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eadership 클래스 >박형준, 전문가급 정책·예의바른 언어·빠른 의사결정… ‘창업형 시장’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 취임 100일 지난 박형준 부산시장

9년째 유휴부지 사하구 소각장
與野 논의·주민 의견듣고 해결
울산-경남과 현안 과제도 협의

하급직원에게 항상 존댓말쓰고
차문 열어주려하자 “내가 직접”

‘산학 연결’ 프로그램 추진도
“관행 좇지않고 새 먹거리 찾아”
시의회 견제 속 실행력이 관건

“시정의 정책 결정방향에 대해 저는 밤에 호롱불을 들고 어떤 길이 좋을지를 살피며 조심조심 걷는다면, 시장님은 이미 구상을 해놓고 밝은 태양 아래 길을 성큼성큼 활보하는 것 같더군요.”

부산시 한 고위 간부가 박형준 부산시장에 대해 내린 평가다. 시정을 꿰뚫고 빠른 결정을 내리는 정책전문가로서 박 시장의 능력을 시청 공무원들도 인정하고 있다는 것으로 읽힌다. 4·7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박 시장이 지난 16일로 취임 100일을 맞았다. 부산 시민들은 3년 만에 더불어민주당에서 국민의힘 소속 시장을 선택했다. 박 시장은 시민 및 공무원과의 소통은 물론 합리적, 민주적 의사결정, 형식적 의전을 탈피한 소탈한 행보, 여당과의 협치 등으로 호평을 받고 있다.

박 시장은 역대 부산시장 중 유일한 교수 출신에 다양한 경력을 갖고 있다. 기자, 시민운동가, 국회의원, 청와대 수석비서관, 국회 사무총장 등을 지냈다. 달변가로 각종 시사프로그램 등에서 TV 진행자, 논객, 칼럼니스트 등으로도 활약해 왔다. 역대 26년간 민선 부산시장이 행정관료 출신(안상영·허남식·오거돈 시장, 권한대행 체제 포함 19년), 정치인(국회의원 출신 문정수·서병수 시장 7년)인 것에 비하면 큰 차별성을 보인다. 시민들은 이런 박 시장이 등장한 뒤 나타난 새로운 리더십에 큰 기대를 하고 있다.

◇소통하는 민주형 리더십 = 우선 박 시장은 하급직까지 모든 공무원에게 경어를 사용한다. 그는 최근 점심을 먹으러 가기 위해 집무실이 있는 7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탔다가 구내식당이 있는 3층에서 내리려는 직원들을 위해 먼저 내려 길을 비켜줬다. 이어 직원들에게 “식사 맛있게 하세요”라며 인사를 건네고 다시 탔다. 단독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일부 역대 다른 시장과 큰 차이를 보였다.

취임 첫날에도 차에서 내리며 대기 중인 직원에게 “앞으로 제가 직접 차량 문을 열고 내릴 테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또 행사장에서는 시장이 마지막에 도착해 내빈을 중심으로 인사하던 관례를 깨고 일찍 도착해 뒤편에 서 있는 시민들에게 안부를 묻는 등 친근한 모습으로 먼저 다가가는 모습을 보였다. 따라서 행사 분위기가 훨씬 부드러워졌다는 게 시청 직원들의 평가다. 전임 시장 시절 결재과정에서 ‘옥상옥’이라 불렸던 정무라인의 개입을 없애고, “시장실 입구에서 결재받기 위해 줄을 서서 시간 낭비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직원들의 업무 실수나 보고 부실에도 호통을 치지 않고 “업무를 하다 보면 실수할 수도 있는데 나도 잘 챙겨보겠다. 다만 같은 실수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할 뿐이다. 이에 대해 박 시장은 “직원들에게 호통을 친다고 효율이 올라가거나 창의성이 발휘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빠른 의사결정의 창업형 30년 정책전문가 = 박 시장은 그동안 부산이 인구감소 등 쇠퇴하고 있는 요인으로 양질의 일자리를 찾지 못한 청년들의 외부유출 때문으로 보고 일자리 창출 등 경제살리기를 최대 시정목표로 삼았다. 시 조직 내 ‘청년산학창업국’을 신설해 민간투자 활성화 및 창업 선도도시를 표방했다. 실무형 인재 육성을 위해 대학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오픈 캠퍼스 미팅’을 하고 기업들과 연계해 정보통신기술(ICT), 인공지능(AI) 등 관련 교육프로그램을 마련하기로 했다.

그는 “지금까지의 부분적, 지역적이 아닌 전면적, 혁신적으로 대학과 기업을 연결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취임 직후부터 민·관·학 합동 ‘비상경제대책회의’를 만들어 매주 개최해 분야별 공공기관, 현장 관계자, 전문가들과 협의를 통한 맞춤형 대책을 마련해 나가고 있다. 시급하고 중요한 이슈에 대해 12차례에 걸쳐 30건의 정책 합의사항을 도출해 시행에 들어갔다.

