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에 비닐 휩쓸리듯 시신 날아다녀… 지구 최후의 날 같았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그래도 계속되는 탈출 행렬 26일 폭탄 테러 발생에도 불구하고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가니스탄을 탈출하는 유일한 창구인 카불 공항 인근에 수많은 아프간인이 공항 진입을 위해 운집해 있다. EPA 연합뉴스

■ 폭탄테러 후 ‘혼돈의 아프간’

“폭발순간 고막 터진줄 알았다”
“어린소녀 병원 옮겼지만 숨져”
생존자들 처참했던 상황 증언

미군 철수로 커지는 치안 불안
마치 10년전 이라크 모습 같아

“토네이도에 비닐봉지가 휩쓸리는 것처럼 시신과 조각난 신체 부위들이 공중을 날아다녔다. 지구 최후의 날(doomsday) 같았다.”

26일 아프가니스탄 카불 공항 인근에서 발생한 폭탄 테러에서 살아남은 생존자 중 한 명은 로이터통신에 이같이 당시의 참상을 전했다. 이번 테러는 향후 이어질 아프간 내 혼란의 서막을 열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군 철수 뒤 테러와 이슬람 종파 간 대립으로 혼돈의 시기를 보내다 다시 미군이 배치된 이라크와 비슷하게 정세가 흘러갈 거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미국 특별이민비자(SIV) 보유자로, 첫 번째 테러가 발생한 공항 애비게이트 인근에서 항공기 탑승을 위해 대기하고 있었던 이 생존자는 로이터에 “폭발이 일어난 순간 내 고막이 터진 것으로 느껴졌다. 청력을 잃은 줄 알았다”며 “사방으로 시신과 조각난 신체들이 날아갔고 시신과 부상자들로 바닥은 피로 흥건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생존자 칼은 “비행기를 타고 아프간을 탈출하려 공항에 있었다. 몇 시간 더 기다려야 한다는 말을 듣고 공항 근처에 주차해놓은 트럭에서 대기하고 있었는데 폭발이 일어났다”며 “길에 쓰러진 부상자들 사이에서 어린 소녀를 발견했다. 그 아이를 안고 병원으로 달려갔지만 결국 소녀는 내 품에서 숨졌다. 너무나 가슴 아픈 일”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이날 테러로 아프간 내 혼란 정국의 문이 열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군과 동맹군이 철수하는 상황에서 탈레반이 아프간 정부군은 손쉽게 장악했지만 아프간 내 알카에다와 이슬람국가(IS) 테러조직은 통제가 불가능하다는 것. 탈레반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해온 알카에다도 문제지만, 탈레반보다 더 극단주의적인 IS는 탈레반에 큰 골칫거리다. IS는 탈레반이 과거 미국, 유럽 국가들과 협상을 했다는 이유로 이들을 ‘배신자’로 칭한다. 실제로 최근 탈레반이 아프간을 점령한 이후 알카에다가 축하 메시지를 보낸 것과 대조적으로 IS는 “미국과 거래해 지하드(이슬람 성전) 무장세력을 배신했다”며 탈레반을 비난한 바 있다. 탈레반은 아프간의 ‘정상국가화’를 선언했지만 아프간 통제는커녕 카불의 치안조차 제대로 확보하지 못했음을 드러내면서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라크의 경우에도 지난 2011년 미군이 철수한 이후 정치권의 갈등과 이슬람 시아파, 수니파 간 대립, 각종 테러 등으로 큰 정정 및 치안 불안에 시달렸다. IS가 급속히 세력을 키운 것도 이때다. 이에 미국은 2014년 IS와의 전쟁을 위해 다시 이라크 주둔을 시작했으며 현재 이라크 내 미군 규모는 약 2500명 수준이다.

탈레반으로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으로 보인다.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고 특히 자금줄을 확보하기 위해선 서방과 협력하는 유화적인 모습을 대외적으로 보여야 하지만, 그럴 경우 이날 테러와 같은 IS 등 극단주의 조직의 활동이 더 거세질 것으로 예상되면서다. 미 육군사관학교의 아미라 자둔 조교수는 “이슬람국가-호라산(IS-K)의 현재 주요 목표는 국가를 안정시키려는 노력을 방해해 탈레반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세희 기자 saysay@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