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레터>‘완벽하게 숨겨진 우울’… 그 감옥에서 탈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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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입력 2020-09-25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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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남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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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하게 숨겨진 우울(Perfectly hidden depression)’이라는 용어를 들어본 적 있나요. 미국의 임상심리학자 마거릿 로빈슨 러더퍼드가 새 책 ‘괜찮다는 거짓말’(송섬별 옮김·북하우스)에서 통상적인 우울증에는 해당하지 않지만, 그에 못지않게 위험한 증후군을 지칭하기 위해 쓴 표현입니다. 이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다른 사람 눈에는 완벽한 인생을 살고 있는, 말 그대로 완벽주의자들입니다.

저자에게 일반적인 우울증으로 설명되지 않는 우울 증후군이 있다는 깨우침을 준 내털리도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직업상 큰 성공을 거뒀고 아이들과 남편은 물론 직장과 지역사회에서도 성실하고 전반적으로 호감을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술과 약물로 자살을 시도했습니다. 아무런 전조도, 유서도 없었습니다. 집 안은 먼지 하나 없이 완벽하게 정리해 뒀고, 심지어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자기 대신 아이들을 하교시켜달라고 했습니다. ‘완벽하게 깔끔한 자살’, 그러나 아무도 이유를 이해할 수 없는 자살이 될 뻔했던 겁니다.

사실 내털리는 어린 시절 할아버지의 성추행 사실을 꼭꼭 숨겼고, 기대수준이 높은 부모에게 얽매여 살았습니다. 저자는 어린 시절 내털리가 ‘생존’을 위해 택한 전략인 ‘완벽주의자 되기’가 결국 자신을 무너뜨리는 데 이른 것으로 분석합니다. 또 내털리 같은 사람이 우리 주변에 많이 있으며, 이들은 우울증 환자들과는 달리 활기가 넘쳐 보이기 때문에 배우자나 의사 눈에도 환자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더 위험하다고 말합니다.

다친 마음을 치유하는 책들이 넘쳐나는 이때, ‘괜찮다는 거짓말’이 유독 눈길을 끄는 이유는 지금의 한국 사회야말로 ‘완벽하게 숨겨진 우울’에 빠지기 쉬운 환경이기 때문입니다. “너 하나만 참으면 된다”는 식의 개인보다 집단을 우선시하는 문화, 갈수록 치열해지는 경쟁, 완벽함과 ‘∼다움’을 강요하는 사회적 압력….

저자의 처방은 ‘완벽한 페르소나라는 감옥’에서 탈출해 취약하고 불완전한 자신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라는 겁니다. 실패자로 낙인찍힐 것이라는 두려움은 내다 버려야 합니다. 거꾸로 자신과 주변 사람의 ‘경고 신호’를 놓치지 말아야 하며, 이를 위해 눈에 보이는 것만을 전부로 여기지 않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내면의 상처를 드러내는 용기 못지않게 그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배려가 중요함을 알 수 있습니다.

오남석 기자 greente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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