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정치인 윤석열’ 脫보복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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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운 논설위원

尹 명분·목표부터 확실히 해야
야당 입당도 신당 창당도 가능
정치 기술자보다 전문가 필요

퇴임사의 핵심적 메시지는 통합
최대 보복은 정의·공정의 정치
“집권 때 文 수사 않겠다”도 검토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대통령 선거에 나서겠다면, 명분과 목표부터 분명히 해야 한다. 국민은 윤석열이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를 가장 궁금해한다. 만일 그가 경제와 안보를 전면에 내세운다면 고개를 갸웃거릴 것이다. 평생 해온 것, 할 수 있는 것을 약속해야 한다. 윤석열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은 공정과 정의를 세우는 일이다. 스티브 잡스가 다른 기업 아이디어를 훔치듯이, 정치 지도자들은 전 정권의 실패한 명분과 목표를 자기 것으로 만들곤 했다. 김영삼의 햇볕정책을 김대중이, 박근혜의 적폐청산을 문재인이 가져갔다. ‘기회는 평등, 과정은 공정, 결과는 정의’라는 취임사는 문 정권 사람들이 고민해 쓴 것이 아니고, 문 정권 임기 4년도 불평등·불공정·불의로 얼룩졌기 때문에 미안해할 필요도 없다.

명분을 세웠다면, 세력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조직·자금·홍보·경호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당이 필요하다. 국민의힘·국민의당이 합당한다면, 합류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선택이다. 합당이 무산되면 고민이 커질 수 있는데, 놀라운 여론조사 결과가 지난주 발표됐다. 실체도 없는 ‘윤석열 신당’이 더불어민주당, 국민의힘보다 더 많은 지지를 받는다는 것이다. 1961년 박정희·1980년 전두환·2002년 노무현처럼 윤석열이 아예 정치판 전체를 뒤엎는 큰 변화를 원한다면, 실패를 무릅쓰고 창당을 시도할 수도 있다. 여당은 사악하고, 야당은 탐욕스럽고, 국민은 마음 둘 데가 없다. 돈이 없어 안 된다고 할 것이다. 돈은 해결하면 되는 문제다. 워싱턴 특파원 시절 미국 최고의 선거 모금가(fundraiser)를 인터뷰했다. 방법이 뭐냐고 물으니 “달라고 하라(Ask money!)”고 답했다. 뜻만 분명하면 한 달에 1만 원 내서 정치를 바꾸겠다는 당원들을 얼마든지 모을 수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은 2017년 단 한 석의 의원도 없는 앙 마르슈 후보로 프랑스의 대통령이 됐고, 이어진 총선에서 앙 마르슈를 과반수 여당으로 만들었다.

윤석열은 판세를 읽고 조언할 전략가를 찾고 있을 것이다. 전략가는 본인이 돼야 한다. 최고의 전략은 단순하다. 구체적인 목표를 정하고 뚝심 있게 밀고 가는 것이다. 지도자는 결정을 하는 사람이고, 참모는 결정을 이행하는 사람이다. 아버지 친구라는 김종인·윤여준, 민주당 출신 김한길·정동영·정대철 등이 조언자라는 말이 나돈다. 윤석열은 당황스러울 것이다. 그는 “나도 나이가 60”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아버지 친구나 정치 원로들을 존중해야겠지만, 정치 파트너로 삼기는 어렵다. 나이만의 문제가 아니다. 시대가 변했고, 더 큰 변화를 요구한다. 윤석열에게는 20대 정보기술(IT)·30대 대중문화·40대 금융·50대 외교안보 전문가들이 더 필요하다. 주변에 검사 출신이 너무 많다는 지적에 특별히 귀를 기울여야 한다. 집단사고의 실패를 문 정권이 보여주고 있다. 윤석열은 검찰 내에서도 특수통만 우대했다가 역풍을 맞은 경험도 있다.

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디테일이 아니라 방향이다. 박용진 민주당 의원이 윤석열에게 ‘미국이냐, 중국이냐’ ‘증세냐, 감세냐’ ‘수시냐, 정시냐’를 물었다. 공부가 부족한 질문이다. 우리는 이미 미국을 선택했고, 증세가 아니라 감세를 해야 세수가 늘어난다는 사실도 증명됐다. 수시·정시는 대학이 결정할 문제다. 문 정권에서 안보·경제가 무너진 것은 정책이 정교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방향 자체가 잘못됐기 때문이다. 윤석열이 자유민주주의를 선언한 것은 그래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친북·친중에서 한·미 동맹과 한·미·일 협력으로, 강성노조에서 기업과 시장 중심으로 정책 기조를 바꾸겠다는 뜻이다. 그것만으로도 합격이다.

밤새워 썼다는 윤석열의 총장 퇴임 인사 가운데 핵심은 마지막 문장이다. “저에게 날 선 비판을 해준 분들께도 감사한다.” 통합의 메시지다. 사회가 이념·지역·세대·계층·남녀 갈등으로 분열됐지만 가장 심각한 것은 맹목적 진영 대결이다. 윤석열은 정치를 선언하면서 “집권하면 문재인 전 대통령을 수사하지 않겠다”고 약속해야 한다. 정치 보복의 고리를 끊어야 통합이 가능하다. “문재인도 이명박·박근혜처럼 당해야 한다”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문 정권에 대한 윤석열의 가장 큰 보복은 공정과 정의를 세우고 통합의 정치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