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명 짧은 운명” 말에 어려서 사찰 생활… 이광수‘원효대사’읽고 “스님되겠다” 굳은 발심[파워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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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입력 2023-02-08 09:17
업데이트 2023-02-08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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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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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워인터뷰 - 진우 스님은 …

“네 살 때쯤 할머니 손을 잡고 태백산 정암사에 갔는데, 거기 스님께서 저를 보더니 ‘수명이 짧으니 절에서 키워야 한다’고 했습니다. 할머니를 협박, 공갈한 셈인데(웃음), 집안에서 ‘국민학교(현 초등학교)라도 졸업한 다음에 입산시키자’라고 해서 중학생 때부터 절에서 살게 됐지요.”

진우 스님은 1972년 강릉 보현사로 출가하게 된 경위를 이렇게 밝혔다. 3대 독자이지만, 성인이 되는 스무 살 때까지 절에서 지내기로 했다. 처음에 능각 스님을 시봉했는데, 1978년 백운 스님을 은사로 수계했다. “능각 스님이 어느 날 백운 스님의 상좌를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두 스님 간 어떤 거래가 있었는지 강제 입양된 것이지요(웃음). 그래서 본사(本寺)가 바뀌며 진로도 달라졌지요.”

그는 사춘기 때 절에서 학교를 다니며 불만이 많았다고 한다. 사찰의 규율에서 벗어나 다른 친구들처럼 자유롭게 살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스무 살이 되자 생각이 달라졌다.

“이광수의 소설 ‘원효대사’를 읽고 정말로 스님이 되고 싶다는 발심을 했습니다. 또 은사이신 백운 스님이 쓰신 ‘양치는 성자’ 덕분에 신심이 커졌습니다. 서산대사의 의발을 전수받은 편양언기(鞭羊彦機)선사의 일생을 다룬 책이지요. 그 덕분에 이제 절에서 내려와 장가를 가라는 집안의 권유를 과감히 떨칠 수 있었지요.”

그는 불가에서 만난 수많은 스님들에게 배움의 은덕을 입었다고 했다. 그 중 특히 두 스님을 떠올렸다.

“선객(禪客) 해수 스님이 저에게 큰 영향을 끼치셨습니다. 참 수좌(首座·참선 승려)이셨다고 생각합니다. 늘 장좌불와(長坐不臥·눕지 아니하고 꼿꼿이 앉은 채로만 수행하는 방법) 하시고,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으시며 수처작주(隨處作主·어느 곳이든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됨) 하셨습니다. 종정을 지내신 서옹 큰스님은 제가 옆에서 모신 분으로서 마음의 구조와 구성, 그리고 선(禪)이 무엇인지 알려주셨습니다.”

오대산 상원사 청량선원 등에서 수행한 진우 스님이 주지 소임을 처음 맡은 건 32세 때였다. 전남 완도 신흥사 등에서 사찰 운영 경험을 차곡차곡 쌓던 스님은 2000년 담양 용흥사 주지로 부임해 불사를 일으키고 몽성서원을 개원하는 등 빼어난 능력을 보였다. 2012년엔 장성의 큰 사찰인 백양사 주지를 맡아 문중 간 알력을 조정하고 화합시키는 행정력을 발휘했다. 이를 계기로 종단의 주목을 받게 된 스님은 2015년 조계종 재심호계위원으로 중앙에 진출한 후 종무 행정에서 요직을 두루 거쳤다.

△강원 강릉 출생 △조계종 총무원 사서실장, 호법부장, 기획실장, 총무부장, 총무원장 권한대행, 불교신문 사장, 교육원장 역임 △현재 한국불교종단협의회 회장,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 대표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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