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인재 중시한 賢人… 늘 머리 숙여 배우는 자세 보였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26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조문객들이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 ‘애니콜 신화’ 이끈 이기태 前 삼성전자 부회장이 본 이건희

“버튼위치 등 세심하게 조언
‘이건희폰’ 1000만 대 팔려”
“돈보다 인류 삶 개선에 힘써
韓산업계에 떨어지는 별 아닌
영원히 기억 될 경영의 大家”

李회장 전폭적인 지원 통해
노키아 제친 기억 등 되새겨

“삼성 휴대전화 세계 1위의 발판을 다진 ‘애니콜신화’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전폭적으로 지원한 결과물입니다. 이 회장은 한국 산업계에서 떨어지는 별이 아니라 기업가 정신과 1등 DNA로 영원히 남을 ‘경영의 대가’입니다.”

이기태 전 삼성전자 부회장은 10년 넘게 곁에서 보필한 이 회장에 대해 “기술, 경영, 인재관리, 리더십을 모두 갖춘 현인(賢人)”이라고 평했다. ‘미스터 애니콜’이란 애칭을 가진 이 전 부회장은 삼성 휴대전화 사업의 산증인이다. 지난 1973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2001년부터 2007년까지 삼성전자 정보통신총괄 사장을 맡아 휴대전화를 한국의 대표 수출제품으로 성장시킨 인물이다.

이 회장이 현재 삼성의 양대 축인 반도체와 휴대전화 사업을 구축할 때 반도체 부문에 황창규 전 KT 회장이 있었다면 휴대전화 부문에는 이 전 부회장이 있었다. 삼성전자가 지난 2012년 스마트폰 ‘갤럭시’ 시리즈로 전 세계 1위에 오른 것은 이 전 부회장의 ‘애니콜 신화’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 전 부회장이 삼성 휴대전화 사업을 진두지휘하면서 ‘이건희폰’ ‘벤츠폰’ ‘블루블랙폰’ 등 텐밀리언셀러(1000만 대 이상 팔린 제품)를 앞세워 약 10년 동안 애니콜 판매량을 100배가량으로 늘렸다. 1995년 100만 대에 불과했던 애니콜 판매량은 2005년 1억 대에 달하면서 그해 콧대 높은 유럽 주요 국가에서도 절대 강자 노키아를 제치고 1위로 올라섰다.

이 전 부회장은 26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애니콜 신화는 이 회장이 지원해주지 않았다면 불가능했다”며 “이 회장은 휴대전화 사업을 키우기 위해 사실상 모든 것을 지원해줬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이 필요하다면 사람을 뽑게 해줬고, 명품업체와 협업이 필요하다면 길을 터줬고, 제품 개발에 필요한 기기까지도 세심하게 챙겨줬다”고 덧붙였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2005년 이탈리아 밀라노 전략회의에 참석한 이건희(가운데) 삼성전자 회장과 당시 정보통신총괄 사장이었던 이기태(오른쪽) 전 삼성전자 부회장이 제품 디자인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이 회장은 휴대전화를 개발할 때 인사이트(통찰력)를 자주 제시했다고 한다. 당시 이 회장은 휴대전화를 한 손에 쏙 쥘 수 있는 손맛(그립감)과 쉽게 쓸 수 있는 사용성을 중시했다. 이 전 부회장은 “이 회장은 시제품을 받은 후 ‘센드(Send)’ ‘엔드(End)’ 버튼을 위로 올려봐라, 자주 쓰는 키를 위로 올려봐라 등 색상과 디자인, 편의성에 대해 의견을 자주 냈다”고 말했다. 2002년 이 회장의 아이디어가 담긴 ‘이건희폰’은 삼성전자 최초로 1000만 대 이상 팔리는 ‘대박폰’이 됐다. 조약돌 같은 세련된 디자인과 편한 손맛으로 이건희폰은 삼성 휴대전화 디자인의 전환점을 만들었다.

이 회장은 휴대전화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디자인을 늘 강조했다고 한다. 같은 제품도 디자인이 좋아야 비싸게 팔 수 있다는 게 이 회장의 지론이었다. 이 전 부회장은 “이 회장은 ‘디자인도 사람’이라고 말하면서 디자인 인력을 소중하게 여겼다”며 “디자이너들이 소외되지 않도록 인프라를 갖춰주고 디자인 조직 등도 보강하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당시 세계 1위 노키아와 공정 경쟁을 할 수 있는 토대도 마련해줬다. 이는 이 회장 특유의 경영 철학에서 비롯됐다. 이 전 부회장은 “삼성이 노키아와 치열하게 경쟁만 한 줄 알지만 이는 시장 관점의 차이”이라면서 “이 회장의 사업 목적은 돈을 버는 게 아니라 사업으로 보국하고 인류 삶을 개선하는 데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 회장은 노키아 핀란드 본사에 경영진과 개발자들을 보내 노키아 측과 사업 논의도 하고 휴대전화 시장의 올바른 성장 방향성을 위해 협업하도록 지원해줬다”고 설명했다.

이 전 부회장은 이 회장에 대해 기술을 중시한 현인이라고도 평했다. 이 회장은 기술 앞에선 직원들과 같이 머리 숙여 배우는 자세로 겸허하게 임했다고 한다. 인간 중심의 경영을 펼쳤다고도 소회했다. 그는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차갑고 냉혹한 승부사는 결코 아니다”라며 “사람들이 단지 상사가 무섭다고 따르지는 않는 만큼 따스한 마음이 없었다면 그런 리더십이 나올 수 없다”고 말했다. 이 회장이 가장 경계했던 대목은 ‘무사안일’이다. 이 전 부회장은 “이 회장은 경영진에게 잠시 조는 순간 다 죽는다면서 단 한 순간도 졸지 못하게 했다”면서 “늘 위기와 함께 산 분”이라고 말했다.

권도경 기자 kwo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