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전투기 4대 격추시킨 미 탑건 “북중러 연대 걱정… 새 전쟁 일어날 수 있다”[한미동맹 70년, 새 미래로 간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100세 바라보는 미 참전용사 엘머 로이스 윌리엄스 미 해군 예비역 대령이 지난 16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에스콘디도 자택에서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아 정복 모자, 훈장, 메달 등을 모아둔 거실 장식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한미동맹 70년, 새 미래로 간다 - (2) 동맹의 산 증인들 : 윌리엄스 예비역 대령

“적군 미그기 7대 맞닥뜨려 4대 격추
내 전투기엔 260곳 총탄 자국
그때 다시 돌아간다 해도 참전
한미동맹, 양국에 건강한 장치”

자택지붕 한국식 기와 본뜬 듯
한국 취재진에 “감사하다” 눈물

에스콘디도=글·사진 서종민 기자 rashomon@munhwa.com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엘머 로이스 윌리엄스 미 해군 예비역 대령의 6·25전쟁 전공을 기리는 주로스앤젤레스 한국 총영사관 등의 감사패.

“자유민주주의 한·미동맹은 한국과 미국 모두에게 이로웠다. 공산주의와 민주주의 간의 사상전이 6·25전쟁이다.”

100세를 바라보는 ‘탑건’(Top Gun)은 또렷한 음색으로 인터뷰에 임했다. 문화일보는 외교부·문화체육관광부 등과의 공동 기획으로 지난 16일(현지시간) 오후 미국 캘리포니아주 에스콘디도 한 언덕 마을에서 엘머 로이스 윌리엄스(98) 미 해군 예비역 대령을 만났다. 지난 1953년 7월까지 약 10개월간 6·25전쟁에 참전한 그는 동해 상공에서 혼자 맞붙었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소련) 소속 미그-15 전투기 7대 중 최소 4대를 격추했던 전설적 전공을 남겼다. 70년 후 자택으로 찾아온 한국 취재진을 마주한 그는 “감사한 일”이라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윌리엄스 대령은 최근 폐렴을 앓고 나서 건강은 어떤지 질문에 답하는 것보다 한반도 정세에 대한 걱정이 우선이었다. 그는 “또 다른, 새로운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북한, 중국, 러시아 핵무기 보유가 걱정인데 그 통제력이 어떻게 될지 누가 알겠나”라며 “북·중·러 3국의 연대가 놀랍고 걱정스럽다”고 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로 화제가 전환되자 자세를 고쳐 앉고 “폭풍우가 치는 날이었다. 그 전투는 아주 생생하게(vividly) 기억한다”고 했다. 1952년 11월 18일 F9F-5 팬서 전투기로 나선 정찰 비행은 6·25전쟁에서 윌리엄스 대령의 두 번째 작전이었다. 4대로 구성된 정찰대는 편대장과 윙맨(엄호 전투기), 윌리엄스 대령과 윙맨 2대씩 2개 편대로 기동했다. 1만2000피트(3657.6m) 고도 구름을 뚫고 상승 도중 소련 적기 7대가 식별됐다. 연료 문제로 편대장이 조기 철수해야 했던 상황에서 그의 윙맨마저 적기 1대와 함께 시야를 벗어났다. 혼자서 나머지 모두를 상대해야 했던 윌리엄스 대령은 “보이는 대로 즉시 사격했다”며 “35분 동안 완전히 갇힌 느낌이었다”고 했다.

윌리엄스 대령은 거실 선반에 있던 F9F-5 팬서 모형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그는 “이 모형은 전쟁 당시 도색 스타일까지 그대로 재현했다”며 “다시 폭풍우를 뚫고 착륙하고 나서 세어보니 260개가 넘는 총탄 자국이 전투기에 있었다”고 했다. 전설적 전공을 세웠지만 작전 당일 윌리엄스 대령은 상관으로부터 “군사 보안상 이 작전은 기밀”이라고 지시받았다. 그는 “적기 4대가 추락했다는 것 역시 1992년 소련 언론을 통해서 알게 된 사실이고, 그 전투 현장에서는 상대 공격을 피하면서 응사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며 “다만 상황을 재구성해 보면 5대를 격추했던 것으로 꽤 생생하게 기억한다”고 덧붙였다. 40년간 비밀로 유지해야 했던 심경을 묻자 윌리엄스 대령은 “딱히 문제라고 할 것은 없었고 괜찮았다”고 담담하게 답했다.

윌리엄스 대령은 6·25전쟁을 두고 “갑작스러웠던 전쟁이었다”며 소파 팔걸이를 내려치기도 했다. 1942년 입대한 그가 제2차 세계대전을 치른 후 미네소타대에서 국제관계학 등을 공부하고 있던 때 6·25전쟁이 터졌다. 그는 “나중에 돌아보니 거기에는 민주주의, 공산주의와 같은 이념이 있었다. 그때로 돌아가도 다시 참전할 것”이라고 했다.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한 윌리엄스 대령은 “한·미 모두에게 건강한 장치”라며 “양국이 국제적으로 높은 위상을 유지하도록 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한국이 세계적 리더가 됐다는 것이, 특히 경제적 성취가 인상 깊다”며 현대·기아 자동차 모두 구매한 경험이 있다고 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4월 25일 워싱턴DC에서 엘머 로이스 윌리엄스 미 해군 예비역 대령에게 태극무공훈장을 친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윌리엄스 대령은 거실 옆문으로 이어지는 공간으로 취재진을 이끌고는 “이곳은 ‘나는 나를 사랑해 방’(I love me room)이라고 한다”며 웃음을 지었다. 벽면에는 현역 시절 그가 착용했던 정복 모자, 견장, 훈장, 메달 등을 모아둔 액자와 해군을 상징하는 조타기 등이 걸려 있었다. 액자 한가운데에는 지난 4월 국빈 방미 중이던 윤석열 대통령에게서 받았던 태극무공훈장이 걸려 있었다. 색이 바랜 정복 모자를 바라보며 윌리엄스 대령은 “한때는 새하얗던 모자였다”며 말끝을 흐렸다.

윌리엄스 대령의 ‘한국 사랑’은 자택 모습 자체로도 묻어났다. 이 마을에서 한국식 기와를 떠올리게 하는 푸른 지붕을 한 집은 이곳뿐이었다. 특히 기와지붕 마루 끝에 해당하는 ‘망와’(望瓦) 위치의 꽃문양은 한국에서 직접 구한 것이라고 한다. 거실 테이블 위에는 ‘We go together’(같이 갑시다)라는 한·미동맹의 대표적 구호를 새긴 시계, 태극 문양이 들어간 부채 등이 놓여 있었다.

문화일보·외교부·문화체육관광부 공동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