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낙엽[유희경의 시:선(詩:選)]

  • 문화일보
  • 입력 2023-08-02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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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하늘, 살 수 있나요? 구름은 어제보다 상승해 있고 오늘도 우리의 감정은 고독의 하한 근처를 서성거렸는데요// 바닥났던 잔고의 겨울나무들이 꽤 살 만해진 여름입니다// 가을까지 좀 기다려주겠습니까? 당신에 대한 나의 기색은 근처 단풍나무에 넣어두겠습니다’
-천서봉 ‘감정의 경제’(시집 ‘수요일은 어리고 금요일은 너무 늙어’)


장마 끝 무렵. 바람이 심상치 않더니 서점 앞에 낙엽들이 잔뜩 내려앉아 있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던 나는 느닷없는 풍경에 멈춰 서고 말았다. 이제 본격적인 여름인데 낙엽이라니. 몇몇 잎이 나뒹구는 정도라면 성미가 마른 녀석들이네, 혀를 차고 잊을 일이다. 나는 그중 하나를 집어 들어 살펴보았다. 바짝 마른 작은 잎이다.

한가득 초록 잎을 이고 있는 플라타너스 나무를 올려다보았다. 그 어디에도 가을의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까닭은 모르고 그저 ‘여름 낙엽’이라는 낯선 현상에 가슴이 뻐근해진다. 누구의 선택도 아닐 것이다. 나름의 소임을 다한 것이며 순리에 따라 떨어졌을 뿐이다. 그럼에도 나무가 밉다. 저 큰 덩치에 요만한 잎 좀 더 달고 있다 한들 딱히 무거울 것도 없을 터인데. 두어 달 뒤 가을 초입 함께 떠나보냈어도 될 일이다. 어쩌면 바람 탓일 수도 있다. 공연히 뒤흔들어놓아서 간신히 어울려 있던 것들을 날려 보내다니. 그 심보 참으로 고약하구나. 여기까지 생각하곤 그만둔다. 가벼운 감상인 것 같아서. 나무에게나 바람에게나 어찌 사심이 있을 수 있을 것인가. 그저 근래 안타까운 일들에 마음이 겹친 것뿐이다.

싸리비를 꺼내 서점 앞을 쓴다. 바닥이 녹아내리는 듯한 염천 더위에 비질이란 여간 낯선 게 아니구나 싶었다. 그러니 여름 낙엽은 흔치 않은 일일 거라고 다독여보는 것이다. 그것들을 살살 달래듯 나무 둥치에 몰아두었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돌아오거라, 그런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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