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계 정상서 사업가의 길… 성공·실패·재기 거듭했던 ‘쾌남아’[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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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입력 2023-02-16 08:56
업데이트 2023-02-16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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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2014년 고 신일룡(왼쪽) 회장과 필자. 필자 제공



■ 그립습니다 - 영화배우 신일룡(1948∼2022)

우리 세대 중에서 액션 배우 신일룡을 모르는 이는 없을 터이다. 그가 배우라는 직업을 은퇴한 지가 벌써 37년이니 그를 모르는 신세대도 많을 것이다. 그는 1948년 함흥 출생으로 1970년 신상옥 감독의 ‘이조괴담’으로 데뷔해 한 시대를 풍미한 미남 스타이다. 그는 이소룡의 후계자로 한국을 비롯해 홍콩과 동남아를 오가며 많은 액션영화에 출연했다. 무엇보다도 쾌남 CF 하면 그를 떠올리게 되고 팬들은 그를 쾌남아로 기억한다.

나는 그를 형이라 부른다. 조감독 시절 톱스타인 그를 만난 건 40여 년 전이다. 형은 고려대에 재학 중이던 20대 초반에 영화계 데뷔와 동시에 스타로 등극한다. 그리고 해태제과 전속모델로 부라보콘 등의 CF에 출연했는데 경영학도답게 계약금 대신에 해태제과 대리점을 받았다. 이재에 밝은 것인데 누구도 하지 않은 행보였다.

그는 이우석 회장의 동아수출공사가 1986년에 제작한 배창호 감독의 ‘황진이’를 마지막으로 영화계를 떠났다. 그의 꿈은 비즈니스였다. 사업가로서의 꿈을 이루기 위해 정상의 자리에서 미련 없이 떠난 것이다. 성격이 급하기도 하지만 그의 판단력과 추진력, 결단력은 타고난 것이다. 남산에 양식 레스토랑을 경영했고, 패밀리 레스토랑의 원조인 ‘런던팝’을 운영하며 자신의 꿈을 키워나갔다. 그리고 쉼 없는 사업 확장과 그 인생의 정점에서 운명처럼 부도가 나며 인생의 바닥을 쳤다.

그가 벌인 사업은 대부분 성공했는데 그만큼의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그 절정에서 실패가 찾아온 것이다. 그는 제주도에 카지노 호텔을 건축하며 자금 조달의 나락으로 떨어져 그의 표현에 따르면 바닥을 쳤다. 그래도 굴하지 않고 오뚝이처럼 일어선 형이다. 그는 재기를 위해 호두파이 사업을 시작한다. 바닥에서 일어서기 위한 사업이지만 호두파이 반죽을 하며 가슴속의 한을 삭였을 것이다. 그는 호두파이 사업으로 재기하며 새로운 인생을 개척했다.

그의 사업은 프랜차이즈 사업으로 확장되었고 전국에 매장이 세워졌다. 2020년 속초에 오픈한 호두파이 매장을 팬들과 함께 다녀왔다. 앞치마를 두르고 직접 호두파이를 굽는 그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타인이 섣불리 흉내 내었다가는 쓰러지기 십상이었다. 나도 당뇨가 와서 운동하고 술 조심하며 살고 있지만 형 역시 당뇨병이 있다고 고백했다. 그런 줄을 몰랐는데 천하의 신일룡 회장도 병마와 싸우며 고군분투한다는 것은 내게 용기를 주었다.

나 역시 객지생활을 해보아서 그 고생을 알고 있다. 그러한 힘듦에도 그것을 실천하는 이가 바로 신 회장이었다. 형의 지론은 “(나이 들었다고) 앉아서 쉴 수는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허투루 시간 보내는 것이 인생이 아니기에, 아직도 부지런히 살아야 할 나이이기에 충분히 공감이 가는 말이다.

당대의 스타로서, 또 청계산에 버젓이 본사를 두고 있는 형이 속초에까지 가서 왜 고생을 사서 하는지는 알다가 모를 일이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그는 당시 간암 투병 중이었다. 당시로써는 너무 건강해 모두가 잘 몰랐다. 자신에 대한 끝없는 혹사라고 느껴지지만 그게 아니라는 것을 나는 잘 안다. 그의 타고난 성격이 그를 내버려두지 않았던 것이다.

2021년 폭설이 내리던 날이다. 신 회장은 알밤을 이용한 호두파이 개발을 위해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개발은 미수에 그쳤다. 그것은 알밤이 워낙 빨리 굳어버리는 성질을 갖고 있기 때문인데 이것저것 시도를 해보는 신 회장의 노력이 대단할 뿐이었다. 그것은 청년 정신에서 기인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 그가 간암 말기였다는 것을 알면 더욱 놀랄 일이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고 할지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마틴 루서의 말이 생각난다.

“형! 세상 사는 게 왜 이리 힘들어?” 하면 형은 “인생은 다 그런 거야”라며 격려해 줬다. 그만큼 열심히 살았던 분을 만난 적이 없다. 심지어 2022년 5월, 별세 2주 전까지도 새로운 매장을 함께 찾아다녔다. 지금도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는 형이다. 그의 인생 철학을 안다면 어찌 그를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가 남긴 많은 영화와 사진들, 그리고 남겨진 이들…. 분당의 메모리얼 파크에 먼저 잠든 그를 생각하며 다시 한번 새겨보는 그의 인생이다.

안태근 한국다큐멘터리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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