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4월 20일 일본 후쿠이현 오바마시의 우쿠 항구에서 산 채로 발견된 대왕오징어를 현지 자연센터 직원이 관찰하고 있다. 후쿠이신문 캡처
■ 김선영 기자의 오후에 읽는 도쿄
‘심해어 잡힌 뒤엔 지진’ 속설
전세계 언론 떠들썩한 보도에
후쿠시마 주민들은 트라우마
해양전문가 “과학적근거 없다”
‘일본 앞바다에 대왕오징어가 나타났다. 대지진 전조인가.’
지난달 20일 일본 후쿠이(福井)현 오바마(小浜)시에서 대왕오징어가 산 채로 발견됐다. 심해에 사는 대왕오징어는 죽은 상태가 아니면 수면 위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기에 전 세계 언론은 관련 기사를 보도하며 ‘일본 대지진설’을 제기하고 있다.
일본에는 대왕오징어 같은 심해어가 산 채로 잡히면 ‘지진의 전조’ 현상이라는 속설이 있다. 이번에 발견된 대왕오징어의 총 길이는 3m, 몸통 길이는 1.3m, 무게는 80㎏에 달한다. 물론 일본 앞 해안에서 대왕오징어가 발견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파장이 일고 있는 것은 지진이나 쓰나미가 올지도 모른다는 공포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2021년 1월 일본 시마네(島根)현 이즈모(出雲)시 인근 앞바다에서 몸길이 4.1m, 몸통 길이 1.67m, 무게 170㎏에 달하는 대왕오징어가 산 채로 잡혔다. 그 후로 한 달이 지난 2021년 2월 13일, 일본 후쿠시마(福島)현 앞바다에서 규모 7.3의 강한 지진이 발생했다.
대왕오징어뿐 아니라 지금까지 일본 앞바다에 등장한 심해어들은 빠짐없이 ‘지진 괴담’의 소재가 됐다. 2020년 12월 시즈오카(靜岡)현 누마즈(沼津)시 앞바다에서 ‘지진의 전조’로 불리는 대왕산갈치가 살아 있는 모습으로 발견돼 화제를 모았다. 일본에서 대왕산갈치는 ‘용왕이 사람들에게 지진이나 쓰나미가 임박했다는 점을 알려주기 위해 보낸 상징’으로 통해 일본인들은 산갈치를 ‘용궁의 사자’라는 뜻의 ‘류구노츠카이(龍宮の使い)’라고 부른다. 일부 네티즌은 지난 2010년 일본 북부 해안가에서 산갈치 10여 마리가 발견된 뒤 이듬해인 2011년 3월 동일본대지진이 발생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지난 2016년 4월 15일 일본 혼슈(本州) 미에(三重)현 오와세(尾鷲) 항구에서 약 5㎞ 떨어진 해역에서 몸길이 약 5m, 몸무게 약 1t의 거대한 심해상어인 ‘메가마우스’가 한 어부의 그물에 걸린 채 발견됐다. 이 상어의 포획 시점은 일본 규슈(九州) 구마모토(熊本)현에서 각각 규모 6.5와 7.3 지진이 발생한 14일과 16일 사이였기에, 일본 네티즌들은 메가마우스가 지진을 미리 감지하고 해수면에 올라온 것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전 세계적으로 관련 괴담이 돌자 일본 해양전문가들은 ‘심해어가 나타나면 지진이 발생한다’는 속설은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2019년 일본 도카이(東海)대와 시즈오카현립대 연구진이 미국 학회지에 발표한 연구논문에 따르면 지난 1992년부터 2011년까지 20년간 일본 근해에서 심해어가 목격된 뒤 한 달 이내 지진이 발생한 경우는 8%에 불과했다.
누군가는 ‘지진 괴담’을 보며 가볍게 웃어넘기거나 ‘화제성’으로 소비한다. 우려되는 건 이런 ‘괴담’이 후쿠시마 주민들의 트라우마를 더하고, 일상을 할퀼 수 있다는 점이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이들은 집과 가족, 그리고 삶을 잃었다. 그 후로 11년이 지났고, 후쿠시마에는 피폭 위험을 무릅쓰고 원전으로 들어가는 기술자가, 쓰나미로 잃은 어린 딸의 시신을 찾지 못해 해안을 맴도는 엄마가, 원전 사고 지역 출신이라고 낙인찍혀 왕따를 당하다 결국 고향으로 돌아온 소년의 오늘이 있다. ‘괴담’이라는 가벼운 단어의 이면에 숨겨진 ‘상실’을 살펴야 하는 이유다. 후쿠시마에는 여전히 사람이 살고 있다.
김선영 기자 sun2@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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