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文정권 몽상이 安保와 국익 훼손한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전인영 서울대 명예교수 국제정치학

지난 22일 서해 연평도 인근 북측 수역으로 표류하던 우리 국민을 북한군이 사살한 사건은 북한의 호전적·비이성적 행태를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북한의 만행에 국민의 큰 좌절감과 불신감이 대통령과 군을 향해서도 표출되고 있다. 북한의 만행은 용서하기 힘든 국제법 위반이며 비인도적 행위다. 국제법에, 해전서 승리한 함장이 바다에서 구조를 요청하는 적군의 구조를 의무화하는 규정이 있다. 공개처형 등 폭력으로 정권을 유지해 온 북한 권력층이 한국민을 사살해 사태를 종결하려 했을지 모르나, 북측의 야만적 관행은 국제사회에선 통하지 않는다.

문재인 정권은 북한의 특성과 실체를 제대로 알고 대처하는지 묻고 싶다. 문 정권은 북한이 대남 도발을 반복해 온 호전적 집단이란 엄연한 현실을 외면한 채 남북교류협력 및 종전선언 실현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이번 사태로 여론이 크게 악화하자, 청와대는 미안하다는 김정은의 메시지가 담긴 통전부 명의 통지문과 더불어 “김정은의 ‘생명존중’에 대한 강력한 의지에 경의를 표한다”는 문·김 정상이 교환한 친서 내용도 공개했다. 이런 친북 정책은 사회를 분열시키고 전통적 한·미 동맹을 약화시키며, 대북 비핵화 및 제재와 같은 주요 정책에서 혼선과 갈등이 발생함은 자명한 이치다.

문 정권은 국내외 정세와 북한 체제의 특성 및 실체를 냉철하게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의욕과 희망적 사고에 근거한 대북정책은 국익과 국가안보를 위태롭게 할 뿐이다. 한국은 미·일 등 주요 우방과 갈등을 빚고, 가공할 핵·미사일을 개발해 온 북한의 심각한 위협과 도발에 직면했다. 문 정권의 세계관과 대북정책은 우리 국익과 위상에 부합하지 않는다.

하지만 김정은이 사과한 지 불과 이틀 만에 조선중앙통신은 “남조선 당국에 경고한다”는 기사에서, 남측이 25일부터 숱한 함정·선박들을 동원해 수색작전을 벌이며 북측 수역을 침범하고 있어 또 다른 불미스러운 사건을 예고케 한다고 경고했다. 북한은 1999년 6월의 1차 연평해전 후 일방적으로 선포한 서해 해상분계선을 기정사실처럼 주장하며, 수색 선박의 영해 침범을 절대로 간과할 수 없다고 경고했고, 시신 수습을 위한 남측의 공동수색 요청을 거부했다. 이번 일로 대북 관계 복원이 복잡해졌고,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 추진은 더 힘들게 됐다.

한국은 북한을 저자세로 대하지 말아야 한다. 북한은 우리의 대응이 강력하면 물러나거나 멈추지만, 나약한 모습을 보이면 쉬운 상대로 여겨 무시하려 든다. 한국은 굳건한 한·미 관계를 바탕으로 북한의 비핵화를 꾸준히 끝까지 추진해야 한다. 북한 체제의 부정적 특성과 행태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김정은이 계몽군주 같다고 말하는 사람은, 김정은이 핵실험을 가장 많이 했고, 장성택·김정남의 말로가 어떠했는지 분명히 알아야 한다.

영국과 프랑스의 평화를 위한 양보와 유화정책은 히틀러의 야욕만 키웠으며 인류 역사상 최악의 재앙인 제2차 세계대전을 초래했다. 프랑스가 1936년 3월 7일 히틀러의 ‘라인란트 진주’를 무력으로 저지했다면 독일에 체코의 주데텐 지방 할양을 허용한 1938년 9월 29∼30일의 뮌헨회담은 불필요했을 수 있다. 문 정권이 불리한 9·19 남북 군사합의에 서명하지 않고, 지난 6월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폭파에 대해 강력히 대응했다면, 피살 공무원의 생사 여부와 시신 수습 결과가 다를 수도 있다. 문 정권은 외교·안보 정책, 특히 대북정책을 시급히 재조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