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들으니 소리가 보인다”… 깐깐한 연주자들과 ‘최고의 합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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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입력 2022-11-28 09:06
업데이트 2022-12-23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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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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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음반의 지휘자’ 톤마이스터 최진(49) 감독은 좀처럼 화내는 법이 없다고 했다. 그가 소리와 사람 모두를 잡는 비결이다. 문호남 기자



■ 베스트 리더십 - 국내 대표 톤마이스터 최진 감독

국내 5명 안팎인 ‘톤마이스터’
음향 엔지니어 + 음반 프로듀서
백건우 · 조수미 · 조성진 · 임윤찬
명연주자들이 찾는 최고전문가

예민한 아티스트 감정 존중해
직설법 대신 ‘돌려말하기’ 달인
개개인 역량 살려주는데 집중

10여년전부터 3D사운드 녹음
카오디오 · 공연장 자문도 맡아


피아니스트 백건우·손열음·조성진·임윤찬,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성악가 조수미의 공통점은? 이들은 모두 ‘최상의 소리’를 내기 위해 톤마이스터 최진(49) 감독과 함께 작업했다. 최 감독은 국내 5명 내외가 전부인 톤마이스터 중에서 최고로 꼽힌다. 1년 기준 작업량만 100∼150개에 달하고, 1년에 20회 이상 유럽을 드나들며 국내외 유수의 오케스트라, 연주자들과 호흡을 맞춘다. 그런데 아직은 생소한 톤마이스터란 직업. 최 감독의 말을 빌리면 ‘기적을 만드는 사람’이다.

◇“영화에 감독, 공연에 지휘자, 음반 작업엔 톤마이스터”

지난 21일 서울 서초구 본인의 스튜디오에서 만난 최 감독은 “음반 작업에서 음악적으로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모든 총괄 역할을 한다”며 “영화에 감독, 공연에 지휘자가 있듯이, 음반을 만들 때엔 톤마이스터가 있다”고 소개했다. 소리(톤)와 장인(마이스터)이 결합된 개념으로 독일에서 건너왔다. 음악 프로듀서와 음향 엔지니어링 역할에 더해 연주자와 교감하고 지시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톤마이스터는 음악 전반에 ‘백과사전’ 수준의 지식과 감각을 요한다.

클래식 분야에선 연주자가 독보적인 역할을 할 것이란 생각과 달리, 최 감독은 “연주자가 같아도 톤마이스터가 다르면 소리가 달라진다”며 “녹음 과정에서 딱 한 수만 둬도 판이 바뀐다”고 단언했다. 그는 “톤마이스터는 연주를 채집하는 게 아니라 연주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고 설명했다. 영화감독이 배우에게 디렉션을 주듯 톤마이스터는 연주자에게 디렉팅을 한다는 얘기다. “좋은 소리를 수동적으로 잡는 게 아니에요. 곡의 취지에 맞는 최상의 소리를 끌어내는 역할부터가 시작입니다.”

그는 톤마이스터로서 음반 작업 과정을 ‘기적’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단원이 100명인 오케스트라와의 녹음 과정을 예로 들며 “매번 100의 시너지가 나는 것이 아니다. 톤마이스터의 지휘와 연주자들의 의지에 따라 200, 500, 1000의 시너지가 날 수 있다”며 “연주자 개개인 역량 이상의 소리가 나오면 단원들도 희열을 느끼고, 나 역시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런 기적을 붙잡기 위해서 일하는 것 같아요.”

◇“사리가 꾹꾹 쌓인다”…예민 보스 연주자들과 소통이 관건

최 감독은 톤마이스터로서 20년 넘게 음반 작업을 하면서 단 한 번도 연주자와 충돌해본 적 없다. 예민하고 섬세한 클래식 연주자들과의 작업 과정이 순탄하게 진행되는 건 그만의 철칙 때문이다. 우선 그는 돌려 말하기의 달인이다. 최 감독은 종이 한 장 차이의 감정 변화로 음악이 확확 달라지는 연주자들에게 부정적인 의견을 절대 대놓고 내놓지 않는다. 그는 “비수를 꽂아야 할 때 그걸 어떻게 돌려 말할지가 녹음 성공의 관건”이라고 했다.

“연주가 왼쪽으로 가야 하는데 오른쪽으로 가고 있더라도 절대 왼쪽으로 가야 한다고 말하지 않아요.” 그럼 어떻게 말할까. “지금 오른쪽으로 가서 주변에 낙엽이 보이는데 좋은 것 같다고 해요. 그럼 연주자들이 보통 알아듣죠. 왜냐하면 우리가 이 곡에서 찾는 건 낙엽이 아니라 새싹이었으니까.”

