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란히 앉아주는 사람들에게[유희경의 시:선(詩:選)]

  • 문화일보
  • 입력 2023-08-16 11:35
프린트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빛을 나누어 쓰기로 하고, 나란히 앉는다. 흩어지는 시간을 각자 함께 바라보는 시간까지. 빛을 만져 누구의 시간을 밝혀내기로 한다. 그것이 빛이 아니라 해도.’

- 김뉘연 ‘증명’(시집 ‘문서 없는 제목’)


‘시공간’이란 단어가 무색하리만치 모든 것이 바짝 붙어 있는 시대에, 전송 버튼 한 번만 누르면 문자는 물론이요, 사진이나 동영상도 전달할 수 있는 요즘 같은 때에, 관제엽서 같은 것을 판매할까 싶었다. 역시나 우체국에서도 뜻밖의 주문이었던 모양이다. 한참 찾아 엽서를 꺼내주었다.

마음을 표현하는 데에 여러 형식이 있듯, 전달하는 방식과 수단 역시 따로 있는 법이다. 문자메시지로 가볍게 전해야 할 소식과, 이메일로 상세히 전해야 할 소식이 따로 있지 않은가. 그러니 엽서에 어울리는 마음도 있다. 나는 며칠 전 밤을 떠올려 본다. 조그마한 행사가 있었다. 무사히 마치고 참여한 독자들을 배웅하는데, 주빈이었던 선생님이 내 손을 꼭 붙들었다.

“요즘 힘들죠. 내가 자주 오고 싶은데 그러질 못해요.” 냉큼 쥐여주신 것은 갈색 봉투였다. 화들짝 놀라서 거듭 사양했지만, 선생님의 뜻을 꺾기는 어려웠다. 어리둥절해 있다가 이내 막막해졌다. 어떻게 갚아야 하나, 보답할 능력과 기회가 과연 내게 있을까. 감사를 전하기 위해 문자메시지 창을 열었다가 닫고, 메일을 적다가 지우고. 그래서 찾게 된 것이 엽서다. 한 장으로는 부족할 것 같아서 두 장, 그러다 욕심껏 열 장이나 사고 나니 떠오르는 이름들이 있다.

나는 그들이 나와 나란히 앉아주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기척을 느끼면서 거기 있음을 확인하면서 안심하면서 한 곳을 바라보게 되는 마음들이다. 보답이 다 무슨 소용일까. 나도 곁을 내어주면 될 일이다. 이따금 여기 있음을 증명하면서. 펜을 들어 엽서를 쓰기 시작했다.

시인·서점지기
주요뉴스
기사댓글
AD
count
AD
AD
AD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