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합니다>기타 퉁기며 어니언스 노래… 과묵한 멋쟁이 장인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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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호(1953∼)

국내 1세대 포크 듀엣 ‘어니언스’의 노래를 듣는다. 어딘가에서 들어본 듯한 곡조와 가사. 복고 열풍이 한창인 요즘, 1970년대를 풍미한 이들의 곡이 이제 30대 후반인 내게도 정겹게 다가오는 이유는 아마도 어릴 적 어머니가 그들의 노래를 즐겨 들으셨기 때문이 아닐까? 어머니는 그들의 데뷔곡 ‘작은 새’와 ‘사랑의 진실’을 좋아하셨다.

‘말없이 건네주고／달아난 차가운 손／가슴속 울려주는 눈물 젖은 편지’로 시작하는 ‘편지’와 ‘어두운 밤 구름 위에 저 달이 뜨면／괜스레 날 찾아와 울리고 가네’로 시작하는 ‘저 별과 달들’.

이 노래들은 장인어른의 십팔번이다. 고단한 바깥일을 마치고 귀가하시면 방에 들어가 어쿠스틱 기타를 퉁기며 이 노래들을 부르신다. 시간이 날 때마다 찾아가시는 동해안 바닷가에서도 예의 기타연주는 빠지지 않는다. 밤이면 달과 별을 보며 현을 울리는 장인어른의 20대부터 감성을 지배해온 그 포크송. 처음엔 낯설었던 이 곡들은 이제 장인어른의 입을 통해 불혹을 앞둔 내 감성을 흔들며 입가를 맴돈다.

10여 년 전, 장인어른은 내게 딸을 시집보내기를 주저하셨다. 애써 손사래 치며 반대하지는 않으셨지만, 무일푼에 미래가 불투명한 새파란 사내에게 선뜻 딸의 인생을 맡기기는 힘드셨을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결국 장인어른의 허락을 얻고 아내와 백년가약을 맺을 수 있었다. 내 인생 가장 벅찼던 결혼식 날, “신랑 입장” 구령에 맞춰 보무당당히 주례 앞에 다다른 나는 무엇이 그리 급했는지 장인어른이 딸을 데리고 오시는 길 중간까지 걸어 나와 아내의 손을 건네받았다. 결혼행진곡은 절반도 채 연주되지 못하고 황급히 마무리 지어졌고, 하객들은 “신부 아버지 서운하시겠네”라며 웃음꽃을 피웠다.

장인어른은 언제나 과묵하셨다. 한때는 가시방석 같았던 그 고요함. 입술을 굳게 다문 장인어른은 그 묵직한 침묵으로 내게 무엇을 말하고자 하셨을까? 어느 날 장인어른은 나와 술잔을 기울이며 청년 시절의 이야기를 털어놓으셨다. 군대를 제대하고는 무일푼으로 세상에 내던져진 장인어른은 뭐라도 해야 입에 풀칠할 수 있었던 힘든 시절, 나의 아내를 구김살 없이 키우셨다.

장인어른은 이따금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란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아느냐고 물으시곤 한다. 1993년 성철 스님이 입적을 앞두고 남긴 이 말의 깊은 뜻을 어찌 헤아리랴. 단견으로 답하면 “더 생각해보라”고 하셨다. 어쭙잖은 지금의 생각으로는 어쩌면 “너 자신을 알라”는 그리스 아폴론 신전에 남겨진 격언의 의미와 일맥상통하지 않나 짐작한다.

한번은 내게 ‘도전’이라는 화두를 던지셨다. “남자는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해선 안 돼.” 보름달 아래에서 술잔을 건네며 주신 이 한마디는 당시 중대기로 앞에서 서성이던 내 인생에 지표를 제시했다. 풍류를 즐길 줄 아시고, 뜻하지 않은 상황에서 필요한 깨우침을 주시는 나의 장인. 언제고 자랑하고 싶은 나의 어른이다.

아버님의 하나뿐인 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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