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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1세기 과학의 최전선, 궁극의 질문들 게재 일자 : 2020년 11월 17일(火)
과학과 인문학은 동등한 파트너…‘집어삼킴’ 아닌 合致 있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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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밥장 작가

■ (16) 새로운 통섭은 어떻게 가능한가?

무조건 낮은 수준으로만 설명하려 한다?…환원주의 신봉하는 과학자는 없어
인문학자의 전문지식을 과학자의 실증적 연구방식과 결합
각각의 학문적 연구결과가 중간지점서 만나 잘 맞아야 하는 ‘터널공사’와 같아


까놓고 말하자. 예술이나 인문학을 하는 사람이 굳이 과학까지 알아야 하나? 셰익스피어의 비극 ‘오셀로’를 분석한다고 하자. 16세기 베니스의 백인 사회에서 행해진 인종 차별, 그리고 가부장제 문화에서 남성의 여성 억압을 짚어내면 얼추 넉넉할 성싶다. 문학 비평가가 뇌과학이나 네트워크 과학, 진화 심리학을 속성으로 공부한들 도대체 뭐가 달라질까?

일리 있는 말이다. 인문학은 텍스트를 정교하게 독해하고 어떤 현상이 일어난 사회적 맥락을 포착하는 고유의 방법론으로 지금껏 잘해 왔다. 그러나 인문학자들이 개별 대상을 파고들 때 보여 주는 극도의 엄밀함이 그 연구를 다른 모든 학문과의 관계망에서 폭넓게 자리매김할 때는 갑자기 시들해짐을 부인하기 어렵다. 왜 베니스의 오셀로건 신라의 처용이건 남성들은 배우자의 정서적 부정보다 육체적 부정에 더 흔들릴까?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부부 사이에서 살인이 훨씬 더 자주 일어난다는 현대 미국과 캐나다의 범죄 기록은 ‘오셀로’를 분석하는 데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할까?

1998년에 사회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Edward O. Wilson)은 ‘통섭’에서 예술, 종교,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등 학문의 큰 가지들이 하나의 일관된 설명 틀에서 통합돼야 함을 주장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많은 인문학자가 분노를 터뜨렸다. “흥, 통섭은 과학이 인문학의 무릎을 꿇리려는 일방적인 폭거일 뿐이야!” 그 후 통섭은 어떻게 됐을까?

통섭의 두 번째 물결이 오고 있다. 이를 주도하는 중국학자인 에드워드 슬링거랜드(Edward Slingerland)는 새로운 흐름이 기존의 통섭 기획을 계승하면서 몇몇 한계를 바로잡고 신선한 이정표를 제시한다는 의미에서 ‘두 번째 물결’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하지만 이 흐름이 원래의 지향을 고스란히 물려받음을 고려하면 ‘통섭 버전 1.1’ 정도가 더 나은 이름일지 모른다고 말한다. 어쨌거나 통섭의 2차 물결, 혹은 1.1차 물결을 살펴보자.

통섭을 처음 주창한 선구자들은 통섭이 자연 현상이나 동식물을 설명하는 틀을 그대로 가져와 인간의 의미와 가치를 밝혀내는 작업이라고 종종 이야기했다. 1975년에 윌슨은 ‘사회 생물학’에서 이렇게 썼다. “외계 행성에서 온 동물학자의 눈으로 보면, 인문학과 사회과학은 생물학에 속하는 전문 분야들로 축소된다. 역사나 전기, 소설은 인간 행태학의 관찰 사례 보고서가 되고, 인류학과 사회학은 모두 영장류의 한 종에 대한 사회 생물학이 된다.” 이런 말에 발끈하지 않는 인문학자가 과연 있을까?

통섭의 두 번째 물결은 통섭에 대한 이런 식의 접근은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틀렸다고 본다. 과학이 인문학을 집어삼키는 미래를 불필요하게 연상시키므로 이런 접근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자연 현상과 동식물을 설명하는 틀만으로는 인문학의 여러 문제를 온전히 다 해결할 수 없으므로 이런 접근은 틀렸다. 즉 통섭은 인문학자들과 과학자들이 동등한 파트너로서 인문학의 다양한 주제를 탐구하는 새로운 틀을 함께 만들어 가는 작업으로 이해돼야 한다. 통섭은 일방향 도로가 아니라 쌍방향 도로다. 과학과 인문학이 활발히 교류하며 머리를 맞댄다.

여기서 통섭을 외친 선구자들을 만만한 허수아비로 만들고 실컷 두들겨 패는 오류를 저지르지 않도록 하자. 윌슨을 포함해 그 어떤 과학자들도 “통섭은 과학이 인문학을 정복하는 건가요?”라고 물으면 펄쩍 뛰며 손사래를 친다. 심지어 윌슨은 ‘인간 존재의 의미’(2014년)에서 가상의 외계 방문자가 지구인으로부터 배울 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길 것은 과학이 아니라 인문학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 왜 이리 외계인 방문을 좋아하실까?) 찰스 스노(Charles P. Snow) 경이 ‘두 문화’(1959년)에서 자연과학과 인문학 사이의 심각한 괴리를 한탄한 이래, 줄곧 과학자들은 인문학도 자연과학처럼 누적적인 진보를 이루면서 발전하기를 소망하고 응원했을 따름이다. 인문학은, 남의 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중요한 주제를 탐구하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통섭의 두 번째 물결은 좋은 게 좋다는 식의 어정쩡한 화합을 추구한다고 오해할지 모른다. 절대 그렇지 않다. 몇 번째 물결이건 간에, 모든 연구자가 동의하는 통섭 개념의 교집합은 학문 간의 상호 합치다. 즉 각각의 학문 분야가 내놓는 설명들이 서로 모순되지 않고 잘 맞아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이는 지극히 당연하고 상식적인 요구다. 생명체 안에서 일어나는 광합성이 열역학 법칙을 거스른다면 이만저만한 문제가 아닐 것이다.

