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 지옥’ 돼버린 학교, 수평적 공간으로 바꾸자[북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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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입력 2023-03-10 09:09
업데이트 2023-03-10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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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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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팀장의 북레터

최근 종영한 화제의 드라마 ‘일타 스캔들’에서 성적에 목숨을 건 고등학생 방수아는 수업 시간에 학원 교재를 풀다 선생님에게 들킵니다. “최소한의 예의도 없냐”는 선생님의 다그침에 수아는 차갑게 대꾸합니다. “수업 내용은 다 아는 거라서요. 중학생 때 이미 풀어봤어요.”

해외 건축가와 교육학자가 함께 쓴 ‘내일 학교’(창비교육)는 일타 강사들이 활약하는 사교육 시장에 주도권을 내준 학교의 존재 의미를 곱씹습니다. 온라인으로 모든 지식을 습득하는 시대, ‘아이들은 학교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죠. 예기치 않은 코로나19로 대면 수업이 중단되는 경험을 한 우리에게 이 질문은 더욱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저자들은 ‘입시’라는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학원과 달리 학교에선 미래를 준비한다는 강박관념을 덜어내야 한다고 합니다. 학교는 아이들이 공부만 하는 장소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살아가는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주장은 초등학생이 중학교 과정을, 중학생이 고등학교 과정을 학원에서 ‘선행 학습’한 뒤 그저 졸업장을 따기 위해 학교를 오가는 우리를 돌아보게 합니다.

책은 ‘근대식 학교’가 규격화된 인재를 대량생산했다면, ‘내일의 학교’는 교육 방식을 급진적으로 재고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럼 ‘무엇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라는 질문이 따라오는데요. 미국과 캐나다 등의 이상적 학교를 둘러본 저자들은 ‘건축’과 ‘교육’이라는 이력을 살려 교육 프로그램과 공간 구조의 변화를 제안합니다.

우선 필요한 건 교사들에게 일방적 권위를 부여하는 공간을 바꾸는 조치입니다. ‘개인차가 원칙이고, 표준화가 예외’라는 전제 아래 수평적 관계가 가능한 디자인을 고민하자는 얘기입니다. 이와 함께 교육 프로그램은 ‘생활하기’ ‘놀기’ ‘참여하기’ ‘창조하기’라는 네 가지 키워드로 재구성할 것을 요청합니다. “정원을 가꾸고 동물을 돌보며, 글을 쓰고 빵을 만드는 이 모든 과정은 정서적 성장의 자양분이 될 것이다.”

‘일타 스캔들’에서 수아는 극심한 스트레스로 난독증을 앓고, 경쟁자인 친구를 난간에서 밀어버리는 환영에 시달립니다. 물론 학벌에 대한 집착이 유달리 강한 한국에서 저자들이 제시하는 ‘대안 학교’가 당장 ‘내일의 학교’로 자리매김하긴 어렵겠지요. 하지만 저자들의 절박한 목소리를 흘려버린다면 지금도 어딘가에서 고통받고 있을 또 다른 수아를 ‘입시 지옥’에서 영원히 구해내지 못할 겁니다.

나윤석 기자 nagij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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