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열심히 살았는데 왜 이러나’ 열패감… SNS 군중심리 분노 폭발시켜”

  • 문화일보
  • 입력 2021-10-07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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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이수정 교수는 “분노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라면서도 “심리 상담을 꺼리면 안 된다”며 적극적인 치료를 권했다. 김낙중 기자


■ 한국인의 마음 - 우리를 이해하는 7개의 질문

② 프로파일러 이수정이 말하는 ‘코로나 시대의 분노’

상대방이 나보다 강자면 ‘공포’
약자면 ‘분노’로 표출돼 공격
팬데믹으로 비대면 사회되자
가족·연인 등 주변인 폭행 늘어

SNS로 사건·사생활 쉽게 접해
여론몰이·상대적 박탈감 심각
산책 등 근육·정신 이완시키고
타인 탓 돌리는 생각패턴 바꿔야


“팬데믹 2년 차, 대중의 분노가 철저하게 사회적 약자를 향하고 있습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겸 사회심리학자는 코로나19 시대에 접어들며 더 바빠졌다. 코로나19로 일상이 마비되고 경제 활동도 타격을 입는 등 소위 ‘코로나 블루’로 개인의 분노가 극대화되면서 사회적 분노로 이어지고 있다. 이렇게 쌓인 분노는 누군가를 향한 폭력으로 발산됐고, 그 현상을 풀이하고 극복하기 위해 이 교수의 의견을 구하는 곳 또한 많아졌기 때문이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코로나19 기획연구단이 지난해 8월 한 달간 전국 만 18세 이상 2000명을 대상으로 ‘코로나19 정보와 뉴스를 접하고 주로 느끼는 감정’을 조사한 결과, 분노(25%)와 공포(15%)로 나타났다. 그 후로도 팬데믹 사태는 1년 넘게 지속되고 있다. 분명, 대한민국 국민은 화가 나 있다. 분노를 느끼는 한국인의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지난달 2일 경기대 수원캠퍼스에서 이 교수를 만났다.

―심리학적으로, 분노는 어떤 감정인가.

“분노는 유기체가 생존하기 위해 꼭 필요한 감정이다. 대뇌피질 가장 아래쪽 부분, 변연계라고 하는 부분에서 바깥세상으로부터 오는 정보를 제일 빨리 받아들이고 정서적으로 처리한다. 상대가 나에게 위협적인 상황을 연출할 때, 상대방이 나보다 강자면 ‘공포’를 느껴 도망가고, 약자라고 느끼면 그 불쾌감이 ‘분노’로 표출돼 공격하게 된다. 이렇듯 분노와 공포는 뿌리가 같고 꼭 필요한 감정이다. 분노와 공포를 느끼지 못한다면 자기방어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인류는 멸종했을 것이다.”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일러스트 = 이정호 작가


―코로나19 시대에 ‘화가 많아졌다’고 하는데, 이로 인해 실제로 강력 사건 역시 늘었나.

“보통 살인, 강도, 성폭력, 방화를 4대 강력범죄로 보는데, 전체 다 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범죄 양상의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 현재의 불행이 내 탓이 아니라 남의 탓, 또는 나아가 사회의 부조리 탓이라고 생각하는 이가 늘면서 소위 ‘묻지 마 폭행’ ‘묻지 마 살인’이 늘고 있다.”

이 교수는 코로나19 사회에서 ‘측근 간 폭력’이 증가하고 있는 점을 우려했다. 특히 가정 내 어린이에 대한 폭력과 연인 간 폭력이 급증했다. 비대면 사회로 접어들며 대인 접촉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그들이 표출하는 분노로 인한 폭력이 주변을 향하고 있는 것이다.

―비대면 사회에서 분노의 증가와 비례해 늘어나는 범죄는 어떤 것이 있나.

“지난해부터 올해 사이 아동학대 치사사건이 크게 늘었다. 7∼8년 전에는 한 자릿수였는데, 올해는 50명이 넘을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로 인해 사회적 분노가 철저하게 약자를 향한 폭력으로 드러나고 있다. ”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연인 간 폭력은 왜 증가했나.