안타깝게도, 많은 인문학자가 인간의 의미, 목적, 그리고 문화는 자연적 인과 관계와 멀찍이 떨어져 있다고 믿는다. 의미와 가치는 자연법칙과 무관한 초월적인 영역에 속한다는 것이다. 이 명제는 자연과학의 전 분야가 내놓는 설명들과 어긋난다. 하지만 상당수 인문학자는 이러한 불협화음을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미와 가치는 물리 세계의 작용으로부터 나온다. 어떤 현상은 그보다 한 단계 낮은 수준에서 작동하는 원리가 어떻게 그 현상을 만드는지 밝혀냈을 때 비로소 설명된다. 설명에 동원된 원리는 더 낮은 수준의 원리로 차례차례 계속 설명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을 설명하고자 할 때 “원래 역병은 다 그래” 혹은 “신의 징벌이야”라고 답한다면 진정한 설명이 아니다. 왜 역병은 그렇게 퍼지는지, 왜 신이 그런 벌을 내렸는지 더는 설명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이쯤에서 과학에 중대한 범죄 혐의를 덧씌우고 싶어 한다. 맞는다. 환원주의다. 흔히 환원주의는 복잡한 대상을 무조건 가장 낮은 수준까지 파고 내려가서 설명하려는 몰상식한 태도로 여겨진다. 이러한 ‘나쁜’ 환원주의를 떠받드는 과학자는 어디에도 없다. 무엇보다도, 어떤 현상을 그보다 한 단계 낮은 수준의 원리로 설명하는 작업은 그 현상의 다채롭고 풍부한 결을 내다 버리는 짓이 아니다.

새로운 통섭을 옹호하는 인지 과학자 스티븐 핑커(Steven Pinker)는 ‘지금 다시 계몽’(2018년, 한국어판 2020년 출간 예정)에서 과학과 인문학의 통섭은 양자 모두에 ‘윈-윈’이 됨을 강조했다. 예술, 사회, 그리고 문화는 인간 두뇌의 산물이다. 이들은 외부 세계를 느끼고 지각하고 생각하는 각 개인의 심적 능력에서 솟아나 사람들끼리 서로 아이디어를 주고받는 전파 과정을 통해 여문다. 현대 과학이 인간 본성에 대해 지금껏 쌓아 올린 빛나는 연구 성과들이 종교, 예술, 정치, 도덕, 역사, 문학, 법, 경영 등을 이해하는 데 아무런 쓸모가 없다면 그것이야말로 놀라운 일이 아닐까?

▲  전중환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인문학자들의 개별 대상에 대한 연구는 더 폭넓고 더 강력한 설명 틀 안에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미지의 사실을 예측하고 이를 관찰과 실험으로 하나씩 확인해 가는 모습은 야망 넘치는 많은 젊은이를 인문학 후속 세대로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다.

몇몇 인문학자는 예술이나 문학처럼 인문학의 전통적인 영역에 통섭적으로 접근하는 최근 과학자들의 시도가 지나치게 단순하거나 깊이가 얕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당연히 그럴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 어떤 장르에 대한 인문학자들의 전문 지식을 과학자들의 실증적 연구 방식과 결합할 필요성이 더욱더 절실히 요청된다고 핑커는 역설한다.

좋은 발상은 어디에서나 나올 수 있다. 발상이 얼마나 좋은지가 중요하다. 발상을 낸 사람이 어느 편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통섭의 두 번째 물결은 과학자와 인문학자가 서로를 존중하면서 인간의 의미, 가치, 그리고 문화를 온전히 밝혀내기 위해 활발히 소통하고 협력할 것을 요구한다. 통섭은 쌍방향 도로다. 혹은 터널 공사다. 과학과 인문학이 산의 양쪽 끝에서 각자 터널을 파고 들어가 중간 지점에서 행복하게 만난다.

전중환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 용어설명

통섭(統攝, consilience) : 19세기의 자연 철학자 윌리엄 휴얼(William Whewell)이 처음 만든 용어다. 한 분야에서 얻어진 결론이 다른 분야에서 얻어진 결론과 서로 부합한다면 그 설명이 참임을 알 수 있다는 뜻이다. 나중에 에드워드 윌슨은 통섭을 “예술, 윤리, 종교를 포함한 인간의 모든 지식 체계를 자연적 인과 관계의 단일한 그물망으로 통합하려는 시도”라는 뜻으로 썼다. 불행히도 우리나라에서는 ‘통섭’이 서로 무관하다고 여겨져 온 분야들 사이에 벽을 허물고 융합하려는 노력을 일컫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환원주의(reductionism) : 자연의 복잡한 실체는 한 단계 낮은 수준에 있는 구성 요소 간의 상호 작용으로 설명될 수 있다는 관점을 말한다. 흔히 “그 사람은 환원주의자야!”라는 말은 “그 사람은 천하의 대역죄인이야!”라는 뜻으로 통용된다. 그러나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나쁜’ 환원주의자는 현실 세계에는 없다. 사실, 진정한 설명은 어떤 식으로든지 환원을 포함한다. 낮은 단계의 구성 요소들이 어떻게 복잡한 실체를 만들었는지 알아야만 비로소 ‘그것은 왜 그렇게 존재하는가?’에 답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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