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습니다>“공무원은 국민의 머슴” 철학 몸소 실천했던 경기지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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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사빈(1935~1999)

1989년, 극심한 가뭄이 닥쳤다. 한 해 농사를 좌우하는 모내기 철에 비가 오지 않으니 임시방편으로 개울이나 저수지 물을 퍼 올리는 양수 작업이 벌어졌다. 당시 수행비서였던 나도 임사빈 지사를 모시고 남양주 일대를 돌아보는데 5단 양수현장이 보였다. 장화를 준비해갔지만, 지사는 주저 없이 신발과 양말을 벗고 바지를 걷어 올린 채 맨발로 걸어갔다.

“어이쿠! 지사님과 군수님이 이곳까지 오셨네! 고맙고 힘이 납니다.”

땀 흘리며 일하던 농민들이 도지사와 군수를 보고 깜짝 놀라며 웃는 얼굴로 반겼다. 잠시 뒤 아낙들이 새참으로 두부김치와 막걸리를 가져왔다.

“지사님! 한 대포 하시지요.”

연세 지긋한 농부가 양재기에 막걸리를 가득 부어 권했다. 지사는 단숨에 들이켠 후, 손가락을 쪽쪽 핥아 빨아댔다. 군수가 젓가락으로 두부김치를 집어 내밀자 손사래를 치며 손으로 집어 든 지사가 말했다.

“들에서는 이렇게 먹어야 제맛이지.”

그러곤 나이 많은 농부에게 막걸리를 건넨 후, 잔을 비우자 손으로 두부김치를 집어 농부의 입에 밀어 넣었다. 순간, 농부는 당황하면서도 싫지 않은 표정이었다. 지사는 계속해 잔을 돌리고 두부김치를 집어 입에 넣어줬다.

“지사님이 손으로 집어 주시니 더 맛있습니다.”

“그렇죠! 저도 농사꾼의 자식이라 잘 압니다.”

막걸리가 순식간에 동이 나버렸다. 현장격려는 밤늦도록 이어졌지만 피곤한 줄 몰랐다. 지사의 소탈함과 배려의 몸짓, 따뜻한 말들이 가슴을 가득 채웠기 때문이다.

다음 해, 연천군 연두순시차 헬기로 이동하는데 갑자기 폭설이 내리기 시작했다. 자동비행 장치가 없는 헬기라 제자리를 맴돌기 시작했는데 불안하고 초조했다. 다행히 눈이 그치고 우여곡절 끝에 일정을 마친 후, 승용차로 동두천으로 이동할 때였다.

“뭔 눈이 갑자기 그렇게 많이 와! 큰일 날 뻔했어. 나야 도지사까지 올랐으니 순직해도 여한이 없지만 이제 서른셋, 홍 비서가 잘못되면 어떡하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가슴이 뭉클했다. 그 상황에서 내 걱정을 했다니 감동이었고 힘들 때마다 곱씹으며 용기를 내곤 했다.

지사님은 임포, 맏형님이란 별칭에 걸맞은 넉넉한 인품과 후덕한 마음씨, 인정 많은 아저씨 같은 포용력이 대단했다. 체육계의 꿈이었던 경기도 체육회관을 건립했고 의왕~과천 고속도로를 건설했다. ‘88서울올림픽과 70회 전국체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했고 새마을 운동에 남다른 열정을 보였다. 누구와 만나도 격의 없이 어울리는 몸짓이 경이롭고 존경스러웠다. “공무원은 국민의 머슴!”이라는 지사의 철학은 공직자로서 내 삶의 가치관이 됐다. 그 후, 국회의원과 위지(韋地)지역경제연구소 소장으로 경기도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 일하다 예순넷 아까운 나이에 떠나신 지 벌써 스물두 돌, “지사님! 그립습니다. 훗날, 하늘나라에서 시원한 막걸리 한 사발 꼭 올리겠습니다.”

홍승표(시인, 전 경기도 자치행정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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