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까머리 남중생들에게 사랑·희망 주셨던 음악선생님[고맙습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나(이영석·왼쪽)는 54년 만에 재회한 강화자 선생님을 베세토 오페라단으로 찾아가 다시 만난 기쁨을 나눴다.

■ 고맙습니다 - 강화자 베세토 오페라단장

가을이 왔다.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처럼 누군가 그리운 계절이다. 54년 전 봄 아직 애티를 못 벗은 까까머리 중학교 신입생이었던 우리들 앞에 서셨던 20대 초반 봄처녀는 늘 그리움의 대상이셨다. 엊그제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서신 그분과 재회했다.

두 달 전 7월 1일 국제로타리 3650지구 총재에 취임한 이후로 ‘초아의 봉사’를 하는 회원들을 하늘로 모시는 마음으로 부단히 클럽을 찾아다녔다. 서울강북로타리(회장 윤경식 국제건축명장상 수상) 월례회 겸 황실 다례 시음회에서 왠지 모를 따뜻한 분위기의 한 송이 국화 향기가 풍겼다. 일순 “아이고 선생님” 하며 왈칵 그리움이 쏟아져 나왔다. 가난을 밥 말아 먹듯 하던 시절, 비가 오면 진흙탕 길을 뚫고 가던 그때, 봄처녀 같은 낭랑한 목소리로 우리들에게 음악을 가르쳐 주시던 장훈중 강화자 음악선생님이 앞에 계셨다. 선생님도 반갑게 알아보시고는 어릴 때 모습이 보인다며 “잘 커줘서 고맙다!” 하시기에 나는 “잘 키워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화답했다. 주위에 있던 로타리안 참석자들도 오랜만의 사제 지간 재회 인연을 알고는 박수갈채로 축하해 주었다.

지난주 선생님의 베세토 오페라단 사무실을 찾았다. 로타리의 김용범 사무총장(한국공학대 경영학과 교수)과 김태균 문화행사위원장(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음악평론가)도 동행했다. ‘강화자의 음악여정-사랑 그리고 헌정’이라는 제목의 포스터가 눈 가득 들어왔다. 수십 년 공연 내역을 담은 팸플릿을 가득 펼쳐놓고 정리 중이시란다. 한국 최고의 오페라단 단장이자 연출 및 지휘자로 일획을 그으시고 여전히 새판을 준비하시는 영원한 봄처녀 선생님. 그날은 저녁이면 밥 지어놓고 식구들 기다리는 어머니이셨다. 떡, 빵, 캔디와 포도를 챙겨주시면서 옛 추억담을 풀어놓으셨다. 나도 절로 옛 추억 추렴이 나왔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까까머리 중학생들을 가르치시던 20대 시절의 강화자 선생님.

지금도 정겨운 ‘봄처녀 제 오시네∼’ ‘오가며 그 집 앞을∼’ 등을 풍금을 치며 선창하시면 우리들은 소리 높여 따라 불렀다. “Maxwelton’s braes are bonnie∼”는 아직도 원어 가사가 생생하다. “너희들의 맑은 노랫소리, 교무실 창문 너머 운동장에서의 우렁찬 함성 소리는 내 삶의 힘이었단다. 앞으로 우리나라를 이끌어 갈 미래의 인재라는 생각을 하며 힘찬 소리를 들으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마음이 벅차오르곤 했단다. 그 소리들은 미국 유학 시절에도 생생하게 들려왔고 내 젊음을 유지하는 힘이었단다.”

지극한 사랑의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며 “인성을 바르게 갖춰야 아름다운 노래가 나온다”고 하셨던 선생님의 목까지 내려온 긴 단발 생머리를 말씀드리니 “아직도 기억하냐”며 놀라신다. 군대 시절 어느 따뜻한 5월 웅변대회에서 ‘봄은 처녀의 옷자락에서부터 온다’는 첫 구절로 부대원들을 매료시켜 1등을 한 일이 문득 떠올랐다. ‘아! 강화자 선생님은 늘 우리에게 아니 내 인생에 무의식중에도 봄의 생동으로 존재하셨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베이징(北京)·서울·도쿄(東京)의 이름을 딴 베세토 오페라단은 한·중·일 문화 교류를 이끄는 세계적 단체이다. 유럽 정통 오페라인 ‘카르멘’의 프리마돈나이신 선생님은 김구, 윤봉길 의사의 오페라도 만드셨다. 민족가극 오페라의 새로운 영역을 꿈꾸시는 선생님을 보며 나 또한 우리 고유의 홍익인간 이상을 세계화하여 ‘세상에 희망을’ 주는 국제로타리를 꿈꾼다.

선생님은 삶의 생기를 열어주시는 봄처녀로, 기억 저편 추억의 국화 옆 누이로, 저녁밥을 주시는 어머니로 늘 서 계실 것이다. “잘 키워주셔서 고맙습니다. 강화자 선생님!”

제자 이영석(국제로타리 3650지구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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