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민회장은 군림하는 자리 아니라 봉사하는 자리” 소신 지켜[고맙습니다]

기사 정보
문화일보
입력 2023-05-24 09:10
기자 정보
기사 도구
프린트
댓글 0
폰트
공유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 고맙습니다 - 김문수 개풍군민회 명예회장

5월엔 감사드려야 할 분이 많지만, 특별히 떠오르는 어르신이 있다. 인생의 스승으로서 그분의 가르침과 은혜는 시간이 흐를수록 새록새록 빛나고 있다. 실향민단체 미수복 경기도 개풍군민회 김문수 명예회장(86)이다. 개풍군민회는 개풍군에서 월남한 이산가족들이 모여 1955년부터 활동하고 있다. 회장님은 개풍군 중면 출신으로 6·25전쟁 때 피란해 연세대 상대를 나왔다. 대학 졸업 후 국민은행 등 금융계에 투신해 40여 년 근무했다.

2018년 군민회 회장님으로 선출되면서 인연이 시작됐다. 내가 실향민 2세로 이산가족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걸 전해 듣고 사무국장으로 발탁한 것이다. 사무국장은 능력은 고사하고 애향심마저 부족한 나에겐 과분한 자리였다. 실향민 1세대인 회장님은 일성으로 내게 회원 누구를 막론하고 가족같이 따뜻이 대하라 당부했다.

회장님은 서울에서 가까운 개풍인들이야말로 가장 애달픈 실향민이라는 점에 특히 주목했다. 경기 파주시 오두산통일전망대에서 고향을 육안으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실향민들의 애환이 얼마나 절절한지도 회장님을 통해 배웠다. 회장님은 군민회가 단순한 친목회 수준을 넘어 후계세대들이 중심이 돼 이북 부친의 고향을 찾아가 애향사업을 펼칠 수 있도록 서로 화합하고 단결할 것을 강조했다.

그러나 나는 정체성이 부족한 탓에 실향민 사회에 쉽게 동화되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었다. 회장님은 그때마다 지혜와 용기를 주셨다. 일례로 2020년 코로나19가 막 창궐하기 직전 총회개최 여부를 놓고 갈팡질팡할 때 만반의 준비로 총회를 앞장서 추진해 실향민들의 슬픔을 위로했다. 서로 힐난하거나 반목하는 분위기가 실향민사회에서 사라진 것도 회장님 리더십 덕분이다. 회장님은 자신의 견해보다 상대방의 입장을 항상 배려하고 화합에 역점을 뒀다.

하지만 자신에게는 무서우리만큼 엄격했다. 상대방에게 칭찬과 격려를 아낌없이 베풀면서도 자신과 가족에 대해서는 일절 냉정하고 함구하시는 것이 그분의 철학이었다. 군민회장은 군림하는 자리가 아니라 대표해 봉사하는 자리라는 소신을 끝까지 지켰다. 매사 정확하고 공사가 분명한 태도와 자세 또한 회장님에게 배운 덕목이다. 은행업계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군민회 활동도 사비를 털어 헌신했다. 이런저런 명목의 판공비를 사용할 수 있지만, 회장님은 이를 한번도 쓴 적이 없다. 군민회의 재정적인 안정과 그 기반 위에 지속적인 활동이 가능하도록 기부문화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이는 회비와 찬조금으로만 운영하는 친목단체의 한계를 극복하고 위상을 높였다는 평가다. 무엇보다 실향민 후세 양성과 지원에 헌신했다. 1세와 달리 애향정신이 부족한 후세들이 그들 나름대로 소통할 수 있도록 이들 눈높이에 맞는 친목과 단합을 유도했다. 이런 일환으로 2018년 개풍군민회 산악회를 회장님이 주도적으로 창립했다. 후세들은 정기적인 산행을 통해 애향정신을 함양하고 통일과 귀향의 호연지기를 키우고 있다.

회장님은 그 흔한 권위도 내세운 적이 없다. 그분에게는 ‘꼰대’라는 말이 정말 무색하다. 2세들에게 하대하는 법 없이 언제나 다정했다. 회원들에게 베푼 섬세하고 따뜻한 마음은 회장님의 트레이드 마크다. 고령화로 후계세대 계승이 시급한 실향민사회에서 군민회가 회장님 같은 지도자를 모신 것은 행운이었다. 아쉽지만 회장님은 2021년 회원들의 만류에도 용퇴하셨다.

원로를 포함해 군민회원들은 명예회장님을 존경하고 있다. 특히 우리 같은 후세들이 더 받들고 있다. 그만큼 후덕하고 덕망이 깊은 분이다.

회고하면 회장님이 몸소 보여주신 언행들은 내 인생의 지표다. 대과 없이 소임을 마칠 수 있던 것도 회장님 덕이다. 과오가 많은데 칭찬과 찬사를 아끼지 않으셨다. 한결같이 허물을 덮어주는 어버이 마음이다. 추억과 함께 겸손을 강조하신 회장님 말씀이 생생하다. “뒤에서 묵묵히 주어진 일을 하면 언젠가 인정받고 나아가 자신이 뜻하는 바를 반드시 성취할 수 있다.”

회장님은 헤어져서 더 보고 싶은 분이다. 요즘도 가끔 건강까지 되레 걱정해 주시는데 송구스러울 뿐이다. 오랜만에 지면을 통해서나마 회장님께 감사 인사와 안부를 여쭙고 싶다. “회장님, 자주 찾아뵙지 못한 것 용서해 주세요. 지난 가르침에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아무쪼록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이혁진

‘그립습니다 · 자랑합니다 · 미안합니다’ 사연 이렇게 보내주세요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 이메일 : phs2000@munhwa.com 
△ 카카오톡 : 채팅창에서 ‘돋보기’ 클릭 후 ‘문화일보’를 검색. 이후 ‘채팅하기’를 눌러 사연 전송 
△ QR코드 : 독자면 QR코드를 찍으면 문화일보 카카오톡 창으로 자동 연결 
△ 전화 : 02-3701-5261
▨ 사연 채택 시 사은품 드립니다.
채택된 사연에 대해서는 소정(원고지 1장당 5000원 상당)의 사은품(스타벅스 기프티콘)을 휴대전화로 전송해 드립니다.
주요뉴스
기사 댓글

AD
AD
count
AD
AD

ADVERTISEMENT

서비스 준비중 입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