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史는 중화제국이 전부?… 오랑캐와 끊임없는 대립·교섭속에서 탄생

  • 문화일보
  • 입력 2022-08-2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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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랑캐의 역사
김기협 지음│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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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장성은 중화사상의 상징으로서 성벽 안쪽은 중국, 바깥은 오랑캐의 영역으로 구분했다고 알려져 있다. 어딘가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사고. 물론 엄청나게 큰 우물이라 그 우물만으로 중국 문명은 오랫동안 떵떵거리며 살 수 있었겠지만. 그런데 과연 중국사를 만리장성 안, 곧 중화의 역사로만 한정할 수 있을까. 책은 중국 바깥 오랑캐의 관점에서 중국 문명, 더 나아가 동아시아 문명권의 역사를 재정의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중국의 역사는 농경사회인 중화 제국과 유목사회인 오랑캐의 대립과 영향, 끊임없는 교섭의 과정으로 봐야 한다. 저자는 이 과정에서 중국과 접촉면이 있던 이슬람 세계를 서양사의 대상에 포함하려는 시도로까지 발을 넓힌다.

책에 따르면, 춘추전국시대를 지나는 동안 황하 문화권 외에 남쪽의 장강 문화권, 서쪽의 파촉 문화권이 농경이라는 공통점을 안고 ‘중원’으로 편입됐다. 그 이전까지는 오늘날 홍콩이나 상하이 같은 곳은 오랑캐의 땅이었다는 얘기다. 그리고 유목을 기본으로 하던 북쪽의 흉노, 선비, 거란, 여진, 몽골, 만주족은 돌아가며 중원을 침탈하거나 교류했고, 어떤 경우에는 정복했다.

저자는 유목사회가 중원의 국가가 강력할 때는 중화 제국 안에 진입하는 ‘내경 전략’을 취하고, 중원이 혼란스럽거나 힘이 약해졌을 때는 제국을 침략하는 ‘외경 전략’을 취했다고 말한다.

책은 북쪽의 오랑캐들이 자신의 고유함을 유지한 채 조직 구성 등은 농경사회에서 따온 이른바 ‘그림자 제국’을 만들게 됐다고 분석한다. 한나라 때 흉노 제국이 대표적이다. 더 나아가 농경을 기본으로 하는 중화와 유목을 기본으로 하는 오랑캐는 자전거의 앞바퀴와 뒷바퀴처럼 끊임없이 역사적으로 맞물렸다고 말한다.

한나라와 함께 중화 제국을 대표하는 왕조로 인식되는 당나라만 해도 위구르와 떼려야 뗄 수 없는 ‘호(胡)·한(漢) 이중 체제’의 모습을 보였다. 북방의 위구르는 군사적 위협을 통해 당나라로부터 엄청난 분량의 물자를 공급받는 한편, 당나라를 다른 이민족의 침략으로부터 보호해주는 역할을 수행했다. 당나라가 무너지면 위구르도 경제 기반이 무너지는 기묘한 공생 관계가 형성됐다.

유목 세력인 몽골이 원나라를 세워 중원을 다스리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실제로 제국 초기에는 농민을 몰아내 초원을 늘리자는 주장이 제기됐지만, 오고타이 시대 요나라 황실 자손으로 금나라에서 벼슬을 하던 야율초재의 영향으로 농경 지대에 대한 정책이 전환된다. 중화를 약탈 대상에서 통치 대상으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저자는 중화가 해상을 통해 만난 서양인들을 ‘바다오랑캐’쯤으로 간주한 것은 큰 실책이었다고 말한다. 19세기 서양 세력은 훨씬 더 무시무시한 오랑캐였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만리장성 밖에서 보는 중국사’라는 부제가 무색하게 책은 서양사에 대해 상당 부분을 할애했다. 유럽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서양사를 바라보자는 저자의 관점은 동의할 만하지만, 논점이 흐트러진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487쪽, 2만5000원.

이정우 기자 krust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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