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갑론을박 반도체 인재 양성론, 본질은 수도권 규제 완화

규제개혁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는 말할 것도 없고, 기업경영 활성화 공약에 따라 임기 초부터 전방위적 규제 혁파를 외쳤던 이명박·박근혜 정부도 말만 풍성했을 뿐 현장에서 제기되는 난관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못해 모두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윤석열 정부 역시 반도체 산업을 미래 먹거리로 꼽고 산업계가 요구하는 인재 양성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각종 규제를 풀겠다고 나섰지만 안이하게 접근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이러니 막상 법 개정 등의 단계에 들어가면 과거 정권의 전철을 따르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윤 대통령이 반도체 인재 양성을 강력히 주문한 데 이어 한덕수 국무총리가 9일 “인재 양성을 통해 4차 산업혁명 첨단산업 육성이라는 큰 목표를 달성하겠다”며 수도권은 물론 지방대학도 비슷한 숫자의 증원을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는 수도권정비계획법 등이 살아 있는 한 쉽지 않은 일이다. 수도권 대학의 정원이 정해져 있어 학과 인력을 조정할 때마다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인문계열 등의 반발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학령인구 급감으로 정원을 채우기 어려운 지방대들은 수도권 정원 확대에 결사적으로 저항한다. 지방에 지역구를 둔 국회의원들이 여야를 막론하고 법 개정에 극력 반대하는 이유다. 올해 초 국회를 통과한 ‘반도체특별법’에서도 이 내용은 빠졌다.

수도권 규제는 기업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막는 가장 큰 덩어리 규제다. 그런데도 국가 균형 발전이라는 명분에 밀려 수도권 규제 완화는 금기어가 된 지 오래다. 하지만 반도체 인재 양성은 더 이상 피해갈 수 없는 국가적 과제인 만큼, 수도권 규제 완화를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이 상생할 수 있는 아이디어에서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 대폭적인 지방재정 확충 대신 수도권 규제를 풀어주는 협력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반도체 생산 과정은 설계·제조·후공정·장비 등 다양하다. 각 분야마다 전문가 양성이 요구되는 만큼 모든 학교가 설계 전문가에만 특화할 필요도 없다. 지역별 특성을 살리고 정부 지원책과 결부시키는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