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바이든 시대엔 안 통할 ‘깜짝쇼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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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욱 美 스탠퍼드대 교수 아시아태평양연구소장

지난 10일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이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를 예방했을 때 내년 도쿄올림픽에서의 남·북·미·일 4자 정상회담을 제안했다고 한다. 또, 12월에는 이인영 통일부 장관의 워싱턴 방문도 거론된다. 그동안 정체된 미·북 대화의 동력을 찾으려는 문재인 정부의 심정은 이해하지만, 조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 방향이나 코드와는 안 맞다.

우선, 바이든 당선인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리얼리티쇼 식 톱다운 방식에는 거부감이 크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만남 자체를 거부하진 않더라도, 북한의 분명한 비핵화 의지를 확인하는 등 실무진에서 철저한 사전 준비 없이 정상회담에서 담판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싱가포르와 하노이의 미·북 정상회담이 비핵화는커녕 별 소득도 없이 북한과 김 위원장의 정통성과 몸값만 올렸다는 게 바이든 측 시각이다.

바이든은 상원의원으로 37년, 부통령으로 8년간 재직했으며 상원 외교위원장도 여러 번 지낸 외교 베테랑이다. 전통적 외교 스타일을 중시하고 전문 외교관을 중용하며 주위엔 인재가 넘친다. 트럼프 행정부처럼 중앙정보국(CIA)이 중심이 돼 마이크 폼페이오-김영철 정보라인을 만들고 대북 외교를 주도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오히려 빌 클린턴,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에 대북 문제를 전담케 했던 대북정책조정관 직을 다시 만들 수도 있다. 문 정부도 국가정보원이 아닌 외교부나 통일부 중심으로 대북정책 라인을 재편할 필요가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북한 문제에 있어 한·미·일 공조를 강조할 게 분명한 만큼 지난 2년간 최악의 상황이 된 한·일 관계를 복원하는 일이 시급하다. 트럼프 행정부는 사실상 일본의 아이디어인 ‘인도-태평양’ ‘쿼드’ 등을 추진하면서 한국의 적극적 참여를 독려하지도 않았지만, 바이든 행정부는 한·미·일 공조를 통해 중국을 견제하면서 대북정책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도쿄올림픽 구상’을 하기 전에 징용 문제 등 한·일 갈등의 주요 사안에 대해 더욱 적극적으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더구나 대중·대북 정책에 있어 인권 문제 등이 거론되면 상황은 더 복잡해질 것이다. 중국과의 기술·무역·안보 분야 갈등 구조는 계속될 것이며, 전통적인 미국의 리버럴인 바이든에게 인권과 민주주의 등은 단순한 정치적 이슈가 아닌 가치의 문제로, 쉽게 타협할 수 없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공석으로 남아 있던 북한인권대사를 임명할 경우, 한국도 공석인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 직을 채워 파트너십을 강화해야 한다.

2001년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빌 클린턴 행정부 막바지에 급진전하던 미·북 관계가 좌초할 움직임을 보이자 그해 3월에 김대중 대통령이 급히 워싱턴을 방문했다. 당시 김 대통령은 첫 남북 정상회담 공로로 노벨 평화상까지 받은 노련한 정치인이었지만, 워싱턴에선 너무 서두른다는 분위기가 팽배했고 방미 노력은 결실을 보지 못했다. 바이든 행정부의 경우 코로나19 팬데믹, 경제 회복, 인종 갈등 등 힘겨운 국내 현안이 산적해 내년 상반기엔 대북 문제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을 것이다. 종전선언, 정상회담 등 한국의 어젠다에 치중해 성급하게 나서기보다는, 바이든 행정부에서 중요하게 다뤄질 원칙과 사안에 대해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