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대저택 임청각 등 전 가산 정리하고 망명… 독립운동 헌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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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입력 2022-11-15 09:07
업데이트 2022-11-15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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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립습니다 - 석주 이상룡 (1858 ∼ 1932)

“차라리 이 머리가 잘릴지언정 이 무릎은 꿇어 종이 되진 않으리.”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 선생이 전 가산을 정리하고 만주에서 독립운동에 헌신하기 위해 가솔을 이끌고 1911년 초 압록강을 건너며 남긴 피맺힌 어록이다. 충북 청주시 청남대에 조성된 대한민국 임시정부기념관에 세워진 석주 선생의 동상에 새겨진 말로, 비장함이 한껏 서려 있다. 올해는 석주 선생의 서거 90주년이 되는 해다.

일제에 의한 국치(國恥) 이래 임시정부 등을 중심으로 한 20인의 독립운동 지도자들 가운데, 석주 선생은 가장 연세가 많은 분이었다. 따라서, 험지 만주에서 20여 년간의 독립운동에 무한으로 헌신하신 석주 선생은 광복 훨씬 전인 1932년에 타계하신 관계로 광복을 누리지 못함은 물론, 구국 활동이 잊어지고 널리 알려지지 못한 점은 안타깝다.

석주 선생은 유교의 본향 경북 안동 출신으로 보물 182호로 지정된 ‘임청각’에서 출생했다. 1897년 대한제국으로 바뀌면서 일제의 내정간섭이 본격화될 무렵 항일의병 활동 지원에 적극 나섰다. 그러나 청일,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제에 항일의병 활동은 실효성이 없음을 깨닫고, 어두웠던 국제정세 공부에 나섰다. 당대 동서양의 대표적 신서들을 섭렵했으며, 청나라 말기에 나온 ‘교육구국론’에 크게 감명받았고, 칸트, 홉스, 루소의 민주주의 정치사상에 심취했다. 서구 문물을 직접 깨친 이승만 박사, 안창호 선생과 달리, 스스로 신시대, 신사조를 받아들인 ‘혁신 유림’의 대표였다.

일제 강점의 참담함을 목도하면서 오직 교육 구국과 군사독립노선 추구만이 살길이라고 인지하면서 본격적인 독립운동에 나섰다. 우당 이회영 선생 등 ‘신민회’가 주동이 돼 국외에 독립운동기지 구축을 모색하자 적극 호응하면서, 대저택 임청각의 매각 등 가산을 정리하고, 노비 문서를 불사르고 토지를 나누어주며 가노(家奴)들을 해방시킨 선각자였다. 1911년 초 만주로 망명길에 오르면서 고난의 길로 들어섰다. 이회영 선생이 전 가산을 정리하고 6형제가 만주로 망명한 시점과 비슷했다. 당대 지식인들이 보여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전형이었다.

1911년 봄 만주에서 먼저 병농일체의 ‘경학사’를 설립했고, 이주민들이 계속 증가함에 따라 경제,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민단’으로 확대 개편하면서 통합자치기구로 발전시켰다. 같은 시기 이회영 일가와 함께 무력 항쟁의 산실인 ‘신흥강습소’를 설립했는데, 후일 ‘신흥무관학교’로 개칭되었으며 독립군 유지의 확고한 기반이 됐다. 부민단은 이후 남만주지역 독립운동의 총본영으로 인지도에서 임시정부를 능가할 정도였다.

또한, 3·1운동 당시, 만주의 무장독립운동세력인 이상룡 선생 등 39인은 ‘대한독립선언서’를 발표했다. 여기서 주목할 사실은 독립 이후 세울 근대 국민국가의 정체로 ‘공화제’를 지향한 점은 역사적 가치가 크다. 이 무렵 임시정부 형태가 여럿 결성되자 자연스럽게 통합 여론이 비등했다. 1919년 4월 상하이(上海)임시정부가 수립됐고 ‘민주공화제’가 표방된 밑거름이 됐다. 당시 임시정부는 석주에게 만주의 ‘군정부’와 통합을 제의하였고, 주변의 반대에도 민족적 대의를 내세우며 합의해주는 결단력을 보였다.

내분이 계속된 임시정부는 초대 이승만 대통령을 노선 차이로 탄핵한 후 박은식을 2대 대통령으로 선출했고, 이후 대통령제를 국무령제로 바꾸면서 1925년 9월 이상룡 선생은 초대 국무령이 됐으나 임정 개혁에 실패하고 만주로 회귀했으며, 일제의 만주 침략이 본격화되던 1932년 서거했다. 이처럼 석주 선생은 통합의 기치 아래 늘 앞장서 이끌어나갔다. 서거 후 1990년에야 봉환되어 동작동 임정 국가원수묘역에 안장됐다. 유서 깊은 임청각은 일제강점기에 철로 부설로 반 토막이 잘려나가는 비운을 겪었으나, 다행히 최근 철로를 걷어내고 2025년을 목표로 한 임청각 복원작업이 진행 중에 있다. 100여 년 전 석주는 온 나라의 온전한 독립을 위해 헌신했으나 아직도 분단이 지속되고 있는 안타까운 상황 속에서, 석주 선생의 ‘독립정신을 우리 시대의 통일정신’으로 되살리기 위한 학술회의가 최근 개최됐다. 부수적으로 주최자인 동북아공동체문화재단과 이상룡기념사업회는 임청각의 복원이 완성되는 시점에, 석주의 독립정신을 기리는 ‘통일교육연수원’ 설립 협약을 맺었다.

동북아공동체문화재단 부이사장 김재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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