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숭현의 지구문답>‘지각·맨틀·핵’으론 설명 못한 지구현상… ‘판구조론’이 해답 제시

대륙은 판 위의 특정 영역으로
미끄러져 움직이는 메커니즘
판이 힘을 받으면 휘어지는데
임계점 넘는 순간 지진 발생

지진 안전지대로만 알았던 한반도에서도 이제 지진 소식이 낯설지만은 않다. 대형 지진이 발생하면 ‘불의 고리’, 즉 환태평양 조산대에 관한 기사들을 접하게 된다. 이곳에서 대규모 지진의 80∼90%가 발생하며 대규모의 화산 폭발도 자주 일어나기 때문이다. 환태평양 조산대의 위치는 어디이며 이곳에서 지진과 화산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환태평양 조산대는 남극대륙을 제외한, 태평양을 둘러싸고 있는 대륙에 가깝게 분포하고 있다. 대륙 연변부는 불의 고리의 영향을 많이 받는 셈인데 남북아메리카 서부, 일본, 대만에 지진과 화산이 잦은 이유도 이와 관련돼 있다. 한반도는 불의 고리에서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지진과 화산의 빈도가 낮은 것이다. 환태평양 조산대에서 지진과 화산이 빈번한 이유를 설명해 주는 이론이 바로 ‘판구조론’이다. 판구조론은 지진과 화산뿐 아니라 지구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환경을 포괄적으로 설명해 준다.

판구조론은 쉽게 말해 지구의 표층이 여러 개의 판으로 구성돼 있고 중요한 지질 활동 대부분이 판들의 경계에서 일어난다는 이론이다. 환태평양 조산대는 바로 판들의 경계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그런데 판구조론에서 ‘판’이란 무엇일까? 지구는 지각-맨틀-핵의 구조로 돼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판은 이 중 어디에 해당하는 것일까? 판구조론의 판은 지각도 아니고 맨틀도 아니다. 물론 핵도 아니다. 판구조론은 지각-맨틀-핵이라는 기본 구조와는 다른 관점에서 본 지구의 구조며, 지각-맨틀-핵 구조로만 설명할 수 없는 지구의 현상들에 대한 설명을 제공한다.

판구조론의 출발은 대체로 알프레트 베게너의 대륙 이동설에서 찾는다. 독일의 지구물리학자 베게너는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있는 유라시아-아프리카 대륙과 아메리카 대륙 해안선의 모습이 유사하다는 사실에 착안, 이 대륙들이 ‘판게아’라는 거대한 대륙 하나로 뭉쳐 있다가 쪼개지고 이동해 현재와 같은 분포를 갖게 됐다고 주장했다.

베게너는 해안선의 유사성 외에도 지질구조와 화석의 연속성 등 다양한 증거를 제시했지만 당시 학계를 설득하는 데 완벽하게 실패했다. 당대에 이미 대륙은 ‘지각’에 해당하고 무거운 ‘맨틀’ 위에 떠 있다는 인식이 확립돼 있었다. 고체인 맨틀 위에 박혀 있는 대륙 지각이 어떻게 움직일 수 있단 말인가?

베게너는 지구 자전에 의한 관성력 등 다양한 가설을 제시했지만 어떠한 힘도 맨틀 위에 박혀 있는 거대한 대륙을 움직이기엔 미미했기에 대륙 이동설은 폐기 수순을 밟는다. 대륙의 이동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지각-맨틀 구조를 넘어 지구 구조에 대한 새로운 개념과 이해가 필요했던 것이다.

판구조는 어떤 구조를 말하는 것일까? 지각-맨틀-핵 구조는 주로 물질의 화학 성분 차이에 의한 구분이다. 대륙지각은 화강암, 해양지각은 현무암, 맨틀은 감람암, 핵은 철니켈 합금으로 돼 있으며 화학 성분이 각기 다르다.

판구조는 화학적 차이가 아닌 물성의 차이에 의해 발생한 구조다. 지구는 지표부터 일정 깊이까지는 딱딱한 상태를 유지하는데 더 깊어지면 높은 온도와 압력 때문에 같은 성분임에도 물성이 변해 유연해지면서 흐를 수 있는 상태가 된다. 지구는 지각은 물론 맨틀 상부의 일부 깊이까지 딱딱한 상태를 유지하는데 판구조론에서는 이 부분을 판 혹은 암권이라고 하며, 판 아래에 놓인 흐를 수 있는 맨틀 부분을 연약권이라고 한다. 판구조론은 연약권 위에 놓인 판이 미끄러져 움직일 수 있는 메커니즘을 밝힘으로써 베게너가 풀지 못했던 난제를 해결했다. 대륙은 판의 표면 특정 영역에 불과하며 판 위에 붙어 같이 움직이는 존재였던 것이다.

판은 힘을 받으면 휘어지다가 임계점을 넘으면 쪼개지는데 지진은 이 과정에서 발생한다. 환태평양 조산대에서 발생하는 지진은 판이 충돌해 변형되고 소멸하면서 발생하는 판의 진동이다. 판구조론은 지구를 암권과 연약권의 거대한 순환으로 보는 이론이다. 지구의 판구조와 순환은 지구가 내부의 에너지를 방출하며 나이를 먹어가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것이며 이 과정에서 지구의 다양한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극지연구소 지권연구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