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계 행성 ‘음양오행’ 따라 명명… 한국형 달 궤도선 KPLO는 뭐라고 불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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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우경의 ‘우주여행 2022’

“수, 금, 지, 화, 목, 토, 천, 해, (명)!”

종종 초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태양계 행성에 관한 강연을 한다. 행성의 이름을 말해보라면 다 같이 한목소리로 앞글자만 따서 또박또박 읊는다. 내가 초등학교, 아니 ‘국민’학교 다니던 시절과 비교해 달라진 거라고는 ‘명(명왕성)’이 빠진 정도인데 이마저도 여전히 아이들의 입에서 무심코 튀어나온다. 태양계 행성의 이름은 어디서 온 것일까?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에서는 음양오행에 따라 각 행성에 물(수성), 쇠(금성), 불(화성), 나무(목성), 흙(토성)의 기운을 가진 이름을 붙였다. 천왕성과 해왕성은 좀 다르다. 태양에서 지구까지 거리보다 스무 배는 멀리 떨어진 천왕성부터는 맨눈으로 보기 어려워 망원경을 발명한 이후에나 존재를 인식했기 때문이다. 1781년 천문학자 윌리엄 허셜의 관측으로 태양계 행성에 편입한 천왕성은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하늘의 신 ‘유러너스(Uranus)’를 따라 이름 지어졌고, 일본을 거쳐 전해지며 천왕성이라고 번역됐다. 해왕성 역시 바다의 신 ‘넵튠(Neptune, 그리스신화의 포세이돈)’을 번역한 이름이다.

그리스-로마 신화 속 이름은 우주 프로그램에서도 단골손님이다. 특히 ‘머큐리’, ‘아폴로’, ‘새턴’ 등 우주개발 초창기 굵직한 프로그램들은 죄다 신화 속 이름이다. 현재 미국 주도로 우리나라를 비롯한 여러 나라가 참여하는 대규모 달 탐사 프로그램 ‘아르테미스(Artemis)’ 역시 인간을 최초로 달로 보낸 아폴로의 누이이자 달의 여신이다. 여성을 최초로 달에 보내는 만큼 이보다 적당한 이름이 있을까 싶다. 태양계에서 가장 큰 행성인 목성의 영어 이름은 신들의 왕인 ‘주피터(Jupiter, 제우스)’다. 2016년 목성에 도착해 목성의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탐사선 이름이 바로 주피터의 아내 ‘주노(Juno, 헤라)’다. 주노 탐사선은 목성뿐만 아니라 목성 주위를 돌고 있는 위성(달)도 가까이 들여다볼 계획인데, 하필 위성의 이름이 난봉꾼 남편이 사랑했던 가니메데, 이오, 유로파라니 과학적 호기심은 차치하고 왠지 씁쓸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이래서 이름이 중요하다.

요즈음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이름을 공모하기도 한다. 특히 나사(미 항공우주국)가 화성에 보내는 로버(rover) 이름은 그동안 아이들이 지어왔다. 2004년 한 달 간격으로 화성에 도착한 쌍둥이 로버 ‘스피릿(Spirit)’과 ‘오퍼튜니티(Opportunity)’는 당시 9살이던 소녀 소피 콜리스(Sofi Collis)가 보육원에서 춥고 외로울 때마다 반짝이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떠올린 두 개의 단어라고 한다. 따뜻한 이름을 가진 이 두 로버는 원래 예정했던 6개월의 수명을 훨씬 넘어 각각 2011년, 2019년까지 임무를 수행하고 화성에 잠들었다.

우리나라 1t급 중형위성의 시작을 알린 아리랑 시리즈와 날씨와 바다를 관측하는 천리안 위성 역시 공모를 통해 지은 이름이다. 천리안 위성은 이름 그대로 적도 상공 3만6000㎞에서 지구와 같은 속도로 움직이며 우리나라 근처 바다와 날씨를 24시간 감시 중이다. 지난해 10월 대한민국을 설레게 한 누리호 역시 공모를 통해 이름을 지었다. ‘누리’는 ‘세상’의 순우리말로 우리가 살아갈 세상을 우주로 확장하는 계기가 되라는 소망을 담았다고 하니 우리나라 발사체 역사의 한 획을 긋는 성공한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으면 한다.

올해 8월 드디어 한국형 달 궤도선인 KPLO(Korea Pathfinder Lunar Orbiter)가 달을 향해 출발한다. 계수나무 아래 토끼가 떡방아 찧고 있을 그곳으로 말이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서는 2월 말까지 이름을 공모한다. 일본은 전래동화에 나오는 가구야 공주를, 중국은 두꺼비가 되어버린 전설 속 창어(항아)를 자국의 달 탐사선 이름에 붙였는데, 우리나라가 보내는 달 탐사선은 과연 어떤 이름을 가지게 될지 자못 기대가 크다.

한국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