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일 기자의 인생풍경]설악 뒤통수나 보겠다고 케이블카 강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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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입력 2023-03-17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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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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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이익’이란 개념이 있습니다. ‘불편이 주는 이익’이라는 뜻이니 ‘편익’의 반대말입니다. 선뜻 이해가 가지 않을 수 있겠습니다만, 번거로운 수고와 우회, 또는 고생으로 체험의 깊이가 깊어진 경험이 있다면 수긍이 가실 겁니다. 불편이 편리함의 가치를 뛰어넘는 사례는 많습니다. 간편한 볼펜보다 쓰기 번거로운 만년필을 좋아한다거나, 손글씨 편지에 더 감동한다거나, 비포장 오프로드 드라이브를 즐기는 것도 불편이익의 사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일본의 저비용항공사 피치항공이 지난해 여름 내놓아서 히트한 ‘여행복권’은 이런 불편이익을 겨냥한 상품입니다. 여행복권이란 5000엔을 내고 뽑기 기계에서 항공권을 뽑는 방식으로 운용됩니다. 자기가 뽑을 항공권의 목적지가 어딘지 모르는데도 여행복권은 내놓자마자 완판을 기록했습니다. 어디로 가게 될지 모른다는 ‘불편의 설렘’을 안고 복권기계 앞에서 기꺼이 길게 줄을 섰던 것입니다.

불편이익의 가장 적절한 예는 등산입니다. 길고 가파른 산을 헐떡거리며 고행처럼 오르는 등산이야말로 불편함에서 이익을 찾는 일이 아닐까요. 등산의 목적이 단순히 정상에 가는 것이라면, 케이블카나 에스컬레이터로 가는 게 가장 편하겠지요. 그런데도 대부분의 등산객들은 케이블카 건설을 반대합니다. 불편이익의 즐거움을 아는 까닭입니다.

근 40년을 끌어오던 설악산 오색 케이블카 설치 논쟁이 지난달 건립 조건부 허가로 결말이 났습니다. 불편의 이익 대신 ‘편리’ 쪽의 손을 들어준 결정입니다. 오색케이블카는 2026년 완공 예정입니다. 케이블카를 타면 단숨에 설악의 비경을 만날 수 있을까요. 답은 ‘글쎄요’입니다.

케이블카 상부정류장은 설악산 끝청봉 정상 180m 아래인 해발 1430m입니다. 문제는 이 자리에서는 남설악의 밋밋한 풍경과 귀때기청봉 옆모습 정도만 겨우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마저도 좋지 않은 날씨로 안개에 뒤덮여 있는 날이 많습니다. 끝청봉 정상에 올라야 화채능선이나 용아장성, 공룡능선, 수렴동 계곡이 보이는데 연계산행 금지로 케이블카 탑승객은 거기까지 갈 수 없습니다. 고작 밋밋한 설악의 뒤통수를 보겠다고 막대한 환경훼손을 감수해야 하는가에까지 생각이 미치면, 차라리 케이블카를 끝청봉 정상까지 올리는 게 어떠냐는 생각마저 듭니다. 사회적 비용까지 합쳐서 막대한 직간접 비용을 들여서 하는 케이블카 사업이니 ‘불편의 이익’이든 ‘편리의 이익’이든 어쨌든 이익은 있어야 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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