‘벙어리 냉가슴 앓듯’ 아닌 걸 아니라고 말할 수 없는 처지. 답답해서 폭발하는 순간은 없을까. 최 감독은 “사실 속이 시꺼멓게 타고, 사리가 꾹꾹 쌓인다”며 “그런데 내가 터뜨려버리면 녹음이 끝나버린다. 끝까지 내가 안고 가야 하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연주자의 연주를 돋보이게 만드는 게 톤마이스터의 본분임을 잊지 않는 것도 그의 비결이다. 최 감독은 “톤마이스터 일을 하다 보면 많이 들리고 많이 보인다. 자연히 자기가 (연주자들) 위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며 “그럼 연주자 위에 군림하고 자기 뜻대로 하려고 하는데, 음악이 제대로 나올 수가 없다”고 강조했다. “자신이 돋보이고 싶으면 이 일을 하면 안 돼요. 그냥 본인 연주를 해야죠.”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21일 서울 서초구 스튜디오에서 만난 톤마이스터 최진(49) 감독. 문호남 기자



◇“이제는 소리가 보인다”

최 감독은 스튜디오보다 공연장에서 녹음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당연히 국내와 해외를 가리지 않고 수많은 공연장을 수차례 드나들었다. 그런 그가 국내에서 녹음하기 좋은 공연장으로 손꼽는 곳은 통영 국제음악당이다. 최 감독은 “통영에 공연장이 생기고, 녹음하러 외국에 가는 횟수가 줄었다”고 말했다. 그가 작업을 위해 통영에 머무르는 기간을 합치면 1년에 2달 정도나 된다.

최 감독은 공간음향의 선구자이기도 하다. 그는 10여 년 전부터 3D 사운드 녹음을 해왔다. 최근엔 자동차에서 공간음향을 구현하기 위해 카 오디오 자문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국내 공연장에 대한 자문도 수시로 한다. “좋은 소리를 찾아 하도 많이 공연장을 다니다 보니 이제는 공연장만 보면 소리가 어떨지 보입니다. 정말 소리가 보여요.”

최 감독은 음반 녹음 때문에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사치일 때도 많다. 이런 헌신 끝에 소리가 보이는 경지에 이르렀다지만, 그는 여전히 배우고 있다. “이제야 알겠다 하는 순간부터 하락이에요. 뭔가 알겠다 하는 순간이 오다가도 2∼3년이 지나면 아직 모르겠단 생각이 듭니다. 그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배움이 쌓여가죠.”

“임윤찬은 음악밖에 모르는 애늙은이… 조수미는 여전히 펄펄”

■ 최진 감독과 작업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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톤마이스터 최진(49) 감독이 음반 작업을 한 20년의 세월 동안 수많은 아티스트와의 추억은 켜켜이 쌓여갔다. 그리고 현재진행형이다. 피아니스트 손열음의 모차르트 소나타 전곡 음반은 마무리됐고, 코리안체임버 오케스트라의 모차르트 교향곡 전집 작업은 진행 중이다. 피아니스트 임윤찬(18)이 광주시향과 협연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 실황 음반은 28일 발매 예정이다.

최 감독은 임윤찬을 ‘애늙은이’라고 칭했다. 그는 “윤찬 씨는 음악밖에 모른다”며 “작업을 하면서 이 음악은 이렇고, 그 연주는 저렇고 얘기하는데, 정말 음악에 대한 지식이 많더라”고 전했다. 최 감독은 “지금처럼 음악을 좋아하는 마음이 유지된다면 앞으로도 그의 음악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소프라노 조수미(60)의 ‘인 러브’ 음반은 12월 초 발매 예정이다. 최 감독은 2005년 조수미와 처음 작업한 뒤로 20년 가까이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최 감독은 “조 선생님은 절대 그 연세로 느껴지지 않는다. 젊은 성악가와 작업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에너지가 넘친다”고 전했다. 조수미가 이번 앨범 준비에 이전보다 열정적으로 임하고 있다고 최 감독은 귀띔했다. “전세계를 다니면서도 거의 매일 통화해서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 저렇게 했으면 좋겠다고 하세요. 저도 처음 봤어요 이런 모습은. 평소에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담긴 것 아닐까요.”

오랜 세월 함께 호흡을 맞춘 피아니스트 백건우(76)와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74)에 대해선 “두 분 다 음악밖에 모르고, 아직도 그 안에서 사신다”고 평가했다. 최 감독은 “백 선생님은 요즘에도 너무 하고 싶은 게 많으시다”며 “음악의 본질을 꿰뚫으시는 것 같다. 요즘은 모차르트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모차르트는 백건우가 이제껏 한 번도 녹음한 적 없는 작곡가다. 최 감독은 백건우와 최근 녹음한 슈만의 ‘유령변주곡’에 대해선 “선생님이 슈만과 접신한 것 같았다”고 극찬했다.

최 감독은 피아니스트 조성진(28)의 8월 31일 연세대 노천극장 공연 음향을 총괄하기도 했다. 그는 “야외 공연이라 확성을 하지 않을 순 없지만, 한 듯 안 한 듯 최대한 자연의 소리에 가깝게 느껴지도록 해보자고 콘셉트를 잡았다”며 “관객 몰입도가 엄청났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조성진의 아름답고 유려한 연주에 관객 모두가 행복하게 듣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고 덧붙였다.

이정우 기자 krust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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