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용 vs 신영복·정율성[뉴스와 시각]

  • 문화일보
  • 입력 2023-10-24 11:35
  • 업데이트 2023-10-25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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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회경 전국부장

고 이대용 장군은 6·25전쟁 ‘찐’ 영웅이다.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발발했을 당시 그는 6사단 소속 중대장으로서 전차부대를 앞세워 침공한 북한군의 파죽지세를 꺾는 데 성공했다. 6·25전쟁 첫 승전으로 기록된 춘천전투를 이끌어 낸 주인공이다. 그해 10월 26일 그가 이끈 1중대는 평안북도 초산 압록강에 이르렀다. 압록강에 맨 먼저 닿은 국군 부대 병사가 압록강 물을 수통에 담아 이승만 대통령에게 바쳤다는 일화 역시 그의 몫이다. 이 장군의 활약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준장으로 예편한 뒤 주베트남 대사관에서 공사를 지냈다. 1975년 4월 베트남이 패망하던 당시 그는 교민 보호를 위해 사이공에 남아 있었다. 미국 대사관을 떠나는 마지막 헬리콥터에 오르라는 미국 공사 제의를 마다하고 남은 교민들을 외국 공관에 피란시키려 애쓰다가 월맹군에 붙잡혔다. 날마다 고문을 당했다. 월맹군은 그를 북한으로 이송하려 했다. 이 장군은 북한 공작 요원으로부터 망명 자술서를 강요받았지만 굴하지 않고 끝까지 버텼고, 억류 5년 만에 기적적으로 풀려났다. 이 장군은 어떤 기준으로 보더라도 영웅이다. 그의 장례는 국민적 영웅을 기리는 자리여야 했다. 나라를 위해 싸운 군인들을 기리는 전통이 강한 영국, 미국, 호주 등과 같은 나라에선 그런 영웅이 죽으면 반기를 걸고 그의 공적을 기린다. 하지만 2017년 11월 14일 이 장군이 숨졌을 때 우리 사회는 너무 잠잠했다. 적어도 육군장으로 치렀어야 할 그의 장례는 그저 가족장으로 치러졌을 뿐이다.

반면, 북한이 이 장군과 교환을 원했던 사람 중 한 명인 고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는 출소 후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소주병에 독특한 서체의 ‘처음처럼’ 상표를 남긴 바로 그 사람이다. 2016년 1월 15일 사망한 이후에도 이런 흐름은 이어졌다. 사후에 그의 이름을 딴 추모공원이 생길 정도다. 북한이 경남 밀양 출신인 그를 집요하게 데려가고자 했던 사실은 외교부가 2016년 ‘베트남 억류공관원 석방교섭 회담(뉴델리 3자회담)’ 외교문서철을 비밀해제하면서 뒤늦게 밝혀졌다. 신 교수는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돼 20년 동안 복역하고 1988년 가석방됐다. 그는 교수를 하면서 동양 고전 풀이 관련 책을 몇 권 냈고, 이른바 신영복 서체를 유행시켰다. 민경우 대안연대 상임대표는 “나이를 먹고 사회에 진출해도 과거의 신념을 버리고 싶지 않았던 운동권 중 일부가 신영복을 빌려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려 했던 것 같다”고 평가했다. ‘신영복은 존경하는 한국의 사상가’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평창동계올림픽 리셉션 환영사도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광주시의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은 우리 사회의 신 교수 추앙 흐름 연장 선상에 있다. 강기정 광주시장의 중국인 여행객 유치 발언은 너무 군색하다. 목숨 바쳐 나라를 구한 사람은 소 닭 보듯 하고, 국가 전복을 꾀하거나 적군에 속해 사기 진작에 헌신한 사람을 기리는 공동체에 소망이 있을 리 없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를 겪으며 여권 내부에서도 너무 이념 위주로 흐르면 안 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옳은 지적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 사회가 깊이 병들어 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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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회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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