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 게 소진돼 불안할 때 ‘나’를 벗어나면 새 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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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입력 2022-09-30 09:06
업데이트 2022-10-06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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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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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팀장의 북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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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나도 이런 것을 만들고 싶다. 보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 출렁이게 하고 확 쏟아버리게 하는 것.”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지구 끝의 온실’ 등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젊은 과학소설(SF) 작가로 떠오른 김초엽은 고등학생 때 영화 ‘토이 스토리 3’를 보고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어떤 이야기와 사랑에 빠지는 순간의 기분을 재현하고 싶다는 바람이 ‘쓰고 싶다’는 마음으로 이어졌다고요. 이번 주 나온 김초엽의 첫 에세이 ‘책과 우연들’(열림원)에 실린 에피소드입니다. 책은 우연히 만난 영화와 책이 자신을 작가로 성장시킨 과정, 소설가로 살며 마주하는 고민을 풀어냅니다.

김초엽은 작가가 되기 전엔 부지런한 독자가 아니었다고 고백합니다. 조그만 취향의 원 안에서 빙빙 돌며 좋아하는 것들만 좋아하던 편협한 독자였다는 거지요. 데뷔와 동시에 주목받았지만, 쌓인 게 많지 않다는 불안은 곧 창작력 고갈에 대한 두려움으로 이어졌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것, 내가 쓸 수 있는 글은 다 써버렸어. 이제 밑천이 바닥난 거야.” 자기 안에는 ‘영감이 샘솟는 연못’도, ‘비밀스러운 이야기보따리’도 없음을 깨달은 순간 바깥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밖에서 재료를 캐내고 수집하고 쓸어 담으면 다른 이야기를 쓸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작가는 ‘편협한 독자’가 아닌 ‘잡식성 독자’로 변모해 이것저것 읽어 나갔습니다. 많은 자료를 접하고 공부하니 아이디어가 서사로 발전하는 길이 보였습니다. 문화비평가 아즈마 히로키(東浩紀)의 ‘관광객의 철학’에서 영감을 받아 중편소설 ‘므레모사’를 썼고, 식물 지리학자들이 내놓은 연구 데이터에 기대 ‘지구 끝의 온실’을 완성했습니다.

여전히 스스로 ‘밑천 없는 작가’라고 느끼지만, 예전만큼 두렵지는 않습니다. 배우고 탐험하는 일, 무언가를 깊이 알아가는 일 모두가 쓰기의 여정에 포함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김초엽의 ‘창작론’은 작가가 아닌 우리에게도 용기와 위안을 줍니다. 가진 게 다 소진된 듯해 불안할 때 ‘나’를 잠시 벗어나면 새 길을 발견할 것이라는 얘기니까요. 책과 영화를 보는 것도 좋고, 수다를 떨며 영감을 얻는 것도 괜찮겠지요. 이번 주 소개하는 책들이 당신에게 ‘우연히’ 다가가 텅 빈 자리를 채워주면 좋겠습니다.

나윤석 기자 nagij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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