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기’는 언제나 미덕? … 멈출 때 알고 돌아서는 것도 ‘용기’[정신과 의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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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입력 2023-01-20 08:28
업데이트 2023-01-23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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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과 의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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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유난히 끈기를 좋아한다. 마늘과 쑥만 먹고 버틴 곰이 조상이고, 여러 번 ‘다운’당해도 다시 일어난 4전 5기의 홍수환을 잊지 못한다. 무려 9번 만에 사법시험을 패스한 사람이 현직 대통령이다. 의지가 약해질 때 이런 이야기를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는다. ‘중꺾마’라고. 그렇지만 현실에서는 꼭 좋은 것만은 아닌 듯하다. 멈춰야 할 때 멈추고 그만둘 줄 알아야 인생이 꼬이지 않는다.

심리학자 애니 듀크의 ‘큇’(세종서적)은 “자주 그만두는 사람들이 성공한다”는 상반된 주장을 하며 다음의 사례를 소개한다. 스튜어트 허친슨, 존 태스크, 루 카시슈케라는 3명의 등반가는 팀과 함께 에베레스트 정상 직전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정상에 오르려는 행렬이 너무 많아 등반 일정이 뒤로 밀렸다. 무사히 캠프로 돌아가기 위한 반환시간인 1시까지는 정상에 오를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아주 오랫동안 등반을 준비했고, 한 명은 7대륙 최고봉 모두를 오르는 대업을 이루기 직전이었다. 하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을 깨닫고 오전 11시 30분에 하산을 시작해서 무사히 모두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에 반해서 같은 날 정상에 도전한 다른 팀의 세계적 등반가 롭 홀은 정상까지 올라갔지만 하산하는 길에 팀원 모두가 사망하고 말았다. 롭 홀의 사고는 널리 알려졌지만, 중간에 돌아온 3명의 이야기는 조용히 묻혔다. 짜릿한 고진감래도, 비극적 사건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부분에 주목한다. 적절한 순간에 멈출 줄 아는 사람은 안전하게 돌아왔지만 밍밍해서 사람들의 머릿속에 남지 않는다. 더욱이 이들은 겁쟁이로도 보이니, 판단과 행동의 교본이 되지 못한다. 그렇지만 그만둘 때 그만둘 수 있는 능력은 멋지지는 않지만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요한 능력이다.

그럼에도 현실에서 실천하기 어려운 것은 현상을 유지하려는 편향, 매몰비용에 대한 두려움, 내가 결정했다는 것이 주는 무게감, 지금 그 안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에 위험이 보이지 않는 것, 오랫동안 해온 일이라 어느덧 그게 내 정체성이 돼버린 것 등 다양한 심리기제가 작동한 결과로 설명한다.

책에서는 한번 시작한 공공사업이 눈 덩어리처럼 불어난 예산에도 불구하고 지속돼 적자투성이 애물단지가 돼버린 캘리포니아의 고속철도사업이 나온다. 과감한 리더십이 없고, 유권자로부터 비난을 받고 싶지 않은 정치인의 심리가 낳은 비극이었다. 공공과 조직에서도 이런 멈추지 못함의 문제는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이처럼 개인의 행동뿐 아니라 조직의 관성적 사업에서도 적절하고 합리적인 중단의 기준을 만들고 이를 지킬 원칙을 판단하는 시점부터 함께해야 한다는 것을 흥미롭게 보여주고 있다. 어느 선에서 멈추고 돌아설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은 김새는 이야기가 아니라 자극적 일화들에 묻혀 보이지 않던 생존의 지혜인 것이다. 잘 멈추고 포기한 사람들은 조용하지만 안전하게 잘 지내고 있다. 뉴스에 나오지 않을 뿐.

하지현 건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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