이 없다는 게 김 교수의 주장이다.
김 교수의 설명은 이번 수도 이전 논란이 노 대통령 당시 권력의 핵심인 청와대는 물론 입법·사법·행정까지 옮기는 ‘천도’를 기획했다가 헌법재판소의 ‘관습 헌법론’에 무산됐던 것과 맥이 닿아 있다고 볼 수 있다. 당시 도시의 규모와 범위를 대폭 축소해 행정 관청을 옮기는 수준으로 재추진됐지만 서울∼세종을 오가는 ‘길거리 국장’ ‘카톡 과장’만 양산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김 교수는 이에 대해 “중앙 부처들이 내려와 있는 현재 세종시 행정 기능에 여의도 모래밭에 지어진 국회의사당만 내려와도 행정 수도로서 어느 정도 면모를 갖출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입법·사법·행정뿐만 아니라 청와대 기능까지 세종시로 옮기는 ‘천도’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아니어도 풍수지리상 처음부터 불가능했다고 재차 강조했다.
김 교수는 “역사적 관점에서 봐도 기득권 반발을 넘어서기 어려울 텐데, 어째서 문재인 대통령 취임 후 바로 추진되지 않고 임기 절반을 넘긴 시점에 수도 이전 문제가 제기됐는지 명확한 해명이 없다”며 “(일부에서 주장하듯) 수도권 부동산 폭등 문제를 회피하기 위한 국면 전환용으로만 이용되거나 정치적 이해관계로 국론 분열만 초래하고 국회의사당조차 이전을 성사시키지 못한다면 역사 앞에 큰 죄를 짓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주=박팔령 기자 park80@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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