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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지식카페 게재 일자 : 2022년 01월 17일(月)
오묘한 색·향기에 비너스도 매료… 나폴레옹 파란만장 삶과 함께한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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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백 종에 이르는 제비꽃 중 ‘향기제비꽃’으로 불리는 비올라 오도라타(Viola odorata). ⓒChristian Fischer

■ 박원순의 지식카페 - ⑪ 제비꽃

고대 그리스 아테네 상징 꽃이며 와인·요리·약에도 사용… 셰익스피어·괴테 등의 작품 소재
‘보라색’어원으로 황제·왕족 의상 색에만 쓰여… 근대에 화장품·향수·그림·패션 등에 다양하게 등장


제비꽃은 천연 항생제라 불릴 정도로 뛰어난 효능뿐 아니라 색깔과 향기로 아주 오래전부터 세상을 사로잡았다. 작지만 강력한 영향력, 심지어 정치적 상징으로도 이용됐던 꽃이다. 꽃의 문화사에서 제비꽃에 얽힌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이 꽃은 더 이상 숲속에서 홀로 조용히 피어나는 수수한 야생화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전 세계적으로 수백 종류에 이르는 수많은 제비꽃 가운데 향기제비꽃(sweet violet)이라는 영명을 가진 비올라 오도라타(Viola odorata)는 기원전 500년 전인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약용으로 그 가치를 널리 인정받았다.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이 제비꽃은 향기가 아주 좋은데, 특히 한번 맡으면 금세 사라져 버릴 듯한 오묘한 향기로 유명하다. 마치 아름다운 누군가가 스쳐 지나간 후 그 여운과 잔상이 남아 뒤를 돌아봤는데 그 사람은 이미 사라지고 없는 느낌이라고 할까. 다른 꽃에서는 쉽게 맡아볼 수 없는 이 특별한 향기는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킨다고 알려져 있다. 여기에는 비밀이 있는데, 이 제비꽃의 향기에는 사람의 후각을 일시적으로 둔감하게 만드는 이오닌(ionine)이라는 화학물질이 들어 있다. 이렇게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매력을 지닌 제비꽃 향기를 사람들은 매우 좋아했다. 예언자 무함마드는 모든 꽃 가운데 제비꽃의 향이 가장 우수하다고 극찬하기도 했다.

그리스인들은 달콤하고 향이 좋은 제비꽃으로 와인을 빚어 마시고, 요리와 약에도 사용했다. 심지어 제비꽃은 아테네를 상징하는 꽃이 됐고, 제비꽃을 상업적으로 재배하는 전문 농장도 생겨났다. 로마 시대 식물 재배에 관한 책을 저술한 바로(Varro)는 제비꽃 농장에 대해 자세히 기술하기도 했다. 비록 장미원에 비해 수익이 많이 안 난다며 한탄하긴 했지만 말이다. ‘박물지’의 저자로 유명한 대(大)플리니우스도 자신의 저서에서 수레국화, 시클라멘, 수선화와 함께 제비꽃을 언급했다.

제비꽃은 그리스 신화에도 자주 등장한다. 모든 신 가운데 가장 추한 신 헤파이스토스가 제비꽃으로 화관을 만들어 그 향기로 아프로디테를 매료시켰다는 이야기도 있고, 아폴로의 구애를 거부한 님프 이오(Io)가 벌을 받아 이온(Ion)이라는 이름의 제비꽃으로 피어났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렇게 제비꽃은 아름다운 순결을 상징하는 꽃으로 자리매김했다.

제비꽃은 보라색이라는 특별한 색깔과도 연관이 깊다. 이 꽃의 그리스어 이름인 이온과 어원이 같은 라틴어 비올라(viola)에서 유래된 바이올렛(violet)은 보라색 자체를 뜻하는 단어가 됐다. 보라색은 원래 고대부터 레바논 티레 지방에서 나는 바다달팽이의 분비물로부터 극소량만 얻을 수 있는 매우 비싸고 귀한 염료였다. 주로 왕족과 연관돼 로마와 비잔틴의 황제들, 중세 주교들과 왕들만 배타적으로 이용 가능했다.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에는 왕실의 가까운 친척들 외에는 보라색 의상을 입는 것이 법으로 금지될 정도였다.

