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격적이며 고난도의 테크닉… 헌정받은 크로이처 거들떠도 안봐

■ 이 남자의 클래식-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9번

1802년 청력 상실 불구 창작
교향곡 ‘운명’등 동시대 탄생

英 브리지타워와 초연뒤 다툼
처음 주려고 했던 마음 바뀌어

1803년 완성된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9번은 그가 남긴 10편의 바이올린 소나타 중 가장 유명하다. 베토벤은 원래 이 작품에 별도의 제목을 붙이지 않았지만 프랑스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 루돌프 크로이처(1766∼1831)에게 이 곡을 헌정한 데서 비롯해 지금은 흔히 ‘크로이처 소나타’라고 불리고 있다. 그런데 재밌는 사실은 무려 베토벤으로부터 헌정받은 이 작품을 크로이처는 단 한 번도 연주한 사실이 없다는 것이다.

1802년 가을, 청력 상실로 인해 유서까지 남겼을 만큼 극심한 고통을 받던 베토벤은 불굴의 의지로 딛고 일어서 다시금 창작에 몰두한다. 그 유명한 교향곡 ‘영웅’ ‘운명’ 피아노 소나타 ‘발트슈타인’과 ‘열정’ 같은 걸작들은 모두 이 시기에 탄생한 것으로, 이 시기를 일컬어 흔히 ‘걸작의 숲’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바이올린 소나타 9번 ‘크로이처’ 역시 이 시기에 태어난 작품으로 1802년 가을에 착수돼 1803년 봄에 완성됐다. 당시 베토벤은 당대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인 영국 출신의 조지 브리지타워(1778∼1860)와 교류하고 있었는데, 그의 화려한 기교와 연주 스타일에 음악적 영감을 얻어 바이올린 소나타 9번을 작곡했다. 1803년 5월 24일 빈의 아우가르텐에서 베토벤 자신이 직접 피아노를 연주하고 브리지타워가 바이올린을 협연하며 초연됐다.

공연은 대성공이었고 베토벤은 브리지타워에게 이 작품을 헌정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초연 후, 두 사람의 다툼이 잦아지면서 우정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베토벤과 브리지타워가 동시에 한 여인을 좋아해서였다는 이야기도 있고, 베토벤의 애인을 그가 험담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어쨌든 당시 주변인들로부터 베토벤이 그의 성품이나 음악성에 대해 크게 실망했다는 전언이 내려온다.

1805년 베토벤은 바이올린 소나타 9번을 출판하면서 본래 계획했던 브리지타워 대신 돌연 프랑스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 크로이처에게 헌정하기로 결정한다. 한 해 전인 1804년 베토벤은 당시 프랑스를 대표하는 명망 있는 바이올리니스트인 크로이처와 교류를 가졌는데, 이때 그의 고결한 성품과 담백하고 우아한 연주에 매료됐다.

그런데 정작 크로이처는 이 작품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오히려 ‘무식하고 난폭한 곡’이라고 작품을 폄훼하며 연주는커녕 작품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크로이처 소나타’라는 애칭으로 부르고 있다.

■ 오늘의 추천곡

브람스의 바이올린 소나타 3번, 프랑크의 A장조 바이올린 소나타와 함께 3대 바이올린 소나타로 불리는 작품이다. 매우 높은 난도의 테크닉을 요구하며 길이가 40분에 달하는 대곡이다. 베토벤이 악보에 ‘협주곡풍으로 합주되는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라고 적어놓은 것처럼 피아노와 바이올린은 우열을 가리기라도 하듯 서로 공격적이면서 열정적으로 대립한다. 협주곡(콘체르토)의 본뜻은 ‘경쟁하다’라는 의미인 이탈리아어 콘체르타레(Concertare)에서 왔다. 이를 이유로 많은 음악학자는 이 작품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 첫 듀오(DUO) 소나타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거칠게 격정적으로 대립하는 1악장을 시작으로 온화하고 서정적인 2악장이 이어진다.

안우성 남자의 클래식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