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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게재 일자 : 2020년 09월 16일(水)
“어항속 사회학자 되기 싫어 망망대해에 책방 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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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은서점’을 운영하는 노명우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가 책장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낙중 기자
■ ‘니은서점’2년 운영 경험 책으로 펴낸 노명우 아주대 교수

인문·사회·예술 서적만 취급
독자들 위한 ‘나만의 컬렉션’
모두가 공유하는 책들도 제공

다양한 사람 보며 세상 배워가
月100만원 손해나지만 버틸것


책을 사랑했던 소년은 커서 사회학자가 됐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도 아들이 읽을 책에 아낌없이 돈을 썼던 부모님은 몇 해 전 차례로 돌아가셨다. 아들은 하늘로 떠난 부모님을 애도하며 주변 사람들이 낸 조의금을 허투루 쓰고 싶지 않았다. ‘두 분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활용 방식이 뭘까’ 고민하다가 문득 ‘책방’을 떠올렸다. 부모님 덕분에 책을 원 없이 읽었고, 학자가 돼 여러 권의 책을 쓴 아들은 서울 은평구의 골목 귀퉁이에 작은 서점을 열었다. 2018년 9월의 일이다.

아주대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사회학자 노명우. 책 ‘인생극장’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 등으로 가장 주목받는 사회학자 중 한 명이 됐다. 그가 최근 출간한 ‘이러다 잘 될지도 몰라, 니은서점’(클)은 연구실과 책방을 분주히 오가며 자영업자로 보낸 2년간의 기록이다. 서점 이름은 어릴 때 동네 사람들이 부르던 ‘노 씨네’에서 ‘니은(ㄴ)’을 따와 지었다. 새로 만든 명함엔 ‘사회학과 교수’라는 직함 대신 ‘마스터 북텐더’라고 적었다. 맞춤형으로 칵테일을 추천하는 바텐더처럼 책을 어렵게만 여기는 이들이 각자의 독서 취향을 만들 수 있도록 돕겠다는 의미다. “책방이 대학과 사회를 잇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다”는 북텐더를 지난 11일 니은서점에서 만났다.

“대학은 일종의 어항 같은 곳이에요. 사회에서 흔히 보는 거친 일이 잘 일어나지 않죠. 그런데 사회학은 사회로부터 고립되면 존재 이유가 흔들리는 학문이에요. ‘어항 속 물고기’로만 머물러 있으면 좋은 학자가 될 수 없는 거죠. ‘니은서점’은 어항을 뛰쳐나와 망망대해에 세운 작은 섬이에요. 서점을 찾는 손님들, 창밖으로 지나다니는 각양각색의 사람을 보며 세상을 다시 배우고 있어요.”

10평 남짓한 서점은 1000권이 넘는 책으로 빼곡하다. 그 흔한 실용서나 참고서는 팔지 않는다. 오직 인문·사회과학·예술서만 취급한다. 조지 오웰, 프리모 레비, 레이먼드 카버, 슈테판 츠바이크 등이 북텐더가 특히 사랑하는 작가들이다.

“여러 제약이 있는 독립서점은 태생적으로 ‘큐레이션 서점’이 될 수밖에 없어요. 니은서점이 고유한 색채와 기준에 따라 고른 책들은 자신만의 보석을 발굴하고 싶은 독자를 위한 ‘컬렉션’인 셈이죠. 판매용 도서들 사이에 ‘공유서재’라는 스티커가 붙은 책들이 있어요. 모두 제가 읽은 책들이고, 밑줄도 그어져 있고, 포스트잇도 덕지덕지 붙어 있죠. 대형 서점에는 없는 특별한 독서 체험을 나누고 싶어 떠올린 아이디어였죠. ‘북텐더 서점’이 되는 것이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어요.”

낭만 어린 부푼 꿈을 안고 서점을 열었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다. 임대료를 감당할 수 있는 공간을 어렵게 구했는데도 적자는 계속되고 있다. “매달 100만 원 정도 손해가 나요. 하루에 책이 한 권도 안 팔리는 ‘빵(0)권 데이’도 한 달에 하루 이틀 정도 되고요. 그래도 오래 버틸 거예요. 지난 2년 동안 주변의 핫도그 가게, 반찬 가게, 통닭집이 차례로 없어졌는데 니은서점만 살아남았어요. 계속 버티다 보면 언젠가는 잘될지도 모르잖아요. (웃음)”

10% 할인과 5% 적립금에 무료배송까지 해주는 온라인 서점이 대세인 시대, 동네 책방의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 노명우는 “책의 물성(物性) 때문”이라고 했다. “어떤 사람들이 주장하는 ‘종이책 무용론’에 동의하지 않아요. 알베르토 망겔이 절묘한 비유를 했어요. 전자책에 대한 사랑이 ‘플라토닉’하다면, 종이책에 대한 사랑은 ‘에로틱’하다고요. 언젠가 레닌 전집, 스탈린 전집을 일일이 스캔해서 전자책으로 변환한 적이 있어요. 공간도 확보되고 여러모로 편리했지만, 그 책과의 친밀한 관계를 잃어버린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책의 물성에는 종이로 된 활자와 독자가 맺을 수 있는 내밀함이 분명 있어요. 전자책이 종이책의 한계를 보완하는 대안이 될 수는 있어도 장점을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다는 거죠.”

노명우는 경제적 가치로만 환산할 수 없는 문화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해 제도 개선이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도 내놓았다. 완전 도서정가제(모든 도서를 할인 없이 판매하는 제도)에 더해 공급률(정가 대비 도매가의 비율) 차등 금지 조치를 시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같은 책이라도 대형 온라인 서점과 동네 서점에 적용되는 공급률이 달라요. 공급률이 다르니 동네 서점은 할인을 많이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는 거죠. 출판사 입장에선 책이 많이 팔리는 온라인 서점에 낮은 가격으로 공급하는 게 시장 원리에 부합한다고 생각할 수 있겠죠. 하지만 책은 ‘문화적 예외’가 적용되는 가장 대표적인 상품이에요. 이 때문에 독일은 완전 도서정가제와 공급률 차등 금지를 동시에 시행하고 있어요. 공정한 경쟁이 가능한 ‘스타트 라인’을 만들어줘야 출판 생태계가 황량해지는 걸 막을 수 있지 않을까요.”

나윤석 기자 nagij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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