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에 맞서 자유민주주의와 정의 위해 싸운 ‘청강’[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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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입력 2023-03-08 09:01
업데이트 2023-03-08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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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립습니다 - 이만섭 전 국회의장(1932∼2015)

나에게 있어 이만섭은 누구인가.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1953년 9월, 즉 연세대 1학년 2학기 때의 일이다. 그가 이 세상을 떠난 것이 2015년 12월이므로 우리의 만남은 무려 62년간 지속한 셈이다. 겉으로만 스치면서 만난 것이 아니라 젊음의 열정과 영혼의 뜨거움으로 교류했던 만남이었기 때문에 평생을 한결같이 이어갈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만섭. 그의 아호는 청강이다. 한자로는 ‘靑江’이다. 그러나 그는 평생을 맑고 깨끗한 ‘淸江’으로 살았다. 그래서 나는 그의 호를 ‘淸江’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그가 국회의원 8선에 국회의장을 두 번씩이나 감당했으면 그의 계파가 거대하게 존재하고 있거나 대권 도전의 제1 유력후보자가 됨직하다. 그러나 실제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생전에 흔히 “대통령은 하늘이 찍어줘야 한다”고 말해 왔지만, 진실은 그의 가난에 있다. 청강의 지나친 결백은 청빈(淸貧)을 가져왔다. 청빈보다는 청부가 그에게 더 바람직했건만 그는 학생 시절부터 가난을 겪으면서 끝내 그 올가미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에게 있어 자존심은 생명이었다. 어쩌면 그것이 그의 자부심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욱 세상을 향해 당당하고 담대하게 외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50여 년간 정치에 몸담고 있었으면서 그처럼 스캔들이 없고 부정과 비리에 연루되지 않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 점에서 그는 존경받을 만한 정치인이라 할 만하다.

재학 중 그를 존경하고 따르던 직계 후배가 내게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은 일이 있다. 자기가 재벌그룹의 재무담당 부회장이다 보니 얼마든지 재정적으로 후원할 수 있었건만 이 선배는 몇 번을 만났어도 단 한 번도 아쉬운 소리를 하는 일이 없어서 한 푼도 돕지를 못했다는 것이다. 결례가 될까 봐 임의로 도울 수도 없었다고 한다. 주고 싶지 않은 사람은 안 줄 수 없게 만드는 데 반해 주고 싶은 사람은 역으로 본인이 줄 수 없게 만든다는 것이었다. 원래 그런 분이니까 충분히 이해가 간다고 했다.

그의 청빈과 근검절약의 일상생활은 41년간 그를 기사로 모셨던 권중태 보좌관이 TV를 통해서 공개적으로 증언한 적도 있다. 한국의 정치권에서 계파를 거느리려면 1인당 최하 소요액이 얼마라는 속설이 있다. 그는 체질적으로 그런 행태를 거부한다.

그러니 정치적 손발, 즉 헌신적 추종 정치인이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대통령 후보로 발돋움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나는 한때 그보다 더 적절한 대통령감이 어디 있겠는가 하는 판단에서 몹시 안타까웠던 때가 있었다. “자녀 삼 남매를 혼인시키면서도, 또한 저서를 여덟 권씩이나 출판하면서도 우선 나부터도 초청장을 받은 일이 한 번밖에 없으니 이건 아무리 청강이라도 친구지간에 너무 한 것 아니냐” 하고 따져 물었다. “폐 끼치기 싫어서 그랬다”는 게 그의 답이었다.

그게 언제였던가. 계동 골목의 대중식당 ‘향가’에서 그를 만났다. ‘물이 지극히 맑으면 고기가 없고, 사람이 지극히 맑으면 무리가 안 따른다(水至淸則無魚 人至淸則無徒)’라고 쓰인 액자가 그 방에 걸려 있어 청(淸)을 화두로 삼았는데 그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체질적으로 청강은 청빈일 수밖에 없었고 그가 비록 대권에의 야망이 있다 할지라도 오늘과 같은 한국 정치의 풍토와 환경 속에서는 꽃 피울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는 성격상 한국적 당인(人)이 될 수 없다. 그래서 항상 고독과 고통의 멍에를 짊어져야만 했다. 1969년 3선 개헌안 반대투쟁만 해도 그렇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과 집권세력이 사생결단의 작심 끝에 내놓은 개헌안이다. 그는 당시의 집권여당 공화당에서 마지막까지 저항한 단 한 명의 국회의원이었다. 그런데 그는 여기에 덧붙여 공화당 의원총회에서 권력의 최고실세라 할 청와대 비서실장 이후락과 중앙정보부장 김형욱을 권력형 부정부패의 핵심이라고 규탄하고 그들의 해임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범부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발언이다. 이 일로 인해 그는 결국 1978년까지 무려 8년간 여당에서 정치적으로 퇴출당하는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그는 평생토록 가난을 디디고 불의에 맞서 자유와 민주, 정의로운 국가, 그리고 민족의 평화와 공동번영을 위해 싸웠다. 온갖 독재와 압박에 항거하여 부정한 권력과 부패에 맞서 싸웠다. 참으로 힘겹게 감당해왔던 그 소임을 내려놓고 우리 곁을 떠나 천국으로 불려간 지 어언 7년 3개월이 되었다. 오늘날 그가 후배들의 영원한 귀감이 되고 있음을 나는 한 시대를 그와 함께 살았던 사람으로서 진심으로 기뻐하고 존경하며 지금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윤형섭 전 교육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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