“연인은 결혼도 안 하고, 아이도 낳지 않은 관계이기 때문에 피해자 보고 시스템이 구축돼 있지 않다. 가정폭력의 경우 이를 막기 위한 사회적 제도를 마련하는 등 여러 노력이 있었지만, 연인 간 폭력은 구제가 어렵다. 이런 경우 피해자의 방어능력이 더 떨어지기 때문에 중상해 등 인명피해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 교수는 SNS와 같은 온라인 플랫폼이 사회적 분노를 확산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TV나 신문을 통해서나 볼 수 있던 뉴스들을 더 쉽게, 많이 접하게 되면서 분노의 확산 역시 빨라졌다는 것이다. SNS 대화방 등을 통해 지인들에게 알리는 행위 또한 분노를 재창출하는 결과를 초래하곤 한다.

“과거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도 사람들이 별로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요즘은 끔찍한 사건들이 더 자극적으로 보도된다. 여론몰이 역시 심각한 수준이다. 수사나 판결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특정 사건의 판사나 검사 이름까지 거론되고, 비난을 쏟아낸다. SNS를 통해 사람들이 공분을 공유하는 시스템이 갖춰지다 보니 그 연장 선상에서 형사·사법기관에 대한 불신과 비난의 목소리 역시 커졌다.”



―SNS 대화방에서 발생하는 군중심리가 개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이 큰가.

“이는 2차 세계대전 이후 행해진 수많은 군중심리 연구를 통해 확인됐다. 인간은 보통 혼자보다 집단적 사고를 할 때 더 위험한 방식으로 의사결정을 하곤 한다. 분노를 더 상승시켜 ‘엄벌하라’는 목소리를 낸다. 그래도 이는 친사회적인 결론이고, 반사회적 사고를 하는 이들에게는 극단적인 범죄를 저지르는 계기가 되곤 한다.”

―요즘은 SNS를 통해 사생활을 노출하고, 또 엿보는 시대다. 이런 변화가 ‘상대적 박탈감’을 키웠을까.

“맞다. 상대방의 삶을 보며 부러워하는 것을 넘어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 예전에는 잘 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몰랐다. ‘그들만의 리그’였는데 이제는 다 공유된다. 사회적 기준을 엄청나게 높여놓은 것이다. 문제는 나의 현실은 바뀐 게 없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상대적 박탈감이 분노를 키우고 반사회적 범죄자를 잉태하기도 한다.”

―SNS 시대가 낳은 대표적 현대 범죄의 예를 들어달라.

“‘박사방’이다. 범죄학자 몰턴은 ‘범죄자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낸다’고 말했다. 내가 본 가장 혁신적인 타입의 범죄가 박사방이었다. 그들은 성적 욕망을 해소하는 아주 창의적인 방법으로 텔레그램에 공간을 만들어놓고 유저들끼리 모여 욕구를 해소했다. 과거에는 상상도 하기 힘든 범행수법이다.”

이 교수는 이러한 극단적인 범죄는 차치하고 일반인의 분노에 주목한다. 자신은 아무 잘못도 안 했는데 사회적, 구조적 문제로 분노하고, 괴로워하고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19 시대에 분노를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잘못하지 않은 일로 피해를 봤기 때문이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면 화도 덜 나는데, ‘난 열심히 살았는데 왜 이러지’라는 열패감은 견디기 힘들다. 게다가 이런 스트레스를 풀 곳도 없다. 분노를 사회적으로 해소하려면, 사람들과의 상호작용과 다양한 경제활동이 이뤄져야 하는데 이 모든 것이 통제된 상태다. 일상생활에서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없으니 집안에서 약자들에게 푸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일상생활 속에서 분노를 낮출 방법은 없을까.

