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진용 기자의 엔터 톡>그 많던 납량특집은 어디로 갔나?

며칠 전 울릉도 인근 해역에서 왕관해마가 발견됐습니다. 국제 멸종위기종인 이 바다생물이 마냥 반갑진 않은 건, 열대 및 아열대 기후 지역에 주로 서식하며 남해에서 가끔 발견되던 왕관해마가 동해까지 올라온 탓이죠. 학창시절, ‘대한민국은 온대성 기후’라 배웠는데 더는 아닌 모양인데요.

대중은 왕관해마가 아니라, 실생활을 통해 기후변화를 체감하고 있습니다. “동남아 같다” “습도도 높아 숨이 막힌다”고 아우성이죠. 한반도가 찜통이 되고 있다는 것은 연평균 기온의 상승이라는 통계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에어컨이 불티나게 팔리고, 올해는 (선풍기와 구분이 어렵지만) 냉기를 순환해준다는 서큘레이터가 인기죠.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더운 날씨면 어김없이 찾아오던 ‘여름 손님’의 발길이 어느 순간 뚝 끊겼습니다. 바로 납량특집이죠. ‘납량(納량)’은 과거 일본 상류사회에서 더위를 피한다는 의미로 쓰던 일본식 한자 표현이죠. 한때는 여름의 대명사였는데 납량특집이 자취를 감추며 요즘 10∼20대에게는 매우 생소한 단어가 됐습니다.

‘전설의 고향’을 시작으로 은퇴한 배우 심은하가 출연했던 ‘M’, 공포 이야기를 소재로 다룬 ‘토요 미스테리극장’과 ‘이야기 속으로’ 등은 볼거리가 많지 않던 시절, 온 가족이 모여 ‘이불 뒤집어쓰고 보던’ 프로그램으로 꼽혔습니다. KBS가 2009년까지 ‘전설의 고향’을 다시 만들기도 했지만 그 명맥이 끊긴 지 10년이 넘었죠.

최근에 만난 몇몇 지상파 PD에게 “왜 납량특집을 만들지 않냐?”고 물었습니다. 답은 곧바로 나왔죠. “고생해서 만들어도 욕만 먹으니까요.” 10년 전만 해도 여름이 되면 스타들의 공포 체험을 다룬 예능이 반복되듯 전파를 탔죠. 하지만 깜짝 놀라 울음을 터뜨리는 스타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가학성 논란에 휩싸이곤 했습니다.

그 결과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징계였죠.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중에는 ‘미신 또는 비과학적 생활태도를 조장하여서는 아니 된다’(41조)는 조항이 있죠. 결국 공포물을 좋아하지 않는 일부 시청자들의 “불편하다”는 민원에 심의 대상이 되곤 했습니다. 게다가 요즘 시청자들의 눈높이가 높아져 특수효과나 CG를 입히는 데 꽤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반면 광고 시장이 좋지 않아 제작비 수급이 어려우니 납량특집을 추진할 이유가 없는 거죠.

하지만 역설적으로, 과거 방송됐던 공포물은 요즘 유튜브에 공개돼 젊은층의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표현 수위가 높은 좀비물인 넷플릭스 ‘킹덤’이 성공한 것만 보더라도, 호러(horror)나 고어(gore) 장르에 대한 수요는 여전하죠. 열불 나는 뉴스가 넘치는 이 여름, 집 나간 저승사자나 구미호가 그리운 건 저뿐만은 아닐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