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달 24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도서정가제 사수를 위한 출판문화계 공동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도서정가제의 근간을 흔들지 말 것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 ‘내달 20일 일몰’ 조만간 주요 쟁점 결론 내릴 듯
정부 “업계 우려 토대로 논의”
여당도 “민관 협의 존중해야”
출판계·작가, 정부 압박 강화
“개악땐 독자들이 최대 피해자”
웹툰·웹소설은 다른 목소리
현행 도서정가제의 일몰 시점이 오는 11월 20일로 다가오면서, 도서정가제 개편 방안을 놓고 평행선을 달려온 정부와 출판·서점 등 관련 업계가 극적 타협점을 찾을지 주목된다. 양측의 갈등이 불거진 뒤 공개 발언을 아껴 온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난 7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2019년 6월부터 약 1년 동안 이뤄진 민관협의체 협의안을 중시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여당 인사들도 출판문화계의 우려에 공감을 표하면서 정부 기류가 바뀌는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낳고 있다. 입법 절차에 소요되는 시간을 감안하면 늦어도 이달 중 최종안이 확정돼야 하는 만큼, 문체부는 조만간 주요 쟁점에 대해 결론을 내릴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정부와 갈등을 빚는 과정에서 출판문화계 일각이 더 강경해진 데다 웹툰·웹소설 등 전자 콘텐츠 업계는 내부에서도 다른 목소리가 나오고 있어, 정부의 결정이 논란을 잠재울 수 있을지는 불분명하다.
◇문체부, “9월 ‘추가 검토안’ 고집 안 한다” = 문체부 관계자는 12일 “(도서정가제 개편 방안에 대한) 출판계의 우려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며 “제기된 우려를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고, 면밀히 검토해 조만간 합리적인 방안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지난 9월 문체부가 제시한 추가 검토안 내용대로 추진하느냐’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며 “아직 검토 단계라 속 시원하게 말할 수 없지만 확실한 점은 출판계 우려를 충분히 이해하고, 그걸 토대로 논의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문체부는 지난 9월 △문체부가 주최하거나 예산을 지원하는 도서전에 한해 도서정가제 적용 제외 △기존 연재 중인 웹툰·웹소설은 완결 전까지 도서정가제 적용 유예 △발행 후 3년이 지났고 최근 1년간 판매되지 않은 장기 재고도서의 도서정가제 적용 제외 △전자 콘텐츠 할인 범위 20%까지 확대 등을 골자로 한 ‘추가 검토안’을 내놨다.
그러나 출판문화계는 “지난해 6월부터 약 1년 동안 16차례에 걸쳐 정부와 출판계, 전자출판계, 유통계 등이 협의한 민관협의체 합의안을 뒤집은 것으로, 도서정가제를 형해화하는 개악(改惡)안”이라며 반발을 이어왔다. 정부가 9월 ‘추가 검토안’을 고집하지 않을 경우 극적 타협 가능성이 커지는 셈이다.
정부 기류의 변화 조짐은 지난 7일 문체부를 대상으로 한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감에서부터 나타났다. 박양우 장관은 도서정가제에 대한 질문을 받고 “기본적으로 민관협의체에서 마련한 것을 근간으로 추진한다”며 “국민청원이 제기돼 이용자 의견을 듣는 과정이 있지만, 도서정가제는 유지가 기본”이라고 말했다. 박 장관은 또 “현행 출판문화산업진흥법은 3년마다 도서정가제의 타당성을 검토해 폐지·완화·유지하도록 했는데, ‘강화’도 함께 논의하는 게 맞는다”는 도종환 국회 문체위원장의 지적에 “정책은 완화와 폐지만 아니라, 때로 강화되기도 해야 하고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답했다.
지난 7월 정부와 출판문화계의 갈등이 본격화한 뒤 박 장관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이에 대한 입장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다만, 문체부 관계자는 “애초부터 정부는 필요한 경우 도서정가제를 개선하자는 것이었지, 폐지나 개악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며 박 장관의 발언이 일관된 정부의 입장에서 벗어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인사들이 국감에서 박 장관에게 출판문화계의 우려를 전달한 것도 정부 기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인이다. 시인인 도 위원장은 지난 2014년 현행 도서정가제가 시행된 뒤 출판사 수와 신간 종수가 늘어났음을 언급하며 “지금의 도서정가제는 유지되는 것이 맞는다”고 말했다. 도 위원장은 “책은 저렴한 가격이 아닌 적정한 가격에 공급돼야 하는 공공재”라며 “도서정가제라는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사라지면 많은 서점이 문을 닫을 것”이라고 했다. 문체위 민주당 간사인 박정 의원은 “작년부터 민관협의체가 어렵게 합의안을 만들었고, 각자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상황에서 합의안을 도출한 것”이라며 “1년간 노력했던 의견을 존중해주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쟁점들 어떻게 정리될까… 압박 수위 높이는 출판계 = 문체부는 도서정가제 일몰까지 남은 시간을 감안할 때 민관협의체 재가동은 어렵다고 보고 있다. 의견 수렴도 이미 충분히 이뤄졌다는 판단이다. 이에 따라 박 장관 말대로 민관협의체 협의안을 근간으로 문체부가 최종안을 결정하거나 일부 사안에 한해 관련 업계의 의견을 들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문체부는 최종안 내용에 대해 극도로 말을 아끼고 있다. 이런 가운데 ‘도서정가제 사수를 위한 출판문화계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는 대정부 압박 수위를 최고조로 끌어올리고 있다. 공대위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한국출판인회의는 지난 7일 ‘도서정가제가 없어지면 우리가 읽고 싶은 책이 사라집니다’라는 제목의 책을 펴냈다. 또 6일에는 한국작가회의와 함께 도서정가제 관련 작가 대상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소설가 한강, 시인 박준, 이광호 문학과지성사 대표 등이 참석한 가운데 작가토크도 열었다.
한강 작가는 도서정가제가 형해화할 경우 “짧게 보면 좋을 수도 있다. 재고가 쌓였던 큰 플랫폼은 저가에 처리할 수 있고, 우리도 싼값에 책을 사면서 몇십만 원 이득을 볼 수도 있을 것”이라며 “그러나 그런 잔치는 금방 지나가고, 작은 출판사들, 그런 것(다양성과 대안)을 모색하는 가능성들의 죽음을 겪게 될 것이며 그에 따른 최대 피해자는 독자들, 그리고 독자가 될 수 있는 아직 어린 세대들”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김학원 한국출판인회의 회장(휴머니스트출판그룹 대표)은 문체부가 9월에 내놓은 ‘추가 검토안’에 대해 “모두 민관협의체에서 정부와 민간이 함께 검토했다 채택하지 않은 내용들”이라며 수용하기 어렵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김 회장은 “정부는 이번 논란을 거치면서 동네서점 등을 중심으로 기존 도서정가제를 오히려 더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이 나왔음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남석 기자 greente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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