“생활환경을 바꿔보는 게 좋다. 컴퓨터만 들여다보지 말고 산책하는 등 근육과 정신을 이완시켜줘야 한다. 어떤 문제의 원인을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리는 생각 패턴을 바꾸는 훈련도 필요하다. 병에 가까운 분노의 경우, 적극적으로 치료하는 것도 필요하다. 분노는 우리가 흔히 ‘화병’이라 부르는 생물학적인 반응을 유발한다. 이렇듯 어쩌지 못하는 분노에 빠지면 자해하거나 타인에게 해코지한다.”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인의 마음’은 문화일보 문화부 유튜브에서 동영상으로도 보실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정신과 진료를 터부시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 정신건강 관리 시스템의 가장 큰 문제는 ‘전달체계’가 나쁘다는 것이다. 영미권 국가에서는 멘털 헬스에 종사하는 직군이 많다. 심리 상담을 하는 이가 많고, 이들이 중증으로 판단하면 정신과로 이관시키는 전달체계, 즉 노드가 되는 거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굉장히 담벼락이 높다. 정신과에 직접 가야 하고, 사람들이 다 보는 데서 기다려야 하니 어렵다. 직장이나 학교 같은 곳에서 쉽게 심리 상담을 받도록 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도 작년부터 비대면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으니 적극 활용해야 한다.”

아울러 이 교수는 정책적인 대안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코로나19 시대 집단 분노 및 우울에 근원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사후약방문식 치료가 아니라 이를 일으키는 원인을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 사람들이 느끼는 주체할 수 없는 분노는 ‘분노조절장애’라는 용어로는 설명이 안 된다. 예를 들어, 코로나19로 가게 문을 닫게 됐는데 약을 먹는다고 그 가게가 다시 살아나나? 약을 먹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결국 분노를 일으키는 근원을 바로잡기 위해서 피해를 적절히 보상하고 대안을 마련해주는 정책적 접근도 필요하다.”


■ 이수정의 리스트

“화가 치밀때 보세요”… ‘동백꽃 필 무렵’ ‘파파로티’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이수정 교수는 “분노는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충고한다. 분노는 누구나 느끼는 자연스러운 감정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공분을 일으킨 사건을 접한 후, 댓글로 자기 의견을 표출하는 행위 역시 분노를 푸는 친사회적인 방법이라고 이 교수는 말한다. 이 교수는 “분노나 공포를 접했을 때 친사회적인 규범을 내면화한 전두엽은 잘 조절할 수 있다. 청와대 국민 게시판에 가서 분노를 표출하고 참여를 촉구하는 것 또한 정상적인 사고를 드러내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 보면 ‘기분 좋아지는 콘텐츠’로 이 교수는 배우 공효진·강하늘 주연의 ‘동백꽃 필 무렵’을 추천했다. 어촌에 정착한 미혼모가 자기 삶을 개척하고 그가 속한 공동체가 이를 보듬는 과정을 보여주는 드라마로 2019년 방송돼 최고 시청률 23.8%를 기록한 작품이다. 이 교수는 드라마 안에서 주인공 동백(공효진 분)과 주민들을 공포에 빠뜨리는 연쇄살인범 까불이에 대항하는 공동체의 모습에 집중했다. 마을 순경 용식(강하늘 분)을 비롯해 주민들이 동백을 보호하고, 정체가 드러난 까불이 역시 공권력이 아닌 주민들 손에 붙잡힌다. 이 교수는 “공동체 일원 모두가 피해자를 돕고 범죄자를 잡기 위해 노력한다. ‘동백꽃 필 무렵’ 같이 범죄를 막기 위해 온 동네 사람들이 나서는 세상은 범죄자에게 굉장히 불리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같은 범죄 예방 및 피해자 관리는 선진 유럽 국가가 지향하는 모델이다. 이 교수는 “영국에서는 (복역을 마친) 출소자 관리를 지역사회가 맡는 시스템을 구축해 놓았다. 우리는 당장 법무부와 경찰의 업무 협조가 안 돼 추가 피해가 발생하는 상황”이라며 “‘동백꽃 필 무렵’은 커뮤니티 대응이라는 매우 이상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작품으로는 배우 한석규·이제훈 주연작 ‘파파로티’(2013)를 거론했다. 이 교수는 “소년범을 성악이라는 문화적 접근을 통해 교화시키고 사회가 품으려는 노력을 담은 작품”이라고 평했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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