실제로 쿠팡의 남부권 거점 스마트물류센터와 싱가포르 바이오 제약기업인 ‘프레스티지바이오파마’의 연구개발센터를 신설하고 산학협력하기로 협약을 체결했다. 클라우드 전문기업인 ‘베스핀글로벌’과의 협약에 이어 ‘삼성청년SW아카데미’ 부산·울산·경남 캠퍼스를 삼성전기 부산사업장에서 개소하기도 했다. 박 시장이 구상해 본격 추진 중인 ‘15분 도시’ 사업은 사물인터넷(IoT) 기반의 스마트 기술을 활용해 시민들이 도보로 15분 이내의 생활권에서 교육·의료·문화·생활체육 혜택 등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는 “기존 행정을 유지하거나 쫓아가는 ‘수성형’이 아니라 부산의 장기 먹거리를 마련하기 위해 어려움이 있더라도 새로운 것을 만들어가는 ‘창업형’ 시장이 되고 싶다”고 희망했다.

◇새벽형 인간의 현장 행정 노력 = 박 시장은 새벽 5시에 기상해 7시 30분이면 시청에 출근, 업무를 본 뒤 저녁 식사 이후에도 다양한 외부 사람들을 만나 의견을 듣고 오후 10시쯤 귀가한다. 잠은 하루 5시간 30분 정도밖에 자지 않는다고 한다. 각종 현안사업을 해결하기 위해 발로 뛰어 직접 현장으로 찾아가고 있다.

박 시장은 9년째 유휴부지로 남아 있던 사하구 다대소각장 부지 문제를 최근 여야 논의를 통해 해결했다. 독창적 공간으로 살려 교육 및 문화, 관광콘텐츠가 공존하는 복합문화시설과 랜드마크 호텔을 유치하기로 한 것이다. 그는 “가만히 두면 한도 끝도 없이 미뤄지는데 주민 등과 적극적으로 논의하면서 방향을 찾았다”고 말했다.

지난해 집중폭우로 피해를 본 초량 지하차도, 대형 공사 현장, 상습 침수지 등도 찾아 재해 예방에 나서고 전통시장과 소상공인들을 방문해 상인들의 애로사항도 점검하고 있다. 특히 ‘2030 부산세계박람회(EXPO)’를 유치하기 위해 최근 한 달 동안 기업 총수들을 찾아다니며 지원을 부탁했고, 6월 23일에는 1박 4일의 강행군으로 프랑스 파리 국제박람회기구(BIE)를 직접 방문하기도 했다. 박 시장은 “박람회 유치를 통해 지역 현안사업을 해결할 수 있다”며 “기업 등 외부자원을 결합해 낼 수 있는 핵심고리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다재다능·친화력 호평 = 박 시장은 훤칠한 키(181㎝)에 안경을 써 학구적 이미지가 풍기지만 알고 보면 주량도 센 편이고, 운동신경이 탁월한 만능 스포츠맨이기도 하다. 테니스·농구·축구 등을 최근까지 즐겼고, 실제 경기에서도 선수급 실력을 보인다. 지난 2013년 동아대 교수 시절 200여 개 팀이 참가하는 전국 대학교수 테니스대회에서 우승까지 했을 정도다.

뛰어난 친화력으로 여당의 송철호 울산시장과 김경수 경남지사도 직접 초청해 공동 회견, 특강 등으로 화합을 과시하고 광역 교통·관광·환경·상수원 문제 등도 구체적 협의를 추진하고 있다.

박 시장은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매달 조사한 전국 17명의 광역단체장 직무수행 지지도 평가에서 최근 3개월간 각각 4위, 3위, 4위를 차지해 역대 부산시장 중 최고 순위를 기록하고 있다. 대부분 시장이 10위권 밖이었고, 특히 전임 오거돈 시장이 재임 내내 연속 최하위권에 머문 것에 비하면 큰 변화다. 그러나 민주당이 절대다수(47명 중 39명)를 차지하는 시의회의 견제로 ‘도심형 초고속 교통인프라 어반루프 도입 용역’ 예산 10억 원을 전액 삭감당하는 ‘좌절’을 겪기도 했다. 본인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창업펀드인 ‘요즈마 펀드’ 부실계약 논란과 이명박 정부의 청와대 근무 때 국가정보원 불법사찰 연루 의혹 등으로 시민단체 등의 공격도 받고 있다. 이런 난관을 극복하고 향후 얼마나 실제 성과를 내느냐가 내년 6월 지방선거에서의 재선을 위한 과제로 보인다. 한 시민은 “박 시장이 박학다식한 교수 출신에 논객으로 이름이 높고,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고는 있지만 결국 실행력이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박형준 시장은

△1960년 부산 출생 △대일고, 고려대 사회학과, 고대 대학원 문학박사 △중앙일보 기자 △부산경제정의실천연합 기획위원장 △동아대 사회학과·국제학과 교수 △제17대 국회의원(부산 수영구, 한나라당) △대통령 정무수석비서관, 대통령 사회특별보좌관 △국회 사무총장

부산=김기현 기자 ant735@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