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교육·고지식한 선행… ‘벽송’ 할아버지의 생애 돌아봅니다[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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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입력 2023-01-18 09:05
업데이트 2023-01-18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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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립습니다 - 안원옥 박영사 창립자(1924∼1992)

정확히 1년 전, 내 머릿속에는 70, 15, 30이라는 숫자를 떠올리며 이 중요한 한 해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에 대한 집중이 시작되었던 시기였다. 할아버지가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설립하신 도서출판 박영사의 창립 70주년, 허허벌판이던 파주출판도시에 이채쇼핑몰을 짓고 삶의 위기를 겪을 정도로 힘들어하셨던 아버지가 연이어 개관한 갤러리박영 15주년, 그리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30년이 된 해였다.

그 숫자들을 생각하며 하루하루 아끼며 바쁘게 보냈던 지난 한 해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결국 내가 찾고자 했던 것이 박영의 기업 정신을 어렴풋이가 아닌 좀 더 정확히 그 뿌리를 알고 싶은 데 있었다. 나의 할아버지, 안원옥 박영사 선대 회장님이 추구하셨던 문화적 뿌리를 정확히 알고 내가 15년째 가업을 잇고 있다는 것에 대해 스스로 정당성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도 또 하나의 이유였다.

그러나 30년간 묵혀둔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그저 어렴풋이 남아 있었고, 유독 내게는 관대하셨던 모습이 문득문득 떠올랐다. 옛 사진첩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앨범 속에 모습들은 할아버지에겐 장손녀였던 내가 마냥 사랑스러우셨나 보다. 사진이 말해주는 그 순간의 모습들이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얼마 전 갤러리박영의 VIP룸 이름을 ‘벽송’이라 정하고 문패를 부착했다. 할아버지 호를 방 이름으로 정하면 남겨주신 기업 정신과 추억을 떠올리며 사업상 난관에 부딪혔을 때 힘을 낼 수 있을 것 같아서다. 푸른 소나무란 뜻의 벽송 할아버지. 돌이켜보니 그 어떤 상황에서도 나에겐 너그럽고 관대하셨던 할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15년간의 고독한 미술사업을 이어가며 힘들 때마다 마음 한편에 있었다.

반백 살을 코앞에 둔 장손녀가 드리는 선물처럼 시작된 것이 현재 전시 중인 ‘두레문화박영70’전(2022.12.29∼2023.2.18)이다. 그렇게 할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69세에 작고하신 짧은 생애를 다시 조명해보고픈 마음에서 기획을 잡고 진행하게 된 전시다. 갤러리박영이 단순히 안종만 현 박영사 회장님의 미술 사랑에 의해 시작된 갤러리가 아닌 선대 회장님의 고미술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된 것을 알리고 싶었다. 그리고 박영사 창립 70주년이었던 2022년을 절대 넘기지 않고 기업 정신을 알리는 고서와 함께 벽송 컬렉션을 30년 만에 박영사 수장고에서 꺼내 그 시절 어떤 생각으로 컬렉션을 이어오셨는지에 대한 한국 미술계 초창기 컬렉터의 마음을 읽고 싶은 이유도 있었다.

이번 전시에 대해 처음부터 마음을 비웠다. 현대미술을 추구하는 현 미술 시장이 팽창되고 있는 시점에 내가 소개하는 고미술품 전시가 주목을 받지 못할 거란 것에 대해 예견했던 기획이었지만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관람객이 많이 방문하고 있다. 파주의 칼바람이 부는 추운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되고 그냥 내 마음이 가는 대로 할아버지 30주기를 맞아 꼭 드러내 보이고 싶었던 벽송 컬렉션 전시를 준비하고 있었던 건데 그 진심이 세상에 전해진 것이란 생각이 든다.

할아버지께서 박영장학문화재단 설립을 유언으로 남기셨다는 것을 막연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현재까지 재단의 어떤 행보가 이어지고 있는지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또 한 번 놀라웠던 것은 당신의 모교이자 출판사 설립 전 마지막 교사 생활을 하셨던 김제 죽산초에 30년간 매년 200권의 다른 출판사 어린이 책을 구매해 기증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마지막 퍼즐을 맞춘 듯 할아버지의 생애는 나라에 대한 애국, 교육의 중요성, 고향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누군가를 조용히 돕고자 했던 고지식한 선행, 언어와 문화를 빼앗긴 시대에 가난을 겪으며 후손들에게는 그런 삶을 잇게 하고 싶지 않았던 순흥 안 씨의 고지식한 ‘선비’의 모습이었다는 것을. 두레문화라는 것이 바로 할아버지가 마음에 품고 있었던 지식인의 참모습이었다.

지금 내가 지면을 통해 공개되는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과 추억에 대한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은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며 이제 마쳐야 할 드라마의 따뜻한 엔딩 같은 기분마저 감돈다. 하늘에서 보고 계실 할아버지가 작년 한 해 달려온 장손녀에게 이런 말씀을 하지 않으셨을까 상상해봤다. “수연아, 잘하고 있으니 힘내거라… 그리고 고맙구나….”

갤러리박영 대표 안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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