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교수 · 명총장, 그리고 훌륭한 사회복지가… 성인에 가까운 인품[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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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입력 2022-11-22 09:06
업데이트 2022-12-22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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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립습니다 - 남재 김상협 전 고려대 총장(1920 ∼ 1995)

50대 후반 이상 되는 국민은 대부분 김상협 고려대 총장에 대해 아직도 특별한 기억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1970년대 살얼음판 같은 유신체제의 공포 분위기 속에서 대학사회는 마치 철물이 끓어 넘치는 용광로처럼, 때로는 활화산과도 같은 일촉즉발 위기의 연속이었다. 이 시대에 대학과 대학의 행정책임자는 마치 병아리를 품고 있는 어미 닭처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기막힌 심경이었다. 온 세상과 대학이 모두 숨을 죽이고 있을 때, 유신폐지를 주장하는 학생들의 극한 저항을 “소수가 아니라 다수의 이유 있는 저항”이라고 정권을 향해 정면으로 항변하며 국민의 마음을 후련하게 해 주신 분이 바로 김상협 총장이었기 때문이다.

남재 김상협 총장. 그는 대체 어떤 분이며 고려대 정신사에서 어떤 위상으로 자리매김되어야 하겠는가. 첫째, 그는 명강의로 크게 명성을 떨친 명교수였다. 그냥 유명한 또 한 분의 학자요 명교수가 아니다. 일제는 조선에서 정치학을 금기시하여 연구조차 못 하게 했었기 때문에 그 시절 이 땅에는 정치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존재할 수 없었다. 이런 불모지에 첫 삽을 들고 들어가 불과 수년 만에 ‘기독교민주주의·사회민주주의·교도민주주의’에 이어 ‘모택동사상’이라는 명저를 내어 그 분야에 확실한 이정표를 세워 주었다. 이는 지금 이 나라 학계에서 공히 인정하고 있는 바와 같다.

둘째, 그는 교육행정가로서 투철한 국가철학과 역사의식을 겸비한 희대의 지도자였다. 특히 총장 재임 기간에 그가 행한 각종 연설은 순종과 복종만을 강요하던 군부 독재에 주눅 들어있던 많은 지식인과 젊은 학생들에게는 자다가도 눈이 번쩍 떠질 만큼 신선하고도 의로운 사자후였다. 1970년 10월 2일, 그가 총장 취임사에서 “새 시대의 새로운 지도자는 치밀한 지성과 아울러 대담한 야성을 한 몸에 지니면서도 능히 그 조화를 이루어 낼 수 있는 높은 차원의 전인적인 인간이어야 합니다”라고 한 이 한마디는 고려대를 기점으로 전국의 대학들이 새롭게 약진하는 신기원이 됐다. 이 ‘지성과 야성’이란 말은 그 후 우리 고려대의 상징어가 됐고, 지금도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 교우사회에서 고대인의 긍지로 자랑스럽게 통용되고 있다.

셋째, 김 총장은 참으로 놀라운 학원 경영자이셨다. 재임 중 그처럼 안팎으로 시달리면서도 학교의 시설과 교세 확장에 엄청난 치적을 남기셨으니, 이것은 고려대 100년 역사에 최대의 공헌이 아닐 수 없다. 당시 재단이사장과 이사의 적극적인 협조를 얻어 우석대를 인수 합병해 의과대학과 부속병원을 갖추어 명실상부한 종합대학의 면모를 갖췄다. 이어 서독 정부의 원조를 받아내어 구로·안산·여주병원을 차례로 확보했으며, 역시 독일의 원조와 차관으로 농과대학, 지금의 생명공학대학을 크게 변혁 발전시켰다.

또한 지금의 세종캠퍼스를 확보해 교세를 크게 확장했으며, 국무총리 재임 시절에는 오늘의 의과대학과 안암병원 일대 약 24만㎡를 공원·녹지에서 해제해 종래 본교부지 약 21만㎡보다 더 넓은 공간을 확보, 지금의 민족문화관, 화정체육관, 아이스하키장, 외국인 교수 숙소를 마련할 수 있게 했다.

한마디로 남재 선생은 참으로 우리 시대의 큰 인물이셨다. 큰 뜻과 큰 그릇, 큰 재주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조금도 티를 내지 않았으니, 옛말에 “대현(大賢)은 대우(大愚)”라 한 것이 곧 선생을 두고 한 말인 듯하다. 외람되지만 제가 총장 재임 중 제창한 ‘바른 교육 큰사람 만들기’ 운동에서 큰사람이란 바로 남재 선생의 인간상을 전범(典範)으로 한 것이었다. 나라가 어지러울 때면 으레 남재 선생이 거론되던 까닭이 무엇 때문이겠는가. 명교수, 명총장에다 훌륭한 사회복지가, 탁월한 경세가로서 그가 발휘한 능력 때문이겠지만, 본질적으로는 성인(聖人)에 가까운 그의 중후한 인품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한다. 30여 년을 가까이서 모시면서 이것만은 제 눈으로 보고 제 마음으로 확인한 것이다.

당시 남재 선생의 명성에 따른 상징성만으로도 고려대의 위상이 크게 높아졌고, 교수와 학생들 모두 김 총장님을 모시고 있는 고대인이라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자랑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우리 고려대 캠퍼스 어디에도 이처럼 고대인뿐 아니라 온 국민이 우러르는 남재 선생을 기리고 추모하는 상징물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늦었지만 이제부터라도 본격적으로 진지하게 논의할 것을 정중히 제의한다.

홍일식 문화영토연구원 이사장(고려대 13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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