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북한의 실질적인 2인자로 평가받는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 말 폭탄 선봉장으로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2019년 3월2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베트남 방문 당시 호찌민 묘 참배를 수행한 김여정 모습.연합뉴스
말폭탄으로 한반도 알파도그 과시…전국의 정예 글쟁이들 동원
김여정 악역 자처 김정은과 역할분담…말폭탄은 강력한 대남 무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위원회 제1부부장 명의의 대남 막말 조롱 비하 말투 등 원색적이고 독기어린 ‘말 폭탄’ 행진이 점입가경이다. 갈수록 독해지며 화약 냄새 자욱한 김여정의 말 폭탄은 우리 정부와 대통령까지 위협·협박하는 ‘대남 수사(레토릭) 무기’로 악용되며 도를 더하고 있다.
북한은 16일 조선중앙방송과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을 통해 낸 김 부부장 명의의 담화에서 한미연합훈련을 비난하며 남북 군사합의서 파기와 대화와 교류 업무를 하는 대남기구 정리 등 남북관계 파국 가능성을 경고하는 과정에서 “태생적인 바보” “판별능력마저 완전히 상실한 떼떼(말더듬이)” “유치하고 철면피하며 어리석은 수작” “미친개를 순한 양으로 보아달라는 것과 다름없는 궤변”이라며 우리 정부를 조롱, 비하하는 막말을 쏟아냈다. 특히 ‘떼떼’는 북한에서 ‘말을 더듬는 바보’라는 뜻으로, 1980년대 북한이 한국군을 비난하기 위해 제작·방영한 TV 풍자극에서 말을 심하게 더듬던 국군 병사에게 ‘떼떼’란 별명이 붙으며 널리 쓰이게 된 용어다. 우리 정부를 가지고 노는 조롱의 극치다.
대남 대미 문제까지 관장하는 백두공주 김여정이 대남 말 폭탄의 선봉장으로 나선 것이 김정은 시대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다. 지난해 3월 북한의 합동타격훈련에 대한 청와대의 우려 표명을 원색적으로 비난한 것을 시작으로 지난해 12월 강경화 전 외교부 장관의 북한 코로나 상황에 대한 발언을 질타하는 등 1년 내내 말 폭탄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김여정은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남북관계 경색국면에서 남측 정부를 거칠게 비난하고 압박하는 ‘악역’을 자처하며 김정은과 역할분담을 하고 있다. 김여정은 조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과 행보에 대해 김정은 위원장 의중을 담은 ‘대변인’ 역할을 하며 입장 표명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말폭탄은 한반도 알파도그 과시 수단
김여정 담화는 집권 5년 차의 문재인 정부가 최대 치적으로 내세우는 ‘9·19 남북 군사합의 준수를 통한 평화 무드 조성’ 관련, 핵을 가진 한반도의 ‘알파도그(Alpha Dog·우두머리 개)’의 말을 듣지 않으면 언제든지 마음대로 산통을 깨겠다는 협박이다. 김여정이 2020년 6월 17일 문 대통령의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 기념사를 폄훼하기 위해 원색적인 막말을 총동원하는 등 “잡쓰레기” “인간추물” “정신병적인 광태” 같은 육두문자 등장은 예사다. 섬뜩하고 자극적이면서 원색적이었다. 여기에 조롱과 힐난까지 섞었다. 내놓은 표현을 두고 스스로 ‘말 폭탄’이라고도 했다.
김여정은 이번 담화에서 미국에 대해서는 “앞으로 4년간 발편잠(근심·걱정 없이 편안히 자는 잠)을 자고 싶은 것이 소원이라면 시작부터 멋없이 잠 설칠 일거리를 만들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라며 짤막한 ‘충고’로 절제된 대응을 보였다. 우리 정부를 움직여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대북정책 수립에 영향을 주겠다며 강온양면 전술의 ‘고도로 계산된 메시지’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별로 익숙하지 않은 코멘트이지만 매우 흥미로운 코멘트”라며 절제된 반응을 보였다.