이렇게 고귀한 색과 향을 동시에 지닌 제비꽃은 중세 시대 섬세한 사랑과 믿음, 존엄을 상징했는데 7세기에는 성모 마리아의 겸손을 표현하는 꽃이기도 했다. 12세기 수도원에는 제비꽃이 장미·백합·붓꽃 등과 함께 자라고 있었다. 이슬람 정원에서도 제비꽃은 필수 아이템이었다. 샤 압바스의 정원, 콘스탄티노플과 아드리아노플의 왕실 정원에 만들어진 기하학적인 화단 안에서도 제비꽃을 쉽게 볼 수 있었다. 17세기 중반 네덜란드인들은 튤립, 패랭이꽃과 함께 제비꽃을 재배했다.

제비꽃의 소박한 아름다움은 셰익스피어 등 많은 작가와 예술가들의 작품 소재가 되기도 했다. 18세기 독일의 극작가 요한 볼프강 폰 괴테는 ‘제비꽃’이라는 제목의 시를 발표했는데, 동시대를 살았던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모차르트가 이 시를 가곡으로 만들어 더 유명해졌다. 양치기 소녀가 자신을 바라봐 주기를 애타게 바라는 제비꽃의 이뤄지지 못한 사랑을 담담하면서도 구슬프게 표현한 시와 가곡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19세기 초에 이르러 제비꽃은 역사상 가장 비범하고 특출했던 황제 중 한 사람이었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와 특별한 인연을 맺었다. 특히 그의 첫 번째 아내 조제핀 황후와 얽힌 제비꽃 사랑에 관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둘의 결혼식 때 조제핀은 제비꽃이 그려진 웨딩드레스를 입었고, 매년 결혼기념일에 나폴레옹은 조제핀에게 제비꽃을 선물했다. 하지만 1809년 두 사람은 파경을 맞게 됐고 이후 나폴레옹은 오스트리아의 황녀 마리 루이즈와 결혼해 아이를 낳았지만 여전히 조제핀을 잊지 못했다. 1814년 4월 나폴레옹은 퐁텐블로 조약에 의해 지중해 외딴섬 엘바섬으로 유배를 가게 됐는데, 그때 병사들에게 “제비꽃과 함께” 돌아오겠다고 맹세하면서 제비꽃은 나폴레옹의 시그니처 꽃이 됐다. 나폴레옹의 지지자들은 그를 “제비꽃 상사”(Corporal Violet)라는 별명으로 부르기 시작했고 제비꽃을 상징으로 삼아 결속했다.

▲  왼쪽 사진은 신고전주의 화가 존 윌리엄 고드워드가 그린 ‘바이올렛, 스위트 바이올렛’(1906). 오른쪽 사진은 캐리커처 작가 조지 크루이상크가 그린 ‘제비꽃 상사의 혈통’(1815).

지지자들은 낯선 사람을 만났을 때 서로를 확인하는 암호 같은 수단으로 제비꽃을 좋아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했는데, 만약 ‘글쎄’(Eh, bien)라고 답하면 나폴레옹의 지지자로 간주했다. 지지자들 사이에 제비꽃 리본이나 제비꽃 문양이 새겨진 시곗줄이나 브로치, 반지는 비밀스러운 표식이었다.

결국 나폴레옹은 자신의 약속을 지켜 이듬해 봄 엘바섬을 탈출해 제비꽃과 함께 파리로 귀환했다. 그가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조제핀의 정원이 있는 말메종이었다. 자신이 유배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죽음을 맞이한 조제핀의 무덤에 헌화할 제비꽃을 따기 위해서였다. 그는 세인트폴 대성당에 안치된 그녀의 무덤에 제비꽃을 뿌렸고, 일부 꽃은 자신의 목걸이에 다는 로켓 속에 넣어 죽을 때까지 간직했다.

