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의 ‘맹자’, 남 속이기 쉬운 治者…‘말하는 마음’ 자각을

■ 김헌·김월회의 고전 매트릭스 - ⑪ 정치 지도자의 수사

말-마음 사이에는 갖은 탐욕
제대로 인식하는 역량 중요

협잡·겁박 언사 난무 선거판
유권자 힘으로 바로잡아야

유가에서 “한 말발 한다”고 하면 단연 맹자를 꼽는다. 맹자의 장점으로 그의 시원시원한 언사와 명쾌한 논리를 꼽아온 역사가 적어도 천 년이 넘을 정도이다. 물론 서구 논리학에 익숙한 지금 눈으로 보자면 정합적이지 못한 대목이 있음도 사실이다. 그러니 이렇게 정리해볼 수 있다. 논리적 하자가 있음에도 이를 문제 삼을 겨를이 없을 정도로 맹자는 기세 좋게 말을 잘했다고 말이다.

명성도 자자했다. 제자가 “사람들이 스승님께서 논변하기를 즐긴다고 합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지요?”라고 물을 정도였다. 이에 맹자는 성현의 도가 먹히지 않고 이단의 학설이 횡행하는 현실에서 취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잘라 말했다. 성현의 도, 그러니까 문명을 수호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논변에 적극 나설 수밖에 없었다는 뜻이다. 맹자가 살았던 시대는 달변만으로도 크게 출세할 수 있었던지라 그저 말주변만 열심히 갈고 닦는 이들이 많았다. 맹자는 그러한 세태와 자신이 무관함을 역설한 셈이다.

맹자에 따르면, 말을 안다고 함은 누군가가 치우친 말을 하면 이를 통해 그가 숨기는 바를 알아차리며, 과도한 말을 했을 때 그가 무엇에 빠져 있는지를 파악한다는 것이다. 삿된 말을 듣고는 그가 어떤 일탈을 벌이고 있는지를, 둘러대는 말을 듣고는 그가 무엇 때문에 궁색해졌는지를 간파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을 통해 그 사람의 마음을 파악한다는 소리다. 지언(知言)은 “지심(知心)”, 곧 마음을 알아내는 역량이었음이다.

이는 말의 표면만 듣지 말고, 문면의 뜻에서 내면의 의미를 캐내야 한다는 주문이다. 말은 소리와 의미로 이루어져 있고, 의미에는 다시 표면과 심층의 두 차원이 있음은 만고불변의 진실이기에 지언은 지심이어야 한다는 맹자의 주장은 늘 힘차다.

말하기 또한 마찬가지다. 말을 함은 마음을 드러내는 활동 자체이다. 내가 말을 치우치거나 과도하게 혹은 삿되거나 둘러대면서 하고 있다면 이는 내가 그러한 마음을 품고 있음의 증좌이다. 이를 알아차리는 것 또한 지언이다. 지언은 이렇듯 남의 말과 마음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뿐 아니라 자신의 말과 마음도 제대로 인식하는 역량이다.

언뜻 말을 통해 마음을 알아낸다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지 않으냐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런데 실제는 전혀 그렇지 않다. 말과 마음 사이에는 인간의 갖은 욕망과 탐욕, 속물근성 등이 도사리고 있다. 게다가 인간은 타인은 물론 자신도 속일 수 있고, 자기와의 타협에 명수이기도 하다. 그래서 맹자는 지언의 역량을 호연지기(浩然之氣)와 더불어 자신의 대표 경쟁력으로 당당하게 꼽았다. 지언의 역량을 갖춤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가 지언의 역량을 치자(治者)와 연결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치자는 누리는 게 많고 행사하는 힘도 크다. 말로 자신을 속이고 남을 기망하기 쉬운 자리이다. 그런 만큼 치자는 타인이 어떤 마음으로 무엇을 말했는지를 들을 줄 알아야 하며, 자기가 어떤 마음으로 무슨 말을 하는지를 자각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랬을 때 말과 마음이 서로를 배반하는 작태 따위는 애초부터 발을 못 붙이게 된다.

이는 정치인에게만 해당되는 요구가 아니다. 맹자 시절의 치자에는 오늘날의 정치인과 유권자 모두가 해당된다. 정치인이 아무리 권력이 자기들 것인 양 휘둘러대도 이는 엄연히 유권자로부터 나온다. 대선을 앞둔 요즘처럼 협잡의 언사가, 비겁과 겁박의 언사가 선거판을 뒤덮고 있다면 그 책임을 정치인에게만 물을 수는 없다. 유권자의 책임이 더욱 커 보이기도 한다. 유권자가 자신이 지닌 지언의 역량을 애써 모른 척, 행사하지 않은 결과일 수 있기에 그러하다.

하여 대선에서 찍을 후보가 없다며 탄식할 때는 아니다. 유권자가 지언의 역량을 발휘하지 않아 초래된 병폐라면 이를 바로잡는 것 또한 유권자의 몫이다.

자기 말에 담아낼 마음이 일천하고 상대를 설득할 능력이 없는, 유권자를 설득이나 협력의 대상이 아니라 협잡이나 겁박의 대상으로 간주하는 정치인을 바로 잡을 이가 유권자 말고 또 누가 있겠는가.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