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팀장의 북레터> 문학텍스트의 힘…영화가 ‘마침내’ 내 것이 된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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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입력 2022-08-12 08:58
업데이트 2022-08-12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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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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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팀장의 북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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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코로나19에 걸려 집에서 격리 생활을 했습니다. 컨디션이 회복되니 슬슬 무료해졌는데, 격리 전 회사에서 챙겨온 ‘헤어질 결심 각본’(을유문화사)이 있어 다행이었습니다. 책은 형사 해준(박해일)과 살인 사건 용의자 서래(탕웨이)의 파국적 사랑을 그린 영화 시나리오를 단행본으로 만든 것입니다. 영화를 사랑한 관객이 ‘N차 관람’을 하듯 머리맡에 두고 군데군데 밑줄 치며 ‘N차 독서’를 했습니다.

지난달 중순 예약 판매를 시작한 책은 벌써 5만 부 이상 팔렸다고 합니다. 영화가 동원한 180만 관객은 감독과 배우 이름값을 생각하면 조금 아쉬운 성적이기에 각본집의 인기는 더욱 놀랍습니다.

책을 읽으며 이 각본이 지닌 ‘문학 텍스트’로서의 힘이 이런 이례적 돌풍을 이끈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마침내’와 ‘붕괴’라는, 익숙하지만 일상에선 잘 쓰지 않는 단어를 재발견한 영화는 수많은 대사 패러디를 낳았습니다. 해준을 연기한 박해일의 또 다른 출연작 ‘한산: 용의 출현’에 빗대 “침몰했구나, 마침내” “왜군은요 완전히 붕괴됐어요”라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각본집을 보니 이런 명대사뿐 아니라 말맛을 살린 ‘언어유희’가 예상외로 많더군요. “죽은 남편이 산 노인 돌보는 일을 방해할 순 없습니다”라는 서래의 일침이 그랬고 “원전 완전 안전”이라는 말장난이 그랬습니다. 또 고경표가 연기한 형사 수완은 “잠복해서 잠 부족이 아니라 잠이 안 와서 잠복하는 거야”라는 해준의 말에 “뭐래…간장 공장 공장장도 아니고”라고 말끝을 흐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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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에선 흘러간 장면을 되돌릴 수 없기에 미처 주워 담지 못한 대사들이 뒤늦게 ‘문자’의 형태로 가슴에 콕 박혔습니다. 이쯤 되면 ‘헤어질 결심’을 사랑과 말(言)의 관계를 탐구한 영화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듯합니다. 결국 사랑이란 두 사람이 자기들만 아는 은밀한 언어(密語)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피어나는 것이니까요. 박찬욱 감독과 정서경 작가가 치밀하게 직조한 대사의 향연을 즐기며 영화가 드디어, 아니 ‘마침내’ 내 것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미 한 번 본 영화인데, 각본을 읽으니 또 영화가 보고 싶어집니다. 이번 주말엔 책이 아니라 스크린으로 해준과 서래의 쓸쓸하고도 처연한 사랑 이야기를 다시 음미해야겠습니다.

나윤석 기자 nagij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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