다시 돌아온 나폴레옹을 축하하는 군인들과 대중은 나폴레옹의 상징인 제비꽃을 가슴에 달고 그를 반겼다. 제비꽃은 나폴레옹의 코트 단추부터 모자, 의상을 장식하며 온갖 위세를 자랑했다. 장 도미니크 에티엔 카뉘(Jean-Dominique-Etienne Canu)는 ‘1815년 3월 20일의 제비꽃’(Violettes du 20 mars 1815)이라는 제목의 판화 작품을 통해 파리에 다시 등장한 ‘제비꽃 상사’ 나폴레옹을 표현해 유명해지기도 했다. 언뜻 보기에 간단한 그림 같지만 자세히 보면 나폴레옹의 상징인 펠트 모자와 그의 얼굴 윤곽이 숨어 있고, 그의 두 번째 아내 마리 루이스와 아들 나폴레옹 2세의 얼굴선도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1815년 6월 워털루 전투에서 패배한 나폴레옹은 백일천하에서 물러나게 됐고 세인트헬레나섬에 유배돼 1821년 생을 마감했다. 나폴레옹을 지지한 보나파티스트의 상징 제비꽃의 영향력이 얼마나 강했는지 프랑스 정치가들은 1874년까지도 모든 제비꽃의 생산을 금지할 정도였다.

하지만 제비꽃은 빅토리아 시대에도 계속해서 유럽에서 큰 사랑을 받으며 가장 중요한 식물 가운데 하나로 쓰였다. 특히 19세기 후반에는 많은 화장품과 향수뿐 아니라, 많은 문학 작품과 그림, 패션, 식기류에 등장하기도 했다. 가장 향이 좋은 제비꽃 종류는 16세기부터 이탈리아에서 재배됐던 파르마의 제비꽃 품종들이었다. 나폴레옹이 엘바섬으로 축출되던 해 파르마 공국의 여공작으로 새 인생을 살게 된 그의 두 번째 부인 마리 루이즈가 계속해서 제비꽃에 관심을 갖고 장려한 덕이었다. 그녀는 각종 테이블 웨어와 도자기, 종이 등 수많은 생활용품 디자인에 제비꽃을 널리 확산시키고 궁정 최고의 향수를 위한 제비꽃 에센스를 추출해 내는 데 정성을 쏟았다.

1910년대 영국 데번주의 돌리시 지방은 제비꽃 재배의 중심지가 됐다. 1920년대 콘월에서 런던으로 가는 특별 기차를 통해 매일 많은 꽃이 런던으로 운반됐고, 늦겨울과 초봄 사이 코벤트 시장엔 제비꽃 향기가 가득했다. 1930년대 제비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향기를 위해 널리 재배되며 거래가 절정을 이뤘다. 하지만 세계 대전이 발발하며 제비꽃은 더 이상 유행하지 않게 됐고 1950∼1960년대에는 제비꽃 향수가 자취를 감추기도 했다.

▲  비올라 오도라타(Viola odorata)

비록 그 인기가 예전만은 못하지만 오늘날에도 제비꽃은 여전히 향수의 중요한 원료로 쓰이고 있다. 가벼운 과일향, 그윽한 나무향, 신선한 꽃향기는 과하지 않으면서도 매우 희귀하고 독특한 품질로 인정받고 있다.

제비꽃은 전 세계적으로 600종 가까이 분포한다. 숲, 사막, 습지 등 서로 다른 서식 환경에 맞게 적응해 살고 있다. 대부분 북반구 온대 지역에 자생하는데, 호주 일부 지역과 안데스·하와이·남아메리카에도 산다. 일년생도 있고 다년생도 있으며 작은 관목으로 자라는 종도 있다.

