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민주주의 동맹’과 文정권 역주행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숙 논설위원

바이든 ‘미국의 귀환’ 맞물려
민주주의 10國 연대 D10 부상
내년 G7 주최 英은 한국 초청

이명박 정부 때 G20회의 개최
한국 민주·경제 10대 국가 진입
反인권 親권위주의 외교 안 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민주주의 국가들의 연대 필요성을 제창하면서 민주주의 문제가 새로운 국제 질서의 화두가 될 움직임이다. 영·미권에선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확대개편론과 함께 아예 G7을 민주주의 10개국(D10) 정상회의로 변화시키자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G7 확대론은 올해 의장국인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6월 한국과 호주, 인도, 러시아를 초대하겠다고 밝히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슈퍼 파워인 미국이 이니셔티브를 갖고 밀어붙이면 G7 확대가 성사될 것이란 관측이 있었다. 그러나 영국과 캐나다가 2014년 축출된 러시아의 재참여에 반대하면서 확대 논의는 흐지부지됐다.

이런 와중에 내년 G7 의장국인 영국의 보리스 존슨 총리가 지난 10일 문재인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G7 초청 의사를 전했다. 미국 대선 후 일주일 만에, 바이든 당선이 사실상 확정되자마자 영국이 재빠르게 움직인 것은 의미심장하다. 영국의 움직임은 외형상 트럼프 대통령의 G7 확대론을 이어받는 모양새지만, 단순한 확대가 아니라 바이든 시대에 맞게 성격 변화까지 모색하는 듯하다. 이미 더타임스는 지난 5월 영국 정부가 G7 개혁을 모색하면서 한국 등 3개국을 추가해 민주주의 10개국(D10) 정상회의로 개편하려 한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G7은 세상 변화를 반영하지 않는 낡은 조직”이라며 한국 등 4개국을 초청하고 싶다는 뜻을 언론에 밝혔다. D10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지만, 영국의 G7 확대 구상을 수용한 것이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6월 1일 문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G7 초청 의지를 밝혔다.

영국은 미국 외교 흐름을 예측할 수 있는 창과 같다. 대영제국의 패권이 미국으로 평화적으로 이전된 후 영국은 늘 신흥 파워 미국과 행보를 함께했고, 세계 경영의 경험을 가진 영국의 국제 전략은 종종 미국의 지침이 되곤 했다. 천영우 전 외교안보수석은 자신의 유튜브 방송에서 “2008년 뉴욕발 금융위기 후 신설된 G20 정상회의는 영국의 제안을 조지 W 부시 당시 대통령이 수용하면서 성사된 것”이라고 공개한 바 있다. 주영대사로 있을 때 이런 움직임을 감지한 천 전 수석은 이런 기류를 본부에 알렸고 이명박 정부가 선제적 대응에 나선 덕분에 G20 회원국으로서 중추적 역할을 할 수 있었다. 북한이 영국 기류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회의원이 된 태영호 전 주영북한공사는 ‘3층 서기실의 암호’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영국 움직임을 보고 미국의 정책을 예측했다”고 증언했다. 2003년 이라크전 후 북한이 영국에 대사관 개설에 나선 것은 영국을 통해 미국의 변화를 감지하려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대선 패배 후 트럼프 대통령은 국정에 손을 놓고 있어 임기 내 G7 회의 개최 여부는 미지수다. 하지만 영국의 움직임은 G7 확대 신호인 만큼 주도적으로 논의에 참여해 기회를 잡아야 한다. 중국 눈치를 보며 소극적 참여 정도에 머물다간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을 우선시하며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불참한 박근혜 정부의 실책을 반복할 수 있다. 바이든이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제안한 만큼 G7이 D10으로 변화될 가능성도 있다. 영국의 D10 구상은 국가 안보적 측면에서 화웨이 퇴출을 결정한 후 자유진영의 5세대(G) 통신장비 공급망 확보 차원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런 만큼 영국의 5G 협력론에 바이든의 민주주의 국가 연대 구상이 추가될 수도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추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올해 국내총생산(GDP)은 세계 10위다. 국력으로나 민주화 이력으로나 명실상부한 D10 국가다. 200여 세계 국가 중 상위 5% 선진국인 만큼 주도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5G 장비 공급사인 삼성전자가 있어 더 유리한 위치다. 바이든 시대가 개막되면 국제질서가 민주주의국 연대 중심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 그전에 한·일 위안부·징용 갈등을 해결하고, 방위비 협상과 전시작전권 전환 갈등 등 한·미 동맹 균열 요소도 해소해야 한다. 그러나 이른바 민주화 운동권 세력이 주축인 현 정부가 친중·친북 정책을 고수하며 반인권·친권위주의 외교를 지속하면 대한민국은 외톨이가 되고, 세계질서 창출국 도약 기회도 날려 버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