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셀프 안전망’ 퇴임 후 허망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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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호 논설고문

‘선거공작은 했지만 법 지켰다’
‘부대 무단 이탈도 탈영 아니다’
文정권 궤변·행태 빗댄 유행어

잇단 ‘코드 판결’ 대법원도 해당
권력 수사 좌우할 공수처 있어도
민주·법치 파괴 반드시 단죄돼

‘진실을 말한 적은 없지만, 거짓말은 안 했다.’ ‘선거 공작을 했지만, 법은 지켰다.’ ‘부대를 무단이탈해 미복귀했지만, 탈영은 아니다.’ ‘음주는 했지만, 술은 입에도 안 댔다.’ ‘개소리는 맞지만, 짖지는 않았다.’ 국민을 대놓고 바보 취급하면서 황당한 궤변까지 마구잡이로 동원하는 문재인 정권 행태를 비아냥거리는 말들로, 요즘 시중에 유행한다. 청와대가 노영민 비서실장과 김조원 전 민정수석비서관의 ‘심각한 갈등’ 언론 보도를 가짜 뉴스로 몰았으나, 김외숙 인사수석비서관이 국회에서 둘러대기 위해 “(두 사람이) 언쟁을 했지만, 싸운 적은 없다”고 한 뒤에 다른 사안들로도 확산한 표현들이다.

헌법재판소와 함께 법치의 최후 보루여야 할 대법원마저 그런 유(類)의 표현 대상이 되는 판결로, 법조계 안팎으로부터 ‘정치 집단화’ 비판을 자초했다. 해직자도 조합원으로 인정하는 규칙의 시정을 거부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 대해, 2013년 박근혜 전 정부의 고용노동부가 ‘노조 아님’을 통보한 것은 ‘위법’이라고 지난 3일 판결했다. 시행령에 따른 통보여서, 기본권 제한은 법률에 근거해야 하는 헌법의 ‘법률 유보’ 원칙을 어겼다는 취지다. 하지만 법률인 노동조합법에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에는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한다’고 명시돼 있다. 교원노조법도 같이 적용한다. 시행령은 그 조항의 구현을 위해 통보를 하게 했다. 통보하지 않는 게 현행법으론 직무유기의 위법일 수 있다. 헌재는 2015년 “현직 교원 아닌 사람이 교원노조 의사 결정에 개입하면, 노조의 자주성을 해할 수 있다”며 그 조항이 합헌이라고 결정한 바도 있다.

이기택·이동원 대법관이 소수 의견으로 ‘법외 노조 통보는 당연했다’고 밝힌 이유다. 이들은 전교조 합법화를 결정한 김명수 대법원장 등 대법관 10명을 두고 “스스로 법을 창조하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없는 법을 자의(恣意)로 만들어 꿰맞춘 판결을 했다는 것으로, 이런 지경에 이른 배경은 문 대통령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해 노골적으로 드러냈던 ‘마음의 빚’이 전교조에도 적용되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렇잖다면 “대법원이 내 편 불이익은 위법이고, 네 편 불이익은 적법이라는 고무줄 ‘정치 판결’을 계속하고 있다”는 법조계 원로의 개탄까지 부른 ‘법 창조 판결’까지 했겠는가. 전교조 고문변호사도 지낸 문 대통령은 대선을 앞둔 2017년 1월 전교조 위원장을 만나 “집권하면 법외 노조 문제는 임기 초반 조기에 해결할 것”이라고 했다. “(전교조가 법원에 제소했기 때문에) 대법원의 최종 판단을 기다려야 한다”고도 했으나, 절차를 내세운 것이고 전교조 합법화는 공약이었다. 그래서 전교조는 문 정부 출범 직후부터 “우리가 단지 대통령 하나 바꾸자고 그 추운 겨울 광장에 모인 것은 아니지 않은가” 하며, 촛불시위에 집단 참여해 문 정권 출범에 기여한 대가(代價)를 사실상 ‘법외 노조 통보 취소’로 갚으라고 했다. 문 대통령 취임 후에 코드화한 대법원이 그 빚을 갚아주는 역할을 떠맡은 셈이다.

물론 문 대통령의 대법원 코드화가 ‘마음의 빚’ 해결만 겨냥했을 리는 없다. 퇴임 후에 더 불거질 수 있는 권력형 범죄 혐의에 대해, ‘내 편’에 의한, ‘내 편’에 대한 보은(報恩) 재판을 기대하는 ‘셀프 안전망’일 개연성도 크다. 모든 권력 범죄 수사를 사실상 문 정권 편에서 좌지우지할 수 있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신설을 위헌 소지에 아랑곳없이 밀어붙여 온 것도 마찬가지다. 문 대통령 측근 수사는 ‘친문(親文) 여부에 따른 코드 인사’ ‘수사 팀·기구·제도의 해체·축소·변경’ 등 전방위 수단을 동원해 막는 식을 ‘검찰 개혁’으로 둔갑시켜온 행패의 연장선이면서 확대판인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겹겹의 ‘셀프 안전망’도 퇴임 후에는 허망(虛妄)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군부 독재를 이끈 전두환 전 대통령만 해도 그랬다. 쿠데타까지 같이한 친구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정권을 넘겨줬으나 강원도 산골에 유폐(幽閉) 당한 채 매서운 겨울 추위를 냉방에서 견뎌야 했다. 그런 노 전 대통령과 손잡은 김영삼 정권 들어서는 교도소에도 가야 했다. 주요 부역자(附逆者)들도 피할 수 없는 길이었다. 입법·사법·행정부 어디서든지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법치를 뒤엎은 장본인들은 퇴임 후에라도 정치적·역사적 문책뿐 아니라, 법적인 단죄(斷罪) 또한 반드시 있게 된다는 사실이나마 잊지 말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