◆대남 비방 표현과 수위 한국 미국 정권에 따라 변화
북한의 대남 비방 수위는 대한민국과 미국 정권에 따라 변해왔다. 이는 대통령에 대한 표현으로 가늠할 수 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을 “아프리카 원숭이”, 70대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늙다리 미치광이”, 박근혜 전 대통령을 “시집 못 간 노처녀”라고 하는 등 인신공격도 서슴지 않았다. 비유를 통한 힐난과 조롱도 특징이다. 문 대통령을 향해 “삶은 소대가리도 앙천대소할 노릇”이라고 했던 게 대표적이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에게는 파쇼도당, 괴뢰도당, 부정부패 왕초, 역도, 협잡배 등 수식어를 썼다. 김영삼 전 대통령에 대해선 정치매춘부, 정치협잡배, 사대매국노, 민족반역자, 문민역도, 문민괴수라고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우 파쇼광신자, 괴뢰통치배, 남조선 집권배로 비방하다가 2000년 6·15 공동선언 이후 남조선 집권자로 순화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도 직접 이름을 거명하며 비난하는 걸 자제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 이후 북한은 비방을 재개했다. 특히 김정은 집권 이후 강도가 세졌다. 이 전 대통령에게는 괴뢰 역도, 정신병자, 불구대천의 원수, 리명박 쥐○○, 2MB(메가바이트), 정치적 저능아라고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선 청와대 암○, 악근혜, 악담을 퍼뜨리는 아낙네, 온 국민을 다 잡아먹을 마귀○이라고 했다.
◆북한 전국 뽑힌 정예 글쟁이들 동원
북한의 가시 돋친 담화문 뒤에는 북한 전국에서 뽑힌 ‘정예 글쟁이’들이 있다는 게 정설이다. 북한에는 노동당 산하 각 조직과 외무성 같은 정부기관, 군부 등에 선전선동용 글을 쓰는 ‘작가’로 불리는 수십 명 단위의 별도 조직이 있다.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은 “북한에서는 비난 글을 쓸 때 ‘불타는 적개심을 가지고 펜으로 원수의 심장을 찌르는 심정으로 쓰라’고 외교관들을 교육한다”고 설명했다. 태 의원은 “젊어서부터 독설과 유머, 착착 달라붙는 비유를 담은 글로 이름을 날린 송호경은 외무성 부상, 통일전선부 부부장까지 올라갔다”며 “이용호 외무상, 김계관 전 외무성 1부상, 하노이 미·북 실무협상 때 북측 대표를 맡은 김혁철 등도 대외용 글을 잘 써서 승진한 인물로 꼽힌다”고 했다.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는 “김일성종합대나 김형직사범대 출신 최고 엘리트들이 당에서 글을 쓰는 전문 인력으로 선발된다”고 말했다.
◆“선전·선동에서 화약 냄새 풍겨야”
1970년대 초반까지 선전·선동부에서 일했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대남 선전·선동을 특히 강조했으며, 조선중앙TV 아나운서들에게 “입에서 항상 화약 냄새가 풍겨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은 ‘남조선 혁명’이라는 대남전략 노선을 토대로 대남 선전·선동과 비방을 계속해 왔다. 북한말을 연구한 서울대 이현복(언어학과) 명예교수는 “북한 비방 성명은 교양 없고 때로는 우습게 들리기도 하지만 사실 무서운 내용일 때가 많다”고 했다. 대남 비방에는 북한 욕이 자주 나온다. 북한 노동신문과 조선중앙TV는 북한 표준말인 문화어를 사용하지만 한국 일본 미국 등을 비난할 때만큼은 예외다.
