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비현실[유희경의 시:선(詩:選)]

  • 문화일보
  • 입력 2023-11-01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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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백히 // 현실에도 대륙이 있고 나라가 있고 지역이 있다 심지어/ 집도 있다 집집마다/ 사는 사람이 있다// 그것이 얼마나 슬픈 일인지 당신은 아는가! (떠난 모험가를 향하여)// 게임을 종료하면/ 대륙을 떠나면// 나는 나를 사냥해야 해’

- 고선경 ‘무대륙’(시집 ‘샤워젤과 소다수’)


서점에서 강의를 맡은 시인이 나타나지도 전화를 받지도 않았다. 화가 났다가 나중에는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초조해져 기다리는데, 그가 얼굴을 내민다. “어떻게 된 거야?” 화를 내는 나를 그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살피다 이내, 알았다는 듯 웃는다.

그가 내민 것은 플라스틱 장치였다. “이게 뭐야?” 묻자, 배시시 웃으며 “감옥” 하고 대답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스마트폰 감옥’이다. 전화기를 넣고 덮어두면, 설정해놓은 시각이 되기 전에는 절대 열리지 않는다. “그래서 전화를 받지 못했어. ” 나는 허탈해져서 웃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는 질문에 그는 자못 심각해진다. 무얼 쓸 수도, 읽을 수도 없게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노라고 고백하면서, 하나 구매해보라고 제안까지 하는 거였다. 마음이 동하기는 했다. 어디 나뿐일까. 스스로 스마트폰 중독이라 여기고 있지만, 어쩌지 못하는 이들이 말이다. 이리저리 검색해보았다. 진짜 감옥을 모형화한 것부터 휴대 가능한 것까지 각양각색의 제품을 훑어가다가 문득, 친구와 내가 딱해지고 말았다. 삶을 감옥에 넣는, 감옥을 찾는 처지가 슬프기까지 한 것이다. 무엇이 우리를 가상으로 몰아넣는가, 생각해보면 각박하게만 느껴지는 현실이 아닌가. 다들 마음 둘 곳을 찾는 것이며, 그것이 비현실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의탁하는 것이 아닌가. 벌떡 일어나 창밖을 보았다. 돌아가는 세상일과 무관하게 울긋불긋한 가을이 떨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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