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시내 반지하 주택의 모습.
우리 집은 똑똑 구둣발 소리, 이른 아침 환경미화원 아저씨 빗자루 소리가 천장이다. 문을 열면 별은 없고 차들이 뿜어낸 검은 연기가 코를 막는다. 사람들은 새처럼 맑은 공중에서 살지만 우리는 땅속에서 산다. 바짝 엎드려야 들어갈 수 있는 방, 이곳엔 어두운 별들이 내일을 꿈꾸며 산다. 어둡고 습한 곰팡이가 그림을 그리는 천장은 검은 꽃이 피고 나무가 자라고 냇물이 흐른다. 붓도 없이 맹렬하게 그림을 그리는 곰팡이는 우리 집 화가다. 하루도 빠짐없이 그림이 생겨나는 지하의 세계는 닭장에 갇혀 어디론가 실려 가는 닭들의 눈망울이다. 서로 마주 보는 눈빛들이 처량할 뿐, 생기 없는 침묵만 벽에 기대어 천장을 바라본다. 천장만 있고 하늘이 없는 방, 황량한 바람이 천장을 휘돌고 나가면 배고픈 눈들은 그때야 머리를 맞대어 한 끼 허기를 채운다. 밤이 깊을수록 별을 헤아리고…마중 나온 별 하나 천장에 뜨면 반지하의 슬픈 꿈을 적어 보낸다.
가난한 눈들이 끔뻑거리던 날 남편은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나는 그때부터 남자다. 강해야 두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엄마의 위치는 누가 말하지 않아도 강해지고 있었다. 누가 떠밀지 않아도 스스로 달려가 아파트 청소를 하고 있었다. 쓸어야 아이들의 밥이 나오고 닦아야 아이들 학원비가 나온다. 슬픔의 눈물은 이미 추억이요, 아이들 눈망울은 뜨거운 현실이다. 남보다 먼저 쓸고 남보다 먼저 닦았다. 가난하다고 한탄하는 목멤은 나를 더 파멸시킬 뿐, 아직 일할 힘이 있음에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가끔 아파트 주민들이 고생한다고 전해주는 과일은 행복한 덤이다.
올해는 115년 만의 폭우와 태풍 ‘힌남노’까지 덮쳐 많은 피해가 있었다. 번개가 하늘을 찢고 천둥이 비탈진 골목길을 폭포로 만들어 버렸다. 차도 사람도 모두 멈춰 버린 길, 폭우만 흘러내렸다. 빗물은 넘치고 차올라 지하로 쳐들어왔다. 피할 틈도 없이 밀려온 빗물은 금세 쪽배를 띄웠다. 둥둥 떠다니는 가재도구들이 강가의 죽은 물고기처럼 몸을 치댄다. 제법 단단했던 용기가 넋을 잃고 허공을 바라본다. 고추잠자리가 2, 3층 높이의 공중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날고 있었다. 저곳의 공기는 어떤 맛일까. 저기 저 잠자리는 얼마짜리 전세에 살기에 저리 푸르게 날까. 잠자리 날갯짓 사이로 아저씨들이 몰려와 뭐라고 떠든다. 신발도 없는 우리는 맨발로 물을 퍼내는데 아저씨들 구두는 비가 오는 데도 번들거린다. 번들거리며 핸드폰으로 우리를 사진 찍는다. 높은 아저씨인 듯 다가와서 방을 고쳐 주겠다고 약속을 한다. 한 귀는 듣고 한 귀는 계속 물을 퍼냈다. 그 아저씨 몸에서 난 향수 냄새가 오랫동안 물가에 남아 있었다. 한참 후에 멋지게 감아올린 파마머리 아줌마들이 빵과 우유를 나눠줬다. 아이들은 두 개씩 나는 하나만 먹었다. 쪽배의 방은 아직도 작은아이 어피치 인형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물이 다 빠진 방은 진흙 천지다. 금방 미꾸라지가 꿈틀거리며 나올 것 같다. 6학년까지 쓰라고 사준 큰아이 책가방이 새끼 고래처럼 배가 부풀어 올라 뚱뚱해졌다. 아이는 짠한 얼굴로 가방을 씻어 2층 주인집 계단에 널었다. 그때 2층에 사는 주인아주머니가 밥 먹으라고 불렀다. 놀라 뒤돌아보는 순간, “나라에서 고쳐 줄 거야. 걱정하지 말고 올라와 밥 먹어” 하시며 우리를 달래줬다. “나라에서 정말 도와줄까요?” 하고 묻자 아주머니는 “해주겠지. 이게 보통 난리야. 나라도 이럴 때 서민들을 도와줘야지. 언제 도와주겠어. 그래도 태풍 힌남노는 걱정했던 것만큼 피해가 크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야.”
이 모든 것, 그래도 살아 있기에 볼 수 있는 것, 이 또한 생의 덤이라 생각하고 지하에서 저 잠자리 동네로 이사 가는 꿈을 꾸어 본다. 긍정의 힘은 그렇게 잘될 것. 비 온 뒤 햇살이 뜨겁다. 빨아 놓은 이불과 옷들이 태극기처럼 펄럭인다.
분당 김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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