대부분 내한성이 강하고 낙엽수 그늘과 시원한 곳, 촉촉한 토양을 좋아한다. 다양한 색깔과 크기, 특히 서로 다른 꽃뿔은 그만큼 다양한 나비와 곤충들이 이 꽃의 꽃가루받이를 해주고 있다는 증거다. 전 세계 수많은 제비꽃은 묵묵히 숲속 작은 생명들을 위한 꿀 공급원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약 50종의 제비꽃 종류가 자생한다. 꽃 뒤쪽으로 튀어나온 꽃뿔이 오랑캐를 연상시킨다고 오랑캐꽃으로 불리기도 했으나, 물 찬 제비처럼 빼어난 제비를 닮아 제비꽃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가장 흔한 남산제비꽃부터 흰제비꽃, 노랑제비꽃, 고깔제비꽃 등 색깔과 크기도 매우 다양하다. 태백제비꽃처럼 우리나라에만 자라는 특산 제비꽃도 있다. 근근초(菫菫草)라고도 불리는 제비꽃은 어린잎과 꽃을 나물로 먹을 수 있고, 뿌리를 비롯한 식물체 전체의 약효가 뛰어나 소염과 이뇨, 피를 맑게 하는 데 좋다. 서양에서도 제비꽃을 설탕에 절여 케이크나 디저트에 가니시로 곁들이거나 샐러드로 식용해 왔다. 맛과 향이 좋지만 비타민 C도 풍부해서 건강에도 좋다.

봄철 정원에서 화단용 초화류로 많이 쓰는 팬지와 비올라도 넓게 보면 모두 제비꽃 종류다. 대개 일년초로 사용하는데 추위와 더위에 모두 강해서 아주 이른 봄에 심어 초여름까지도 꽃을 볼 수 있다. 물론 시든 꽃들을 계속 따 주고 가끔씩 줄기를 잘라줘야 더 많은 꽃이 피어난다.

팬지(Viola × wittrockiana)는 꽃이 마치 생각에 잠긴 얼굴처럼 생겨 ‘명상’ 또는 ‘사색’이라는 뜻의 프랑스어 ‘팡세’(pensee)가 어원이다. 비올라는 유럽 원산의 제비꽃을 개량해 만든 삼색제비꽃(V. × tricolor)으로부터 나온 품종들이다. 팬지는 비올라보다 꽃과 잎이 더 큰 편인데, 대신 비올라는 더 많은 수의 꽃이 달리고 더위와 추위에 더 강해 개화기가 조금 더 길다.

우여곡절이 많았던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제비꽃은 여전히 우리 마음속에 소박하고 아름다운 꽃으로 자리하고 있다. 그 꽃은 조동진이 노래한 것처럼 한 수줍은 소녀의 꿈과 인생 이야기를 담고 있는 제비꽃 혹은 안도현 시인이 그린 것처럼 봄이 오면 언제나 우리 곁에 한결같이 피어나는 수수한 제비꽃과 비슷한 이미지일 것이다. 항상 낮은 곳에 있지만 언제든 우리를 한껏 고양시켜줄 만큼의 아름다움과 겸손의 미덕을 지닌 제비꽃들이 여전히 이 땅에 우리와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이 고맙고 기특하다.

국립세종수목원 전시기획운영실장


■ 비올라 오도라타(Viola odorata)

제비꽃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유럽·북아프리카·서아시아에 분포한다. 숲 가장자리, 습기가 있는 비옥한 토양에서 8∼15㎝ 크기로 자란다. 잎은 심장 모양이며, 5장의 꽃잎을 가진 꽃은 봄철 짙은 청자색 혹은 간혹 연보라색과 흰색으로 핀다. 다른 제비꽃과 달리 향이 매우 좋아 스위트 바이올렛(sweet violet), 플로리스트 바이올렛(florist’s violet), 가든 바이올렛(garden violet) 등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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