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개혁의 성공조건[뉴스와 시각]

  • 문화일보
  • 입력 2023-09-20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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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도경 사회부 차장

국민연금 개혁은 껄끄러운 국정 과제다. 개혁 당위성은 크지만, 다들 손대기를 꺼려 했다. 35년 전 도입된 국민연금은 내는 돈에 비해 많이 받는 구조로 설계됐다. 개혁은 단 두 번뿐이었다. 김대중 정부는 1998년 받는 돈인 소득대체율을 70%에서 60%로 낮추고 연금 받는 나이를 65세로 늦췄다. 노무현 정부는 2007년 소득대체율만 40%로 낮췄다. 그나마 보험료율은 건드리지도 못했다. 25년째 9%다. 이후 정부가 세 번 바뀌는 동안 개혁 논의는 멈췄다. 그사이 인구 구조는 악화했다. ‘더 내고 더 늦게 받는 것’ 외에 묘안이 없다. 어느 누구도 반길 리 없는 개혁안이다.

개혁 방정식은 꼬일 대로 꼬였다. 국민연금은 5년마다 재정추계를 한 후 제도를 개선한다. 휘발성이 큰 사안이다 보니 정치적 문제로 변질되곤 했다. 국회 내 개혁 논의는 헛바퀴만 돌았다. 정치 지형과도 무관치 않다. 전문가들마저 보수·진보 진영 논리만 대변한 채 갈라섰다. 2018년 4차 재정추계 당시 정부 자문기구에서 ‘재정안정파’ 위원이, 이번에는 ‘소득보장파’ 위원들이 사퇴했다. 기금 고갈 시기가 앞당겨졌는데도 전문가들은 18가지 시나리오만 무책임하게 내놓았다. 개혁안 도출은 뒷전에 두고 여야 정치권의 대리전만 벌였다는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다.

연금 개혁 선진국들은 파열음 없이 30∼40년에 걸쳐 제도를 고쳤다. 비결은 사회적 합의다. 모범답안인 스웨덴은 1984년부터 연금 개혁을 논의해 1998년 한 차례 마무리 지었다. ‘덜 내고 더 받는’ 방식에서 ‘낸 만큼 돌려받는’ 구조로 바꾼 것이다. 국민을 설득한 시간만 14년이다. 올해부터 연금 받는 나이와 정년을 67세로 올리는 데만 다시 13년이 걸렸다. 독립적인 연금개혁위원회가 여론을 수렴했고, 사민당 등 좌우 5개 정당은 정파를 초월한 합의체를 운용했다. 영국도 초당적으로 협력했다. 연금 개혁에 앞서 ‘전 국민 연금의 날’을 열어 대토론회를 개최했다. 연금 개혁을 정쟁의 대상으로 삼지 않고 국가 미래만 봤기에 가능한 일이다. 반면, 우리가 허비한 25년은 정치적 이해득실로 얼룩졌다.

국민연금은 사회적 계약이다. 개혁안을 제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민이 개혁 이유를 납득할 수 있는 과정이 우선이다. 연금은 국민 대다수가 가입 대상이다. 연금 제도를 손보면 고통을 가장 먼저 떠안아야 할 주체는 국민이다. 역대 정권들이 폭탄 돌리기를 하는 동안 ‘연금 파산’ 공포는 만연해 있다. 젊은 세대일수록 심하다. 제도에 대한 불신이 깊다면 정확한 사실부터 공유할 필요가 있다. 국민연금이 처한 현실을 알려주면서 개혁을 감내할 공감대를 마련해야 한다. 사회적 합의가 선행되지 않는다면 연금 개혁 이후 세대와 직종마다 갈등이 터져 나올 게 뻔하다.

국민 간에도 연금 개혁에 대한 이견은 팽팽하다. 이해관계도 복잡하다.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연금 개혁을 위해 사회적 논의 기구도 고려해 볼 만하다. 정부의 톱다운식 의사결정보다는 다양한 이해당사자가 숙의한 결과가 사회적 비용을 낮출 수 있어서다.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건 연금 개혁의 ‘필수조건’이다. 통치권자와 정치권의 강한 결단력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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