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新아방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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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종 논설위원

조국 전 법무장관은 2014년 5월 27일 자 경향신문에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님 귀하’라는 기고문을 실었다. 조 전 장관은 김 전 실장을 비판하며 “아방(我方)을 묶어 세우고 타방(他方)을 쪼개고 찌르고 베는 냉혹한 정치전술은 계속됐다. (중략) 2006년 12월 한나라당 의총에서 ‘노무현은 사이코다’라는 발언을 하여 적장에 대한 적개심을 노골적으로 표명했다”고 썼다. 그러면서 ‘윗분의 뜻을 대대로 받들며 연성 유신체제를 도모하고 있다’고 했다.

조 전 장관이 쓴 ‘아방’ ‘타방’은 일반인에겐 생소하지만 1980년대 학생운동권에는 아주 익숙하다. 당시 이념 서적을 합법적으로 출판할 수 없을 때 수십 쪽 분량의 팸플릿이 운동권 학습지였는데 ‘야학비판(야비)’ ‘학생운동의 전망(전망)’ ‘깃발’ 등이 유명했다. 이 중에서도 비슷한 시기에 나온 ‘아방타방’은 독특한 작명으로 눈길을 끌었는데, 핵심 내용은 민주화 세력인 아방과 군사정권 세력인 타방을 선명하게 대치시킨 전략서였다. 아방타방론에 대화와 타협이 끼어들 여지는 없다. 이 팸플릿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강제 징집당하기도 하고, 운동권끼리 대화할 때는 이 용어를 쓰지 않으면 ‘프락치’로 의심받을 정도였다. 현재 586 운동권의 사고에는 ‘아방타방’ 식의 편 가르기가 본능처럼 생활화돼 있다. 조 전 장관이 김 전 실장을 편 가르기 한다고 비판했지만 지금 문재인 정권이 하는 것을 보면 김 전 실장이 문 정권을 ‘형님’으로 모셔야 할 듯하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 한 분 한 분도 저의 국민이고, 우리의 국민으로 섬기겠습니다. 저는 감히 약속드립니다. 2017년 5월 10일 이날은 진정한 국민 통합이 시작된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입니다”라고 했다. 그러나 취임 직후 부처별로 적폐청산위원회가 설치돼 전 정권과 관련이 있는 인사들은 ‘적폐’라는 낙인이 찍혀 쫓겨났다. 회사 대 노조, 정규직 대 비정규직, 부자 대 서민, 강남 대 비강남, 임대인 대 임차인, 그리고 조국 대 반(反)조국으로 편을 갈랐다. 급기야 코로나19에 헌신해온 의사와 간호사를 이간질하기에까지 이르렀다. 내 편이면 ‘덕분에’이고, 아니면 적폐라는 뿌리 깊은 편 가르기 본능이 작동한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연성 전체주의’ ‘연성 독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