북한 사회주의혁명을 위한 선전, 선동은 날카로운 말과 전투적인 용어를 사용해야 하는 게 원칙이었다. 상대를 아프게 하고 그래서 내부의 분노를 높이 끓어오르도록 하는 게 기본이다.북한 사회가 언어를 보는 시각도 다르다. 우리에게 언어가 의사소통의 수단이지만, 북한에서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언어는 ‘혁명과 건설을 위한 힘 있는 무기’이기도 하다. 조선말대사전은 ‘언어’를 “… 민족을 이루는 공통성의 하나이며 나라의 과학과 기술을 발전시키는 힘 있는 무기”라고도 풀이했다. 북한은 언어정책은 남쪽에 대한 원색적 표현을 상스럽다거나 교양이 없다고 여기지 않고 적개심 고취나 극단적인 비하의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초등교육을 하는 인민학교 교과서부터 원색적인 표현을 실어 익숙해지도록 교육한다.
◆김여정 선봉장 내세운 말 폭탄 행진
김여정은 지난해 3월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한 ‘청와대의 저능한 사고방식에 경악을 표한다’ 제목의 담화에서 “참으로 미안한 비유이지만 겁을 먹은 개가 더 요란하게 짖는다고 했다. 딱 누구처럼….”의 막말로 말 폭탄 포문을 열였다. 김여정은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한 자신들의 화력전투훈련은 ‘자위적 행동’이라면서 유감을 표명한 청와대에 “적반하장의 극치”라고 비난을 퍼부었다. 백두공주의 ‘데뷔 담화’라는 점에서 이목이 쏠렸지만, 그 수위와 화법, 형식 등 여러 방면에서 시종일관 거침없는 직설적 화법으로 이목을 끌었다. 청와대를 향해 ‘주제넘은 실없는 처사’ ‘바보스럽다’ ‘저능하다’라고 원색적인 표현을 퍼붓는가 하면, “우리 보기에는 사실 청와대의 행태가 세 살 난 아이들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김여정은 같은 해 6월 대북전단 살포를 맹비난한 담화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겨냥해 “잘난 척, 정의로운 척, 평화의 사도처럼 처신머리가 역겹고 꼴불견”이라고 비난했다. 특히 “남조선 당국자가 외세의 바지가랭이를 놓을수 없다고 구접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겉으로는 멀쩡해보이는 사람이 정신은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든다”는 막말을 쏟아냈다. 한술 더 떠 노동당 8차 대회 기간이던 지난 1월 12일 담화에선 우리 군이 북한의 열병식 동향 파악에 나선 것을 두고 “세계적으로 처신머리 골라할 줄 모르는 데서는 둘째로 가라면 섭섭해 할 특등머저리들”이라고 했다. 앞서 2018년 문 대통령과 3차례 정상회담을 갖는 등 대남 평화공세를 펴던 북한의 태도가 돌변한 것은 2019년 2월 ‘하노이 노딜’로 북한이 학수고대하던 대북제재 완화 요구가 수용되지 않으면서부터다. 문재인 정부 초기 대통령 실명 언급도 하지 않고 ‘현 집권자’‘남조선집권자’로 지칭하다가 협상 결렬 후 표변한 것이다. 김 위원장은 그해 4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문 대통령을 겨냥해 “오지랖 넓은 중재자·촉진자 행세하지 말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4개월 뒤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문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를 문제 삼아 “삶은 소대가리도 앙천대소할 노릇” “보기 드물게 뻔뻔스러운 사람”이라며 문 대통령에 소나기 화살을 퍼부었다.
김여정은 ‘3년 전 봄날’로 언급된 2018년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대남 분야에 관여하기 시작해 한동안 남북 대화·화해의 메신저 역할을 했으나, 지난해부터는 대남 비난의 선봉에 서서 압박 공세를 펼쳤다. 특히 지난해 6월에는 두 차례 담화를 통해 탈북민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남측 정부 ‘탓’으로 맹비난하고 개성 남북연락사무소가 무너지는 광경을 보게 될 것이라고 예고한 이후 실제로 연락사무소를 폭파하는 등 대남 공세를 선두에서 지휘했다.
정충신 선임기자 csju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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