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을 뿐인[유희경의 시:선(詩:選)]

  • 문화일보
  • 입력 2023-10-18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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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마다 떨어진 공을 줍는 사람이 있네/ 온종일 공을 날려보내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미화원의 파업에 미화되지 않는 거리/ 세상에는 스위치를 내렸다 올리듯/ 요란함이 간단히 정리되는 마법은 없지’

- 조온윤 ‘한밤의 공 줍기’(시집 ‘우리를 세상의 끝으로’)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 시간도 아낄 겸 질러가 볼까. 매일 걷는 길의 반복이 지겨워서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디뎌 보지 못한 길은 낯설고, 사는 모양은 비슷비슷 낯익다. 집집마다 내놓은 화분과 아슬아슬하게 비켜 지나가는 배달 오토바이 사이를 걷다가 경계석 위에 버려진 일회용 플라스틱 컵들을 보고 눈살을 찌푸리고 말았다.

이처럼 인적 드문 골목에도. 한숨이 나오지만 실은 어디에나 버려져 있지. 우리 눈에 띄지 않을 뿐이다. 지난 연휴의 풍경이 떠오른다. 어디라 할 것 없이 사방에 일회용 컵이 널브러져 있었다. 대체 이 많은 컵이 어디서 왔지. 놀라는 나를 보고 동행이 말했다. “안 보였던 것뿐이지.” 연휴를 맞아 쓰레기 수거가 일제히 멈춘 거라고. 그간 우리가 숨겨두었던 현실이 보이게 된 거라고. 평소 내가 누리던 쾌적함이 모두 거짓말인 듯 느껴졌다. 길에 함부로 쓰레기를 버리는 비양심에 대한 각성은 물론이거니와 저 많은 쓰레기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저 눈앞에서 치워질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는 동행의 잔소리 아닌 잔소리가 아니더라도 참 적나라한 현실이었다.

어디 쓰레기뿐일까. 우리는 이런저런 핑계를 앞세우며 외면한 채 살고 있을 게다. 그러다 그것이 눈에 드러나기라도 하면 마치 없었던 문제가 느닷없이 발생한 것인 양 호들갑을 떨면서 말이다. 그럼에도 딱히 방법이 없어서 나는 그 일회용 커피 컵, 단단해서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버려진 것을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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