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되는 남북긴장… 일상 속 의미 찾아야[김헌·김월회의 고전 매트릭스]

  • 문화일보
  • 입력 2023-06-19 09:03
  • 업데이트 2023-08-07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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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식카페 - 김헌·김월회의 고전 매트릭스 - (27) 반복되는 군비 경쟁

알베르 카뮈 ‘시지프 신화’

죽어서 하데스 간 시시포스
‘무의미한 고역 반복’ 벌받아

북핵상황 안보불감 안되지만
우직하게 일상 되풀이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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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동안의 트로이아 전쟁을 마친 오디세우스에게 귀향의 여정 또한 만만치 않았다. 10년 동안 숱한 고난을 겪는데, 그중 가장 무서운 일은 죽음의 세계 하데스로 내려가는 것이었다. 살아 있는 모든 존재는 죽음을 피하고 죽음에 저항하는 법. 그런데 산 사람이 죽음의 세계로 들어가야 한다니, 오디세우스에겐 여간 두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가려면 꼭 해야 할 과제였다. 용기를 내서 내려간 지하세계에서 그는 시시포스가 벌을 받는 장면을 목격한다.

시시포스는 집채만 한 바위를 높은 산꼭대기로 밀어 올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바위를 정상으로 올려놓으면, 그 바위는 반대편으로 하염없이 굴러떨어졌다. 그러면 그는 다시 밑으로 내려가 그 무거운 바위를 정상으로 밀어 올려야만 했다. 그렇게 수많은 세월을 보낸 그는 바위를 정상에 세워 놓을 수 있다는 희망을 점점 잃었다. 어쩌면 오디세우스가 그를 보고 있던 그 순간에 그는 아무런 희망도 없는 상태였을지도 모른다.

시시포스는 코린토스의 지도자였다. 그는 제우스가 아름다운 요정 아이기나를 납치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그녀의 아버지 강물의 신 아소포스를 만나자, 그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었다. 강자의 불의와 약자의 슬픔을 외면하지 않은 정의롭고 용감한 행동이었다. 그 대가로 강물의 신 아소포스에게 샘물을 하나 받았지만, 그것도 목마른 백성들을 위한 애민 정신에서 나온 것이지 사사로운 욕심을 채우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그것 때문에 시시포스는 제우스의 미움을 샀다. 제우스는 그에게 죽음의 신 타나토스를 보냈다. 하지만 순순히 당할 시시포스가 아니었다. 그는 꾀를 짜내 타나토스를 꽁꽁 묶었다. 그것은 죽음에 저항하는 시시포스의 필사적인 노력이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저승의 신 하데스가 노발대발했다. 죽음의 신이 이승에서 묶여 있으니, 사람들이 죽지 않았고, 저승세계의 기능이 마비되었던 것이다. 신들의 담합에 시시포스는 더 이상 버티지 못했다. 간신히 풀려난 타나토스에게 붙잡힌 그는 결국 하데스로 끌려 내려왔다. 하지만 그는 또다시 죽음에 저항했다. 그는 꾀를 내어 하데스를 속였고, 며칠 동안의 말미를 얻어 이승으로 올라와 죽음에서 빠져나왔다. 부활한 시시포스는 약속된 시간에 하데스로 내려가는 대신, 신들의 눈길을 피해 이리저리 몸을 숨기면서 어렵사리 얻은 삶의 기회를 만끽했다.

하지만 인간은 언젠가는 죽는 법. 시시포스도 결국 죽었고 하데스의 세계로 내려가야만 했다. 그에게 노발대발했던 신들은 무의미한 고역의 영원한 반복을 형벌로 내렸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인 그가 살아생전 노력한 그 모든 일이, 그가 반복해야만 했던 하루하루의 일상이 하데스에서 그가 치러야 했던 형벌의 전조였다. 알베르 카뮈의 말대로, 인간은 모두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고 살지만, 그 미래라는 것이 결국 죽음으로 끝나는 판에 그 어떤 희망도 부질없는 것이 되고 만다. 거대한 사회조직 속에 하나의 부품처럼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살아가는 일상에 갇혀 죽으라고 일을 해도 일은 끝나지 않고 계속 반복되는 것 같고, ‘늑대가 나타났다!’는 양치기의 반복되는 고함 소리에 철렁거리는 가슴 떨림도 점점 무뎌져 가고, 그 어떤 일도 죽음 앞에서 의미를 잃는 것 같기 때문이다. 급기야, 목숨을 바쳐가며 지금 우리의 삶의 터전을 지켜낸 이들을 기리기 위해 고개를 숙이면서도 숙연한 감사함과 동시에, 죽음 앞에서 그들의 삶이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를 감히 묻게 된다.

그럼에도 결국 우리는 죽음에 저항하듯 무의미에 반항하며, 삶에 의미를 부여하려고 애쓴다. 그리고 카뮈의 말을 다시 한 번 떠올리게 된다. 상 정상에서 산 아래로 굴러떨어진 바위를 아무런 희망도 없이 바라보는 시시포스, 그러나 다시 산 아래로 내려가 그 돌을 다시 정상으로 밀어 올리는 우직한 불합리함의 성실성을 마주하며, 카뮈는 이렇게 말했다. “산 정상을 향한 투쟁 자체가 한 인간의 마음을 가득 채우기에 충분하다. 우리는 시시포스가 행복하다고 상상해야만 한다.”

김헌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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